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간악마에게 틈을 빼앗긴 우리에게

스크린을 내려놓고, 머릿속 스크린을 켜자

by 글치

어느 날 문득,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로감과 집중력 저하가 계속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나만의 조용한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

알고는 있었지만, 진지하게 인식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저에게도 ‘3B’, 즉 Bed, Bus, Bath라는 틈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들은 길지 않지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그저 생각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유의 시공간이었죠.


그런데 어느새 이 틈마저 무너져 버렸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마트폰과 숏폼 콘텐츠의 침공에 의해

그 조용함의 방어선이 거의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현대인은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바쁘다는 말이, 생각할 시간까지 빼앗겨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문제는, 분명 존재하던 그 작은 틈들—

출퇴근길, 잠자기 전, 혹은 욕실에서의 몇 분조차

시간의 악마가 노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 보이지 않는 침공의 주체를

‘알고리즘’이나 ‘트렌드’라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시간악마(Time Demon)’**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형체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며,

우리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존재.


정말 무서운 건 이겁니다.

하버드대학교의 한 연구(2014, Science 게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단 15분간 아무 자극 없이 조용히 있는 것보다,

전기충격을 스스로에게 가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가만히 있음’을 견디기 어려워하고,

자극 없는 시간을 불편하게 느끼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겁니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파스칼(Blaise Pascal)**이라는 17세기 수학자이자 사상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300년 전의 문장이 오늘날 이렇게 생생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공백을 견디지 못해 또 다른 화면을 켜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 스크롤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악마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주 단순합니다.

자기만의 틈을 지키는 것.

그 틈을 굳이 무언가로 채우지 않고,

공백으로 남겨두는 것.


우리는 늘 뭔가를 보고, 듣고, 연결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진짜 연결은

바깥이 아닌, 내면과의 연결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

스크린을 잠시 내려놓고,

눈을 감고, 머릿속의 스크린을 켜보는 건 어떨까요.


그 안엔

우리가 너무 오래 잊고 지낸

고요한 시간,

그리고 나 자신과의 대화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29화기술자, 결국 나를 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