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늦게까지 자고 일어났다. 눈을 뜨자 방 안 공기가 묘하게 달랐다. 커튼 틈 사이로 햇살이 흘러들었다. 평일의 공기와는 달랐다. 회사 냄새가 빠진 공기. 사람은 어떤 공간의 냄새로도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때가 있다. 세면대로 가서 물을 튀겼다. 거울 속 얼굴은 며칠 사이에 더 옅어져 있었다. 눈썹은 거의 남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웃었다. 이제는 놀라지 않았다. 놀라는 일도, 슬퍼하는 일도 줄었다. 사람은 잃는 데 익숙해지면, 그 잃음이 일상이 된다.
주전자를 올리고 물을 끓였다. 찻물이 팔팔 끓어오를 때까지, 나는 창밖을 보았다. 맞은편 옥상에서 누군가 이불을 털고 있었다. 흰 이불이 햇빛에 번쩍였다. 그 단순한 동작이 이상하게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아무 일 없는 아침을 살고 싶었다. 차를 우리고, 식탁에 앉았다. 김이 피어오르는 잔을 손에 쥐자, 그 따뜻함이 손끝에서 심장으로 옮겨붙었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자영아, 지금 괜찮니?”
“응, 주말이라 괜찮아요.”
“너 요즘 얼굴이 왜 그래?”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묻는다. 일보다 얼굴이 먼저다.
“사진 봤는데, 눈썹이 없던데?”
나는 잠시 멈췄다.
“그거요, 그냥… 다 빠졌어요.”
“왜?”
“리터치를 못했거든요.”
“리터치?”
엄마는 생소한 단어를 한 번 따라 말했다.
“그게 뭐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붙인 거였어요. 호랑이 눈썹이라고, 좀 특이한 데서 했어요.”
“호랑이 눈썹?”
엄마가 웃었다.
“너는 참 이상한 데 돈을 쓰더라.”
그 말에 나도 웃었다.
“엄마는 안 해봤잖아요.”
“나는 필요 없지. 내 얼굴은 그냥 내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덧붙였다.
“근데 말이야, 네가 얼굴을 바꾸면 세상도 바뀌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내 가슴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세상이 바뀌니.’ 그 말은 비난도, 조언도 아니었다. 그냥 오래 살아본 사람이 건네는 순한 진실이었다.
나는 물었다.
“엄마는 자기 얼굴이 좋았어요?”
“좋을 틈이 있었겠니. 나는 그저 살아야 했지.”
그 대답이 낯설게 따뜻했다. 엄마의 세대는 얼굴을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버티기 위해 화장대를 지켰던 세대였다.
엄마가 말을 이었다.
“나는 화장하면서 세상에 나갔어. 네 아버지한테 욕먹고도 다음 날 아침엔 립스틱 발랐지. 그게 내가 나를 버티는 법이었어. 근데 너는, 그걸 왜 붙였어?”
“몰라요. 그냥… 자신 없어 보여서.”
“누구 눈에?”
그 질문이 너무 명확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 눈에.’ 엄마의 말은, 그 한 문장으로 모든 걸 꿰뚫었다.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사람은 결국 자기 눈으로 살아. 남 눈으로 살면, 하루 종일 거울 들고 다녀야 해.”
나는 그 말이 묘하게 아팠다. 내가 그동안 붙잡고 있던 건 사실 눈썹이 아니라, 남의 눈이었다. 호랑이 눈썹을 붙인 이유도, 결국 누군가의 시선을 견디기 위해서였다. 그걸 이제야 깨닫고 나니, 부끄러움보다 허무함이 먼저 왔다.
통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귓속에 오래 남았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봄바람이 들어왔다. 그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쪽 눈썹이 완전히 지워졌다. 거울 속의 얼굴은 이전보다 더 담백했다. ‘그래, 이게 나구나.’ 거울 속에서 낯선 얼굴이 아닌, 내 얼굴이 보였다.
그날 오후, 나는 일부러 외출을 했다. 모자를 쓰지도 않았고, 눈썹을 그리지도 않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이웃이 나를 보고 인사했다.
“자영 씨, 요즘 바빠 보여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녀의 시선이 내 얼굴 위를 스쳤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그 시선이 아프게 느껴졌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저 스쳐가는 바람 같았다.
카페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요즘은 일보다 생각이 많았다. 생각이 많아지면 일이 줄고, 일이 줄면 사람은 자기 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 나는 펜으로 한 문장을 썼다. “나는 이제, 나를 꾸미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문장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버틴다는 건 화장을 안 하는 용기보다, 꾸미고 싶던 마음을 내려놓는 힘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서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 다음 주에 차 한잔해요.”
“좋아요. 무슨 일 있어요?”
“그냥요. 그냥 얼굴 좀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보내고 나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누군가에게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이렇게 담백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밤이 되어 불을 끄고 누웠다. 천장 위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림자 속에서도 내 얼굴은 뚜렷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엄마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남 눈으로 살면 하루 종일 거울 들고 다녀야 해.” 그 말이 오늘의 기도처럼 느껴졌다.
잠이 들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호랑이 눈썹은 어쩌면 내 안에도 있었던 게 아닐까. 사라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내 안에 있던 것. 그걸 확인하려고 나는 그 긴 시간을 돌아온 것 같았다. 눈썹이 지워졌지만, 대신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었다. 얼굴이 아니라,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