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을 잃은 세상에 호소하는 어린 설이의 차갑고, 무겁고, 슬픈 외침! 자신은 타인을 이해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던지는 폐부를 찌르는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정말 나라고 생각하세요?'
'~이라면, ~하면, ~이니까' 이라는 조건을 붙인다면 사랑이 아니라 거래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자식에게도 우리는 얼마나 조건을 요구하고 있는가. 그러한 조건문 속에서 사랑은 질식하고 나는 타인의 자존감을 파괴한다.
'아, 그랬구나. 그런 마음이었구나.' 하며 가만히 듣고 들여다보아야 아주 조금 알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자기 감정이 가장 앞서기 때문이다. 가족 간에도 친구 간에도 내 이기적 감정이 관계를 좀먹는다. 누구나, 언제나, 항상 자기만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두 '독백'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러니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고 조건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공교한 타이밍에 매트 한센이 다시 부른 아비치의 "the nights"를 들었다. 이 노래를 듣고 성경에 나오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를 연상했다. 노래에 등장하는 아버지처럼 되어야겠다.
== 대건이와 효주에게. 걱정하지 말고 너희는 후회없는 삶을 살아라. 인생을 그냥 흘러가게 두지 말아라. 너희 심장이 바라는 대로 인생의 춤을 추어라. 이 아비가 너희 뒤에 서 있겠다. 살다가 혹시 겁이 난다면 나를 떠올려라. 내가 너희 시선 닿는 곳에 항상 서 있겠다.
[책꼽문1] 아코는 소심한 잡종개였고 나는 가난한 유기아동이었지만 우린 서로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친구였다. 목욕을 시켜서 뻣뻣한 털에서 상큼한 샴푸 냄새가 풍기도록 만들어 놓으면 내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오로지 나만 믿는다는듯 쳐다보는 아코의 서글픈 눈망울을 보다보면 어느새 나는 상한 기분을 잊었다.
[책꼽문2]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것 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웠다. 사랑과 감사가, 욕심과 미움이 각각 얼만큼인지 따지는 건 의미 없다고. 하나하나 발라내서 확인하려면 어쩌면 내 인생을 다 털어 쓰고도 모자랄 만큼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눈물이 소리 없이 속삭였다. 세상에는 끝내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눈물은,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린 것을 향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모두 실어 떠나보내라고 흐르는 투명한 강이었다. 사랑인지 욕심인지, 감사인지 미움인지.. 집착하느라 피가나도록 움켜쥔 두 주먹이 강물 속에서 스스륵 풀렸다.
[책꼽문3] If는 최고로 골치덩어리라서 일단 그것이 달리면 문장의 시제는 4차원 시공간처럼 마구 뒤틀리고 아이들의 미간은 고통스럽게 찡그려진다.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수학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시현은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문장이 성립되고 강아지의 이름은 벡터가 되고 약속이 깨지는 순간 강아지는 쫓겨난다. 강아지는 수학과 아무관계가 없다는 걸 아버지학교가 곽은태 선생님께 단단히 가르쳐 주었을까?...나는 그런 가시돋힌 조건문들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책꼽문4] "내가 시현이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저를 계속 키우실 건가요?" 곽은태 선생님은 내 질문에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멍청이처럼 입을 벌리고 떨리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만 보았다. 내가 시현의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내가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나를 끝까지 사랑하며 키우겠다고 뜨겁게 말하지 못했다. 그분은 조건법 문장이 아닌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할 줄 몰랐다. 하긴, 시현에게도 하지 못한 일을 나에게 바랄 수는 없는 거였다. 아버지 학교에서는 그런 걸 가르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