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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균열을 메우는 시간

by 라비니야

월요일 저녁, 가게 앞 골목.
지난번보다 더 낡아 보였다. 아니, 내가 더 예민해졌을까.
문을 열자 익숙한 장미향이 밀려왔다.

“오셨어요.”
주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고요했다.
“네. 앞머리가… 조금 옅어져서요.”
“처음엔 다 그래요. 자리 잡기 전까지는 부서지기 쉬워요. 사람도 얼굴도.”
그녀의 말은 늘 은유였다. 나는 그 은유에 자꾸 기대었다.

누워 눈을 감았다.
바늘 소리.
스치는 냉기.
“조금 따가울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짜 강함도 다시 손을 봐야 했다.

그녀가 물었다.
“요즘 어떠세요?”
“그냥… 일하고, 버티고…”
“버티는 얼굴은 쉽게 무너져요.”
“그래도 필요하잖아요. 회사에서는.”
“네. 필요하죠. 하지만 너무 오래 쓰면 표정이 굳어요. 굳은 건 다시 펴기 힘들어요.”
나는 잠깐 숨을 멈췄다.
사람이 어떤 표정을 오래 쓰면, 그 표정이 그 사람의 성격이 되는 걸 나는 이미 여러 번 봤다.

“괜찮아요. 지금은 잘하고 있어요.”
그녀는 마지막 선을 그었다.
“조금만 더 버티세요.”
버티라는 말은 위로 같지만, 사실 버티는 사람에게 가장 잔혹한 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나는 그 말을 원하고 있었다.

시술이 끝났다. 거울을 들여다봤다.
첫날보다 더 선명했다.
“예뻐요.”
그녀는 또 말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예쁘다는 말이 아직은 어색했다.
하지만 부정하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섰다.
가게 앞 전봇대 불빛이 얼굴을 스쳤다.
눈썹은 살아 있었고, 나도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범석에게서 또 메시지가 왔다.
이번 주 중에는 식사 괜찮으세요?
나는 한참 고민했다가 답했다.
주중엔 바쁠 것 같아요. 다음에 봬요.
적절한 거리.
적절한 거절.
적절하게 버티기.

거울 앞에 섰다.
눈썹은 다시 강해졌다.
그러나 방심하면 또 옅어질 것이다.
나는 안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오늘은 이렇게 생각했다.
강함은 덧칠하는 것,
나약함은 드러나는 것,
둘 사이의 얼굴로 하루를 산다고.

내일도, 굳이 한쪽만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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