파스칼 브뤼크네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파스칼 브뤼크네르

by 마니피캇

파스칼 브뤼크네르,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2021


인생의 목표를 잃게 되면, 그 순간의 기억은 홀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의 시간이 오래 흘러도 나만 가진 그 기억과 상실감은 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지금의 직업과 지금의 생활이 오래되었어도 어쩐 일인지 문득문득 낯설음을 느낀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으나 마음의 한 부분은 오래 전의 그 때로부터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대의 나와 40대의 나는 정말로 같은 사람일까? 출퇴근 길은 깜빡 다른 생각에 빠져도 내 몸이 저절로 찾아갈 정도로 익숙하다. 그러나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내 삶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깊이 생각에 빠질 때면 불쑥 어린 시절의 꿈과 열정이 솟아 나와 길 잃은 사람처럼 당황하게 된다.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삶의 익숙함과 어색함이 서로를 반복해서 잡아먹는다. 인생의 길은 출퇴근길처럼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령화 시대. 인류가 처음 겪는 세상이다. 그러니 기성세대도 당황하고 방황한다. 50세는 지천명이라더니 공자에게 속았다. 지천명커녕 요즘 50대에는 '오춘기'라는 것이 온다. (내 말이 아니라 브뤼크네르 선생의 표현이다.) 질풍노도의 정도가 사춘기의 제곱이다. 심술보는 말도 아니게 커진다. 무턱대고 요즘 젊은것들은 형편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기력이 떨어져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생각을 고쳐먹기 힘들고 세상이 나를 배신한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화가 난다.


"노년은 으레 노망과 저주라는 이중의 함정에 빠진다. 트집쟁이, 투덜이, 꼰대가 우리 안에서 조금이라도 수가 틀어지면 당장에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몽테뉴는 이런 병을 영혼의 주름이라고 불렀다. 늙어가면서 시어지고 곰팡내 나지 않는 영혼은 없으며 있다 해도 몹시 드물다. 우리는 나이를 먹되 마음이 늙지 않게 지키고 세상을 향한 욕구, 기쁨, 다음 세대를 향한 호기심을 유지해야 한다.

괴팍한 노인은 즐거워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친구와 지인, 사시사철이 다 마음에 안 든다. 사회가 추하다고 하지만 정작 추한 것은 그의 눈이지 그 눈이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다. 그는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이 '권태의 재'라고 말한 것을 뒤집어 쓰고 있다.

노인들은 세상이 망할 것처럼 생각하곤 하는데 그 이유는 자기들이 세상을 아쉽지 않게 떠나고 싶어서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보다 오래 남을 것이요, 젊은이들은 그들의 저주를 아랑곳하지 않으리라."


우리가 주입식으로 교육받았던 노인의 '지혜로움'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안타깝게도 젊은이들과 기성세대는 언제나 대립한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가 젊을 때를 잊어버린 혼란이 트집과 투덜과 꼰대를 야기한다. 노년이 젊은이들을 이해 못하는 것은 브뤼크네르의 말처럼 스스로가 만든 "함정에 빠진" 것이리. 3700년 전 수메르 문명의 점토판에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글이 쓰여 있다. 불쑥 마음에 차 오르는 불만을 피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점토판을 만든 이보다 나이가 적다면 젊은 세대를 통칭하여 운운하는 것은 피하심이 어떠신지.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마시길. 어떤 사람도 이 함정을 벗어나긴 쉽지 않다.


나에게는 기회가 없다는 무력함이 젊음에 대한 저주로 나타난다. 그러나 내가 못하면 남들도 못해야 한다는 고약한 심보는 나이를 먹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적 질투다. 그 때문에 젊은 이들은 항상 기성세대의 질투를 산다. 그러므로 나이가 많든 적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삶을 즐겁게 살 방법, 즐거워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마음을 늙지 않게 지켜야" 한다는 말은 각자가 젊을 때 품었던 꿈과 열정을, 그 욕구와 기쁨과 즐거움을 기억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불과 몇 백 년 전 인간의 평균수명은 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오늘날 평균수명은 90세에 육박한다. 그럼 나이 60은 옛날로 치면 신생아가 맞지 않은가? 이 책은 100살도 채 되지 않으면서 꼰대로 '죽어가는' 오,육춘기 '젊은' 중,장년들에게 던지는 '살아야 할' 희망의 메시지다.

아직도 젊은 어르신들이여! 님들은 지금이 다시 사는 인생입니다! 이제 겨우 연습 게임 끝났으니 본 게임에 돌입하세요. '라떼는 말이야' 하는 그 시절에 못했던 일을 지금 당장 하시길!

이쯤 읽었으면 30~40대는 더 깜짝 놀라겠지?


"50세 60세 70세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20세 30세 40세 때와 똑같다. 삶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 달고 저주를 퍼붓는 자에게 매섭게 군다."


책 읽기 전에 문정희 시인의 시 한 편.

갱년기, 또는 노년기 감성 촉촉하게 보습하세요.


<나무학교> 문정희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해마다 어김없이 늘어가는 나이
너무 쉬운 더하기는 그만두고
나무처럼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늘 푸른 나무 사이를 걷다가
문득 가지 하나가 어깨를 건드릴 때
가을이 슬쩍 노란 손을 얹어 놓을 때
사랑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심장에 꽂힐 때
오래된 사원 뒤뜰에서
웃어요! 하며 숲을 배경으로
순간을 새기고 있을 때
나무는 나이를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도 어른이며
아직 어려도 그대로 푸르른 희망
나이에 관한 한 나무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냥 속에다 새기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년에 더욱 울창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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