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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g Feb 17. 2023

[호찌민 한 달 살기] why not

엄마도 공부했어, 요리공부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에 해보고 싶던 것 중 하나는 "요리 수업 "이었다.

원체 요리도 좋아하거나와 3년 전에 교토에 갔을 때 도시락요리 수업을 들었던 게 지나고 보면 제일 재미있었던 거 같아서 이번에도 요리수업은 들어야지! 싶어 예약을 해두었다.


예약을 하며 아쉬웠던 건, 로컬 마켓에서 아침에 장도보고 수업도 하는 코스가 있었는데 마켓투어가 8시부터 시작이라 아무리 즙을 짜봐도 아이들 등교를 시킨 후에 거기까지 시간을 맞춰갈 자신이 없었다. 이 나라사람들은 아침을 왜 이리 빨리도 시작하는지, 무슨 클래스가 다 8시부터이다.

나 재래시장 구경하고 물건 사는 거 정말 좋아하는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선순위는 너희이거늘.

깔끔하게 마켓투어는 포기, 9시부터 시작하는 쿠킹클래스만 참석하는 걸로  예약했다.


"엄마도 오늘 요리수업 갈 거야" 하며 분주하게 같이 등교를 준비했다. 여기 오고 처음으로 조인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고 아침 일찍 시내까지 나가려니 나도 마음이 조금 분주했다. 그러면서도 자꾸 콧노래를 흥얼흥얼 거니 아이들이 "엄마 기분 좋아?ㅎ " 묻는다. 그럼 애들아, 배우고 싶은 거 배우러 가는 건 즐거운 거란다.


아이들 스쿨버스를 태워 보내고 바로 그랩을 타고 클래스장소로 갔다. 혼자 너무 서둘렀던 탓인지 아직 30분 정도의 여유가 있어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 잠시 모닝커피를 마시러 갔다.

'How have you bean' 이런 말장난 너무 좋지. 기대도 안 하고 왔는데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수준 높은 커피에게다 갓 구운 크라상까지... 내가 또 오늘 보물을 하나 찾았네 아싸, 하는 마음이었다.


카페 안은 청담동 저리 가라 하는 모던한 느낌인데, 밖은 오토바이가 쉴 새 없이 지나다니며 노천에서 쌀국수를 사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된다. 이안의 평온과 바깥의 분주함은 다른 속도와 온도 같다. 호찌민에서는 이 유리안과 밖의 현실분절감이 꽤 자주 느껴진다.


잠시 창밖멍을 때리고 보니, 어느덧 수업시작전이다. 부지런히 수업하는 레스토랑으로 찾아가 1등으로 앉아있으니 마켓투어를 하고 온 꽤 많은 사람들이 하이! 하며 들어온다.

프랑스인, 홍콩인, 미국인, 미국계 베트남인.. 인종도 참 다양한 오늘의 수업. 한국사람은 없는 듯하여 이상하게 안도가 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였다.


베트남식 억양으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선생님을 따라, 수업을 시작했다. 사실 식자재나 요리가 새로워서 그렇지 요리를 위한 스킬은 난이도가 엄청 낮다. 게다가 모든 재료를 다 세척, 손질, 소분까지 해서 코앞에 가져다 주니 우리는 그릇에 담긴 재료들을 섞거나, 담거나 하는 수준이다. 아이들도 충분히 따라와서 할 수 있었겠다 싶다. 다음엔 같이 와도 될 것 같네.


다양한 억양이 섞인 영어가 테이블 위로 오가며 이지토킹이 계속되었다. 선생님의 억양이 조금 듣기 어려운 걸 빼면 꽤 많은 베트남음식에 대한 정보가 식자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마트에 가면 절대 몰라서 사지 않았을 많은 채소도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했다.


피시소스가 중간에 나와서, 각자의 나라에서는 이걸 뭐라고 불으냐고 묻는 대화가 오가고 있었는데, 앞자리 친구가 "액젓"이라고 대답했다. 잉? 한국사람이었네? 나는 정확히는 몰라도 홍콩이나 다른 아시아라고 생각하고  한 시간 동안 영어로 서로 대화를 했다. 나중에 들었지만 그분도 내가 일본인인 줄 알고 그랬다고^^

사실 중간중간 모르는 영어단어가 나올 때마다 꿀꺽 삼키고 넘어가는 게 답답했는데, 그 후부터는 서로 단어도 해석해 주면서 같이 많이 돕게 되었다.


수업은 재미있었다. 애초에 모르는 식자재였던 여러 가지를 물리적, 화학적 융합을 통해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재미, 나도 이런 거 만들 수 있어! 하는 성취감, 오랜만에 중간중간 만든 음식을 같이 먹으며 둘러앉아 아이엠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같은 기분의 신입생환영회 첫날 같은 느낌도 좋았다.


야무지게 만들고, 먹고, 인증샷까지 다 찍고 나니 수업은 금세 끝났다. 이제 남은 2-3시간 동안 근처 구경이나 하며 돌아다녀야겠다 하고 나서는데, 아까 수업을 같이 듣던 필리핀 자매가 "이제 너 어디가? 우리 베트남 전통카페 갈 건데.. 같이 갈래?" 하고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대답.


" why not?!"

가뜩이나 오후에 뭐 할지 두리뭉실했던 나였고, 지금 이렇게 오랜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웃고 떠드는 에너지가 한껏 나를 들뜨게 하고 있고, 가뜩이나 커피 좋아하는 나인데, 내가 안갈이유가 없잖아.


같이 수업 들었던 한국친구까지 조인해 그랩을 타고 이동해 어떤 골목골목을 굽이 굽이 걸어 들어갔다.


홍콩의 어느 뒷골목 같은 좁디좁은 길에 있는 딱 봐도 오래된 카페. 카페의 내부에는 커피 어워드에서 수상했다는 상장들이 걸려있는 이곳은 베트남전통방식으로 커피를 내리는 전통 있고 베트남에서는 꽤 유명한 카페라고 설명해 주었다. 듣는 즉시 네이버에 검색도 해봤지만,한국 블로그 1개에만 있는 소개되어있는 카페.  우리나라에선 별로 알려지진 않은 곳이라 생각하니 묘하게 뿌듯했다. 이게 묘미지, 이렇게 우연히 와서 필연처럼 맞이하게 되는 아무도모르는 멋진 곳.


각자 가장 익숙한 베트남커피메뉴를 하나씩 시키고 기다리고 있으니, 주인할머니가 주방으로 와보란다.

주방에서는 지금 막 커피를 내리는 중이었는데, 커피를 한약 다리듯이 끓여서 몇 번이고 다시 섞고 내리고 브루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예전에만 해도 에스프레소 커피가 최고라고 여겼었는데, 커피에 관심이 많아지고 다양한 추출방식을 경험 보면서 각각 그만의 매력들을 알게 되었다. 베트남 커피는 우리가 접하는 추출방식과는 좀 다르지만, 여기 와서 지내며 매일 마셔본 소감은 "매력 있다"였다. 흔히 아는 [쓰어다]가 아니더라도 베트남식 블랙커피도 먹다 보면 묘하게 중독되는 나쁜남자같은 매력이 있다.


덕분에 추출하는 장면도 직관하고, 필리핀 자매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나눴다. BTS로 시작해 LG냉장고로 끝나는 수다가 재미있었지만, 확실히 예전에 비해 영어가 많이 딸려서 입이 종종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나이에 영어공부 뭐 하려 하냐고 손놓았던, 지난 몇 년이 좀 후회스러웠다. 이럴 때 유창하게 막 3-4 문장씩 안쉬고 약간의 유머도 섞여가며 내 생각을 그대로 표현했으면 좋았을 텐데.. 재밌는 건 앞에 있는 한국친구도 같은 표정이다. 말은 하고 싶은데 단어가 안 떠오르는 그 표정. ㅎㅎ 동병상련이었다.


커피값은 나이가 젤 많은 사람이 계산하기로 하고, 각자의 나이를 맞히는 게임(?)을 했는데 역시나 내가 젤 그것도 꽤 갭이 큰 연장자였다. 하긴 애가 초등학생이라고 말했으니 뭐 정답은 정해진 거였지.

나이를 공개하고 보니, 주니어들과 잠시 카페에 온 팀장님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즐거웠다. 젊은이들아^^ 네 명이서 마셔도 만원도 안 되는 커피를 쏘며 땡큐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마지막까지 하하 호호 웃으며 인사하고 헤어졌고, 돌아서자마자 필리핀 친구가 인스타그램으로 친구신청을 해주었다. 친절히 사진까지 올려주면서.


몇일치 만나야 할 사람들과 해야 할 대화를 오늘 반나절 만에 몰아서 한 느낌이라 살짝 기가 빨리는 느낌도 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들과 보낸 시간들은 또 너무 짜릿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상적인 루틴에서는 건드릴 리 없는 많은 생각들이 자극되는 이 넛지가 좋았다. 나라의 위상이라던지, 내 영어에 대한 성찰이라든지, 내 나이에 대한... 고찰.. 이.. 라.. 든.. 지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나 스스로 어떤 생각 들을 새롭게 해내지 못한다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자꾸 놓아야 한다. 그래야 사고가 확장되고 성장한다. 어디 가서 왕언니인 나이가 되었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 세계관을 넘기고, 성장하고 싶다.



이곳에서도 어쩔수 없는 하교렐라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도 역시 오늘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생각이 빵빵하게 가득 찬 표정이다. 1초라도 빠르게 엄마한테 털어놓고 싶어서 입술이 움찔거리는게  보인다.


집 앞 과일가게에 앉아서 각자 좋아하는 과일주스를 하나씩 시키고, 자- 이제 썰을풀어봐, 신호를 보내니  둘이서 경쟁하듯 오늘 있었던 재미있던 일들을 쏟아붓는다. 내가 오늘 느꼇던 이런 기분을 요즘 너희도 매일 학교에서 느끼고 있겠구나 싶으니, 평소보다 더 공감이 되고 고개가 끄떡여진다.


근데 엄마는 오늘 뭐했어?딸이 물었다.


"엄마도 오늘 공부했어. 요리공부. 너희들처럼 다양한 새로운 친구들과 새로운 걸 배우고, 영어로 계속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했어 오랜만에. 가끔 중간에 못 알아들으면 좀 답답하기도 하고 그랬어. 너희도 그랬지?
끝나고 나오는데 필리핀 친구가 카페에 가자고 해서 엄청 유명한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셨어."


엄마"도" 재미있었겠네! 하며 맞장구를 쳐준다. 이곳에 와서 각자의 곳에서 서로 새로운 경험을 쌓고 공유하고 있는 이 시간이 대견하다. 각자의 세계관을 넓히는 이 과정이 달콤하기만 하다. 나 역시 오늘만큼은 보호자가 아닌, 아이들과 같은 학생처럼 보낸 하루임이 대견하다. 매일매일 더더, 나도 학생 같은 마음으로 새로운 걸 더 많이 해봐야겠다는 다짐 같은 걸 해본다.



불쑥 아들이" 엄마 나 사람들이 오토바이 타는 거 매일 보니까 나도 오토바이 타보고 싶어"  라며 화제를 바꾼다. 사실 좀 걱정되기도 하고, 나보다 더 걱정할 남편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안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 기분으로 좀 몰아치기로 했다.


"why not!"


이번주말엔 아이들과 오토바이를 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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