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건 팔할이 중소기업이다.02
처음 입사해서 배정받은 팀의 팀장님은 여러모로 나의 사회생활의 스승이 되어 주셨다. 여러 가르침이 기억이 나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겸손’이었다. 당시 상황은 연구소라지만 대부분이 연구보다는 제품 설계에 가까운 일을 하고 있었고 진정한 의미의 연구개발은 아직 미미했다. 소위 고급인력이라 불리는 석박사 인원이 거의 없었고, 팀장님은 나와 전공은 다르지만 석사 출신이셨다. 처음 회사를 다니며 뭐부터 해야 할지(사실 뭘 안 해야 할지도 중요하다)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던 나를 불러 이야기하셨다.
‘글치씨, 어때요? 학교랑은 다르지?’
‘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겸손하게 배우면 다 된다. 나도 첫 직장에서 사람들과 처음에 거리감이 느껴졌었어. 당시에 석사하고 온 사람은 내가 유일했거든. 그런데 실무적인 경험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것도 몰라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
‘네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아니지, 아는 게 있겠지. 하지만 여기 있는 분들이 아는 것도 이제 배워야 해. 겸손하게 가르쳐달라고 해서 열심히 배워. 그러면 처음엔 더디겠지만 더 빠르게 배우고 성장하게 될 거야. 나도 그랬고,’
‘넵’
넵 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거다. 실제로 자주 ‘그것도 몰라요.’를 듣고 있었다. 아마도 박사까지 했다며 모르는 게 있네 이런 의미였으리라. 하지만 겸손한 마음이 없던 나는 속으로 대답했었다.
‘그런 걸 굳이 알아야 되나요?’
하지만, 팀장님과의 대화 후에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다 필요한 것들이다. 나보다 잘 아는 사람에게 배우자. 그렇게 처음 배운 것은 제품의 치수 측정이었다.
3d 측정장비를 이용해서 측정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선임에게 부탁드렸다. 바로 창고로 부른 그분이다.
열심히 배웠다. 간단해 보이는 부분도 반복해서 물어보고 확인했다. 나중에 나도 누군가를 가르쳐 보며 알게 되었다. 가르쳐주는 시간을 내는 것은 직장인에게 쉽지 않은 희생정신이 필요한 일이다. 희생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한번 배울 때 잘 배워야 한다. 당시엔 까칠한 선임이다 보니 다음 기회는 더 없을 거라 여겨서 그랬지만 어찌 됐든 이해 안 되는 걸 넘어가 봐야 득 될 게 없다.
측정을 해보며 알게 된 것은 제품의 생산공차와 조립공차의 현실이었다. 꽤나 정밀한 제품을 생산하던 곳이었음에도, 제품 간의 치수 편차는 존재했다. 제품의 설계도면만 보고 상상 속의 완벽한 제품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는 것은 굉장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들이 적지만, 후에 제품의 성능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조립과정에서의 영구변형과 열변형까지 고려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후에도 선임님은 나를 이곳저곳으로 데리고 가서 많은 배울 기회를 주셨다. 정식 제품은 자동화 설비로 생산되지만, 프로토타입은 자동화설비까지 아직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 전문? 인 베트남 아줌마들의 수작업을 거치기도 한다. 다짜고짜 샘플 조립실로 나를 데려간 선임님이 말한다.
‘글치씨, 프라모델 만들어 봤어요?‘
‘네몇 번 해봤습니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잘 됐네요. 프라모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하더라고 ‘
핀셋으로 잡아야 하는 작은 부품을 현미경으로 보면서 조립하는 것은 거의 수행 수준이었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올라올 무렵
‘글치씨 내가 왜 여기 와서 같이 조립해 보는지 알아요?’
‘아.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세 샘플 제작을 해보면, 생산을 고려한 설계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어요. 그러면 생산 공차도 줄이고, 불량률을 낮출 제품설계를 할 수 있죠 ‘
생각보다 샘플을 잘 조립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제품의 도면을 보면서 좀 더 자세한 상상을 해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 부서 외의 분들을 좀 더 알 기회가 생겼다. 측정이나 조립이 아니더라도 회사 내의 다양한 직군의 업무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자원이 되어준다.
이렇게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설명해 주고, 소개해주는 일은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첫날 창고로 불렀던 선임은 사실 ‘츤데레’였다. 만남 자체가 축복이라고 말해도 될 거다. 이런 선임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