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성과 다양성
평소 꽃 이름에 관심이 많다. 길을 가다 모르는 꽃을 만나면 꼭 어플을 켜고 사진을 찍어 이름을 확인한다. 글자로만 알고 있었던 백일홍이 이렇게 생겼구나도 알 수 있고. 구절초와 개망초가 다른 거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외 황금리시마키아, 엘라티올 베고니아, 란타나 같은 생전 처음 보는 이름도 잔뜩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게 꼭 100% 성공하는 건 아니다. 분명 자주 봤지만 이름을 몰라 어플로 찍어보면 정체가 뭔지 알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거슬리는 배경 제거하고 훼손 안 된 건강한 이파리와 꽃을 찍었는데도 검색이 안 된다. 몇 번을 시도해도 실패다. 그럴 땐 포기하고 가던 길을 간다. 걸어가면서도 못내 아쉽다.
2년 전쯤 우연히 들른 미술 전시에서 그러한 나의 아쉬움에 대한 답을 마주쳤다. 식물의 잎을 테마로 한 디지털 이미지였다. 그런데 그냥 식물의 잎이 아니라 해당 식물 잎의 전형에서 많이 벗어난, 소위 기형(?) 잎들을 모사한 이미지였다. 누가 봐도 은행잎이 아닌 은행잎도 있었고, 기이하게 생긴 고사리도 있었다. 그외에도 내가 익히 아는 식물들이 많았지만, 이게 그거 맞아? 싶은 이미지 예시가 많았다.
작가의 코멘트에는, 자연도 이처럼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기에 특정한 범례만을 일컬어 그것이 정상이고 평균이라 말할 수 없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전시장에서 안내해 준 작가는, 여기 전시된 잎들은 식물 이름을 알려주는 어플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이들도 엄연히 해당 식물의 한 예시라고 직접 해설을 덧붙였다. 작가가 상상해서 그린 게 아니라 실제로 본 것들을 모사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기술적 분석을 공부하다 특정 기법을 배우고 나면, 책에 나온 그 캔들의 패턴을 실제 차트에서도 찾아 헤매게 된다. 하지만 책과 꼭 같은 형태의 패턴을 실전에서 찾는 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책에는 딱 전형적인, 그래서 초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패턴을 찾아내 싣기 때문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모양이 바로 ㅇㅇ패턴이군 하며 오해 아닌 오해를 하게 되지만, 저자 입장에서는 또 설명을 명확하고 쉽게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실전에는 저자가 소개한 것과 같은 모범적인(?) 캔들 유형 따위 거의 나오지 않는다.
본질은 시각적인 패턴을 익히는 게 아니라, 그러한 패턴이 나오는 이유와 맥락을 이해하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여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책에서 나온 형태와는 사뭇 다르더라도 동일한 패턴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을 잘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 눈도 좋아야 하지만 뇌도 좋아야 한다는 말씀.
하지만 또 그러다 보면, 해당 기법의 모양과 너무 이질적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ㅇㅇ패턴은 아닐까 의심하다가 기대하고 희망을 품게 되기도 한다. 희망이란, 한 번도 품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 번 품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렇게 희망회로를 계속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눈앞의 패턴이 책에서 배운 패턴과 아주 쌍둥이라며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결국 손가락을 섣불리 놀리게 된다. 그러다 골로 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니까, 책에 나온 모양 그대로 패턴을 외우는 것도 금물이지만, 반대로 너무 이것도 저것도 다 그 패턴이라고 넘겨짚는 것도 금기사항이다. 이처럼 중도를 찾아 지키는 것은 어렵지만, 살아남으려면 해내야 한다. 그래야 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 지금 눈앞의 차트가 어제 배운 기법처럼 보이는가. 그렇다면 시각적 이미지에 속지 말고, 일단 왜 이런 캔들이 나타났을지 그 맥락을 따져보는 습관을 들여보자.
이는 비단 주식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눈앞의 사람을 두고, 이 사람은 아마 이런이런 유형의 사람일 거야, 하고 단정짓기 전에 왜 이 사람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상황과 이유를 헤아려보면 어떨까. 미리부터 사람을 재단하지 말고, 조금은 더 천천히 오래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면 어떨까. 실은 이 말은 나에게 먼저 권하고 싶다.
Q. 일단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형적인 범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vs 전형에만 사로잡히면 좁은 편견에 갇히기 쉽다. 다양한 사례를 접하면서 식견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