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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춘희 Feb 16. 2019

이탈리아에서 운전은 처음이라

이탈리아_오르비에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중딩군', 

초2 '푸린양'과 함께 떠난 글 쓰는 엄마의 겨울 여행은 

오스트리아의 짧은 이야기와 이탈리아의 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될 텐데, 이상하네.”

5분째 자동차를 출발시키지 못하고 있다. 

피렌체에서부터 토스카나를 지나, 남부 풀리아 지역까지 렌터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운전경력으로 치자면 20년이 훌쩍 넘었으니 겁날 게 없는데 외국에선 초보운전자나 다름없다. 렌터카 직원에게 자동차 열쇠를 넘겨받은 지 5분 만에 극심한 후회를 하는 중이다. 


10년이나 스틱 차량을 운전한 사람인데, 까짓것 못하겠어? 돈도 아끼고 좋네 뭐! 일석이조네, 일거양득이네 하며 호기롭게 소형 스틱 차량을 렌트했다. 그리고 지금 운전석에서 5분째 후진하는 기어를 넣지 못하고 있다. 조수석에 앉은 중딩군, 뒷좌석에 앉은 푸린양까지 기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차가 움직이길 고대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전진하는 5단 기어가 들어가고 나면 후진기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주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자동차는 내가 알고 있는 범주를 훌쩍 벗어났다. 어쩌지? 





렌터카 사무실 앞 도로에 주차되어 있는 우리 렌터카 앞에 커다란 트럭이 세워져 있다. 앞 트럭과의 간격이 좁아서 일단 우리 차를 후진해서 뒤로 이동해야 도로에 진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후진기어를 어떻게 넣는지 모르겠다. 차 열쇠를 건네준 직원에게 다시 가서 도와달라고 할까? 아니다! 기어도 못 넣는 어리바리한 한국 여성의 이미지를 남기고 싶지 않다. 결심했다. 트럭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기로!


트럭이 움직인다. 힘차게 1단 기어를 넣고 출발한다. 

꿀렁. 

“엄마, 차가 흔들려.”

“시동이 꺼진 것 같은데?”

시동이 꺼졌다. 10년 만에 새로 하는 스틱 운전이니 그럴 수 있다.

“오랜만이라서 그래. 다시 하면 문제없어.”

또 꿀렁. 

두 번의 꿀렁거림을 끝으로 자동차는 차도에 진입했다. 이제는 오르비에토 숙소까지 설정된 내비게이션을 따라 유유자적 드라이브를 즐기면 된다. 낮은 평원과 키 큰 삼나무가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는 토스카나 자동차 여행이라니, 들뜬다.  





빨간 신호다. 피렌체 시내 교차로 맨 앞에 섰다. 

초록 신호다. 1단 기어를 넣고 출발하려는 데 순간 차가 뒤로 밀린다. 엇! 브레이크를 밟았다. 평지인 줄 알았는데 경사가 있나 보다. 다시 1단 기어를 넣고 출발하려는데 차가 뒤로 더 밀린다. 엇! 브레이크를 다시 밟았다. 우리 차 뒤엔 시내버스가 서있다. 초록 신호로 벌써 바뀌었는데 우리 차가 느닷없이 뒤로 밀리며 브레이크를 밟으니 시내버스 기사가 당황한 눈치다. 


1단 기어를 넣고 출발하려는데, 이제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뒤로 밀리면 어떡하지? 기어를 넣으면서 밟은 왼발의 클러치를 살짝 떼면서 오른발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하는데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시동이 꺼지고 경사로에선 차가 뒤로 밀린다. 기어를 변속하는 번거로움만 생각했지 출발할 때의 괴로움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괴롭다.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던 피렌체 할아버지들이 우리 차로 몰려들었다. 천천히 가보라고 손짓을 한다. 마음을 다잡고 후! 1단 기어를 넣고 클러치에서 발을 떼며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려는 순간, 차가 뒤로 간다. 할아버지들이 동시에 어어어! 소리를 내며 우리 차를 손으로 두들긴다. 

우리 차 꽁무니가 뒤에 서있는 시내버스에 부딪힌 것 같다. 아니 부딪혔다.

“엄마,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겠어?”

아이들이 사색이 되었다. 나도 사색이 되었다.

할아버지들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며 다시 출발하란다. 

“못하겠어요. 어쩌죠?”

유리창을 열고 할아버지들에게 하소연을 했다. 

“괜찮아. 다시 해봐. 버스는 괜찮아. 노 프라블럼이야.”

분명 부딪혔는데 시내버스 기사가 달려와 따지지 않는 걸로 봐서 진짜 문제가 없나 보다. 다시 출발에 도전해보자. 






망했다. 이번에도 미처 액셀러레이터를 밟기 전에 차는 멈춰 섰다. 바짝 붙어있는 시내버스 덕에 뒤로 밀리지 않았을 뿐, 앞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울고 싶다. 지켜보던 할아버지들이 이번에는 버스로 옮겨갔다. 버스기사가 버스에서 내린다. 버스를 도로 한 복판에 세워두고 나에게 저벅저벅 걸어온다. 렌트한 지 10분 만에 나는 접촉사고를 낸 것이다. 버스기사의 윽박지름을 당해야 할 것이고 수리비용을 물어야 할 것이다. 버스기사가 걸어오는 약 3분 동안 그야말로 ‘멘탈 붕괴’를 경험했다. 

젊은 남자였다. 그는 조수석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무슨 일이요?”

“미안해요. 출발을 못하겠어요.”


기사는 운전석 쪽으로 돌아오더니 나를 내리게 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았다. 날렵하게 차를 운전했다. 시내버스는 도로 가운데 서 있고 버스 승객들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횡단보도에 서있는 할아버지들도 고개를 쭉 빼고 있다. 기사는 우리 차를 도로 한 편에 가뿐하게 세우고는 아무 말 없이 버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버스를 몰고 사라졌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이렇게 쿨한 이탈리안 가이라니! 길 가에 서서 걱정스레 바라보는 할아버지들에게만 인사를 드렸다. 


10년 만에 운전하는 스틱 차량이니 초보운전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교차로에서 출발할 때마다 시동이 푸르륵 꺼지니 몹시 난감하다. 차창을 열고 외치고 싶다. 

“제가요, 운전 진짜 잘하는 데요. 10년 만에 스틱 운전을 해서 그래요. 베스트 드라이버라니깐요!”

교차로에 설 때마다 나도 아이들도 긴장한다. 출발할 때가 되면 아이들이 기어를 중심으로 모여든다. 

“엄마 준비됐어? 이제 출발이다!”

“자, 자! 준비됐지? 자, 클러치! 그리고 엑셀! ”

일심동체가 되어 자동차를 출발시킨다. 운전 30분 만에 종아리가 묵직하다. 






오르비에토 시내에 들어섰다.  3시간째 후진 없이 운전 중이다. 아직도 후진기어 넣는 법을 파악하지 못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끝냈다. 사진처럼 근사한 토스카나 풍경 한가운데 우리를 데려다 놓고 소임을 마쳤다는 듯 조용하다. 겨울 농가마을엔 길을 물어볼 행인도 없다. 비까지 내린다. 

가까운 농가 앞에 차를 세웠다. 비 내린 흙길이 어느새 진창이다. 

“저기요, 누구 안 계세요?”

아무도 보이지 않지만 대문 너머로 누구든 불러본다.  


멍멍이 두 마리가 미친 듯이 짖으며 달려온다. 잠시 후, 뚱뚱한 할아버지가 모습을 나타냈다. 주소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할아버지와 이탈리아어를 전혀 못하는 아줌마가 철 대문을 사이에 두고 섰다. 

“그러니까 길을 건너서 쭉 가다가 오른쪽 작은 길로 들어가라는 이야기지요?”

“맞아요. 맞아.”

놀랍게도 우리는 손짓 발짓 눈짓으로 완벽하게 소통을 해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후진기어가 들어갔다. 기어를 만지작거리다 옆으로 기울여 앞으로 밀었더니 컥, 하면서 기어가 들어가더니 후진 램프에 불이 들어왔다. 이젠 후진도 할 수 있다!


한가한 시골 도로이지만 좌우를 살피며 출발 대기를 하고 있자니 어김없이 긴장된다. 

“자, 오른쪽엔 차가 안 와. 준비됐어? 지금 출발하면 되겠어.”

“왼쪽도 차가 안 와. 엄마 지금이야!”

두 아이의 열정적인 코치를 받으며 부드럽게 출발했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포도밭 끝자락에 자리 잡은, 대문도 없고 초인종도 없는 2층 농가주택이다. 주택 앞마당에 차를 세운다. 비에 젖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느라 바퀴엔 진흙이 덕지덕지 붙었고 차 옆구리엔 황토가 잔뜩 튀어 붙었다. 

이젠 출발할 때 시동을 꺼트리지도 않고, 후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차는 역시 오토였어, 라며 후회했던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을 잊고 나는 자신감을 되찾았다. 거 봐! 할 만하잖아, 돈도 아끼고 얼마나 잘한 선택이냐.





그런데 그 밤, 나는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1단 기어를 넣는다, 차가 뒤로 밀린다, 1단 기어를 넣는다, 시동이 꺼진다, 후진기어를 찾는다, 못 찾겠다, 1단 기어를 넣는다, 아이들이 소리친다, 엄마, 차가 뒤로 가!!


#20년_무사고 #베스트_드라이버임_진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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