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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비니야 Oct 22. 2023

먹는 낙을 빼면 뚱뚱한 시체 상태인 시절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넌 무얼 할 때 행복해? 돈으로 환산되지 않고, 아무런 대가도 없지만 즐겁다는 이유로 하는 행위가 있어?” 


그 질문에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뇌리를 가득 채운 건 흑색 어둠뿐 태양빛이 떠오르는 밝은 아침이 올 거라는 희망도, 내일을 기대하는 파란 꿈도 없이 캄캄했다. 마음 상태를 난방기의 온도 조절하듯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어난 감정과 우울,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불안은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을 괴롭혔다. 


“먹는 거. 먹는 게 유일한 낙이고 취미야.”


내 대답에 친구는 ‘너 운동 자주 하잖아. 매일 한다는 건 좋아서 하는 거 아니야?’라고 되물었다.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이들이 부러웠다. 식사를 하기 전에는 스스로 상정해 둔 대가가 혹독하다는 걸 알기에 머뭇거렸다.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으면, 두 시간은 뛰어야겠지.’라는 냉혹한 현실을 자각하는 건 괴롭지만 별 수 없었다. 일상의 낙이 없는 이가 뱅글뱅글 돌다 멈춰 서는 건 매번 부엌일 수밖에 없었고, 난 그곳에서 욕망과 씨름하다 패배하고, 장렬히 먹은 뒤에 후회했다. 매일 무엇을 먹을까,라는 생각이 유일한 화두였으며 그 외에 다른 질문지는 의미 없는 배경으로 전락해 버린 삶을 본 적 있는가. 그 삶에는 ‘섭취에 대한 죄와 운동이라는 벌’만 있다. 먹으면 그 대가로 움직여야 하고, 운동하지 않는다면 먹을 자격이 없다. 과연 그건 누가 만든 법이고 언제부터 그런 기준이 생겨났는지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은 채 난 스스로를 운동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운동을 안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오늘 하루만 거르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일면 반대편에서 신랄한 한 마디가 가슴을 찔렀다. ‘그럼 먹었으면 안 되지. 네가 좀 많이 먹었니?’ 나는 먹었던 음식들을 되뇌며 죄책감을 느꼈다. ‘먹어서는 안 됐어. 먹은 내가 잘못이야.’ 집 앞 공원을 두 시간 동안 달리거나 홈트 영상을 틀어두고 매트 위에서 미친 심정으로 움직이며 나는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마치 전원 버튼이 고장 난 모터가 과열 상태로 쉬지 않고 작동하듯 먹은 칼로리에 대한 죄 값을 톡톡히 치르면서. 


언제부터 난 먹는 낙 외에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딱딱한 심장을 갖게 됐을까. 이런 모습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가오나시와 같다. 치히로가 일하는 여관에 등장한 가오나시가 주변에 모든 것들을 미친 듯이 먹어 치웠듯 나는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여러 음식을 게걸스레 먹었다. 


애니타 존스턴은 <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에서 여성의 식욕은 배고픔과 허기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먹는 데 중독된 사람은 사실 감정과 영혼의 허기를 느끼는 사람이다. 식탐은 감정적, 정신적 자양분에 대한 갈망이다. 그것은 우리를 보살펴주고, 달래주고,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이상적인 어머니, 전형적인 선한 어머니상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종종 냉장고 앞에 서서 우리가 찾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장을 보러 갔을 때 정말로 사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다. 아이스크림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쿠키와 머핀을 아무리 게걸스럽게 밀어 넣어도 이 허기는 만족시킬 수 없다. 영혼도, 마음도 아닌 위장만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애니타 존스턴 <먹을 때마다 나는 우울해진다>


저자의 말대로 음식은 마음의 공허를 해소해 주는 대신 위장을 채워준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음식에 대한 비정상적인 중독 증상을 앓게 된 건 이십 대 후반이었다. 대학 졸업 전에도 다이어트를 했지만 섭취할 음식을 제한하거나 까다롭게 단속하지 않았다. 졸업 후 한동안 꿈과 취업 사이에서 갈등하며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바닥을 쳤던 시기, 난 가족들이 일하러 나가면 혼자 집에 있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지만 이룬 건 없고, 계속된 취업 압박으로 여러 회사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가진 재능도, 성취한 결과도 없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 시기 내가 찾은 건 냉장고였다.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삶이 심심하고 헛헛해서 뭐라도 먹고 싶었다. 난 냉장고 안에 얼려두었던 빵을 구워 먹은 뒤 찬장에 있던 라면을 끓여 먹었다. 콜라를 들이켜고, 초콜릿을 먹고 다시 달콤한 과자로 기분 전환을 시도했다. 굶주린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먹성을 키워가며 음식에 몰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건 먹는 욕구 외에 없었다. 과잉된 섭취로 몸이 불자 또다시 괴로웠다. 우울감을 잊기 위해 계속 먹었다. 무능력한 자신을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 싶었다. 


계속된 섭취로 몸이 바뀌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의 목적은 건강을 위한 게 아니었으며 쓸모없는 짐짝과 같이 비대한 몸 뚱아리를 처리하고 싶었다. 살찐 내 몸은 혐오 그 자체였고, 세상에서 아무 쓸모가 없게 여겨졌다. 운동을 하고, 먹는 음식을 제한하면서 살은 빠졌지만 마음의 허기는 복구되지 않았다. 난 아무런 즐거움과 낙이 존재하지 않는 삶에 이유가 되어버린 ‘음식’을 응시하고 질문했어야 했다. “난 과연 음식을 먹는 이유가 무엇일까? 배가 고프지 않는데도 계속해서 먹는 건 왜일까?”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것부터가 음식이라는 질병에 걸린 일상을 복구하는 첫 단추가 된다. 운동을 시작한 후로 식사에 제약을 걸자 내면의 식욕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체중이 늘던 시기와 달리 몸무게는 줄었지만 생활은 건조하고 불행했다. 차라리 몸은 비대했어도 먹는 순간만큼은 좌절과 불행을 감각하지 않을 수 있던 시절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름진 음식을 즐비하게 늘어놓고 먹던 때로 돌아가는 건 두렵지만, 살이 찌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일상은 더 괴로웠다. 참을수록 눈앞에 음식의 형체는 또렷해졌고, 제약을 할수록 뇌리에는 식욕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먹고 운동하는 것 외에 일상에 중요한 화두가  없던 시절을 일정정도 지나게 된 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게 되면서부터다. 경제생활을 스스로 책임지고, 내 공간을 갖게 됐으며 원하는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하게 됐다. 생활이 변화가 생기고 음식 외에 조금씩 다른 즐거움을 찾게 되자 중독 증상은 호전되었다. 내가 미친 듯이 음식에 몰입한 건 배가 고파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자 ‘먹어서는 안 돼! 먹는 건 죄야!’라는 폭력적인 언어로 자신을 단속하기보다 참을성을 갖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간절히 바랐던 건 가족들에게 독립하여 생활을 잘 꾸리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는 것이었고, 원하는 바를 실현해 나가는 자신의 변화였다. 또한 누군가에게 대가나 이유 없는 사랑과 끊김 없는 관심을 받고 싶었다. 바라는 소망을 실현하는 추진력과 내 재능을 무한히 신뢰하는 소중한 존재를 원했지만 엉뚱하게도 가까이에 두었던 건 설탕이 범벅된 글레이즈 도넛과 감자칩, 바삭한 치킨과 피자였다. 

 지금도 불현듯 음식에 매몰됐던 시기의 감각이 꿈틀 되면, 한 가지 사실을 의식하려 한다. ‘내가 지금 마음의 불안과 괴로움을 음식으로 퉁 치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이건 진짜 바라는 것과 거리가 멀다는 걸 넌 잘 알고 있잖아.’ 그 사실을 잊지 않으면 음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통제와 집착을 완화하는 게 가능하다. 

 세상에 자연스러운 노력과 변화라는 건 있을 수 없다. 감정의 외면 대신 집요하게 노력하며 분투하는 것, 짓눌린 감정을 복원하여 그 내면을 괴롭더라도 살피는 과정이 없다면 음식이라는 장애물 앞에 마비된 일상을 복구시키는 건 매우 어렵다. 그 과정에서 음식 이외에 도처에 가까이 두고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와 사랑하는 대상들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나를 음식 이외의 다른 길로 안내해 준다. 난 그 불빛에 의지하여 불쑥 음식에 매몰된 마음을 환기하고, 보듬는다. 그렇게 조금씩 음식과 나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애쓰고, 내가 바라는 것을 질문하고 답을 찾는 일에 능숙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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