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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란 Nov 12. 2024

최애 생일 카페를 가다

생일 카페는 팬들이 ‘내 연예인’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생일 주간에 카페를 대관해 진행하는 이벤트를 말한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음료나 디저트를 구매하면 자체 제작한 기념 굿즈(종이컵, 컵홀더, 스티커 등)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고, 대관한 카페 공간에 사진을 전시하거나 인생네컷 기계를 설치하거나 경품을 추첨하기도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팬들이 기획하고, 주최하고, 참여하는 이 ‘생일자 없는 생일 파티’는 내가 20여 년의 긴 휴덕기를 지나오기 전에는 본 적 없는 새로운 덕질 문화다. 그것이 무엇인지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구 오빠를 덕질하던 시절에도 지독한 안방순이였던 내가 참여하게 될 일은 없겠다, 싶었는데…….


역시 사람 일은 함부로 단정하면 안 된다. 나는 제발로 저벅저벅 먼길을 나섰다. 비단 덕질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더없이 집순이임에도 불구하고, 땡볕이 내리쬐는 무더위를 뚫고, 평소보다 꽃단장을 하고서.


바다 건너에서 활동하는 우리 애 생일 카페가 한국에서 열린다지 않는가! 이건 가야 한다는 마음속 외침을 도저히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어떻게든 생각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틀지 않으면 머릿속이 터질 같기도 했다. 어덕행덕은커녕 소속사 문제까지 터져 환장할 지경이라 마음에 평안을 줄 무언가가 시급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다시 15분쯤 걸어 도착한 생일 카페는 최애의 멤컬(멤버별 이미지 컬러)인 핑크빛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핑크빛 공간에 놓인 전시용 테이블에는 샵사며 잡지며 최애 관련 굿즈와 물품이 한가득하고, 벽에 걸린 스크린에서는 최애가 나오는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카페 안쪽으로 포토존과 스티커사진 기계까지 마련되어 있어 어디를 봐도 최애의 용안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 복되다! 공간에 들어선 것만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벅찬 가슴을 부여잡고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하니 과연 알려진 대로 생일 기념 굿즈가 함께 나왔다. 깜찍한 디자인의 종이컵(일명 생일컵)과 스티커, 떡메모지, 인화 사진 등 일련의 굿즈들을 받아든 나의 첫 소감은……! 


생일컵을 왜 두 개나 주지?


최애 얼굴이 인쇄된 분홍색 종이컵을 두 개나 받았다. 최애를 캐릭터화해 제작한 떡메모지는 세 개, 아니 네 개. 동일한 디자인의 굿즈를 여러 개 받은 것이다. 물론 굿즈는 하나같이 예뻤다. 보자마자 탄성이 터져나올 만큼 사랑스러웠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갖고 싶은데 갖기 싫다. 


이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기념으로 하나 정도는 갖고 싶었지만 똑같은 물건을 몇 개씩이나 갖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면 충분하지 않나? 예쁜 굿즈라는 감상과 예쁜 쓰레기라는 판단이 동시에 들어서 마음 놓고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티 없이 환하게 웃는 얼굴들 사이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추측건대 나뿐인 듯싶었다. 그때 바로 옆 테이블의 한 소녀팬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거 제가 기념으로 만든 건데요, 나눔하려고요!”


한눈에도 호의가 폴폴 풍기는 소녀팬이 나에게 내민 것은 멤컬에 맞춘 비즈를 알알이 꿰어 만든 조그만 반지였다. 엉겁결에 반지를 받아들고 웃으며 감사 인사를 건네자 소녀도 마주 웃으며 눈인사를 건네고 다른 테이블로 이동했다. 그렇게 카페 안의 모든 테이블을 돌며 일일이 비즈반지를 나눔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 소녀팬의 눈동자가 더없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 소녀팬의 테이블에 둘러앉은 팬들은 이날 생일 카페에서 처음 만나 합석한 모양이었다. 서로 닉네임을 밝히고, 타임라인에서 본 적이 있다며 꺄르륵 웃고, 각자 손가락에 비즈반지를 끼워보며 재잘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명랑한지! 옆 테이블의 나까지 괜히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런 한편으로 저 즐거운 풍경에 녹아들지 못하는 내 모습이 약간 서글프기도 했다.


사실 내가 생일 카페에 발걸음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있었다. 다른 덕후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무엇을 하든 솔로 플레이가 편한 사람이라 딱히 덕친(덕질을 함께하는 친구, 덕메─덕질 메이트─라고도 한다)을 사귀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지는 않을까?


혹시 다른 덕후도 나처럼 덕질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지, 내가 문제라고 느끼는 부분을 문제로 받아들여서 덕질을 멈칫한 적은 없는지 알고 싶었다.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무어라도 좋으니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 오늘의 덕질 일본어 **


생일 카페 センイルカフェ(셍이루카훼)

 メンカラ(멘카라) : 멤버 컬러 メンバーカラー(멘바-카라-)

덕친 オタ友(オタとも 오타토모)

영업 布教(ふきょう 휴쿄-)

나눔 無料配布(むりょうはいふ 무료-하이후)

성지 순례 整地巡礼(せいちじゅんれい 세-치쥰-레-)


생일 축하해!

誕生日おめでとう!

(오탄죠-비 오메데토-!)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

いつも応援しているよ!

(이츠모 오-엔시테이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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