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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취향은 각자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국내, 어떤 사람은 해외, 어떤 사람은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는 휴양지 위주, 어떤 사람은 체계적인 계획으로 채운 관광지 위주.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여행을 즐기죠. 물론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행의 의미 또한 취향만큼이나 천차만별이겠죠.
저는 느긋한 여유 파입니다. 모든 장소 중간에 커피 마시는 시간을 끼워 넣으며 쉬엄쉬엄 체력을 비축하고, 숙소 예약이나 항공권 예약 외엔 큰 계획을 세우지 않죠.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엔 귀찮은 마음과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다는 걱정이 먼저 앞섭니다. 하지만 막상 다녀오면 여행의 추억에 한동안 살아가는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아침입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곳에서 맞는 첫 아침, 창문을 열면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 평소 익숙한 동네의 소음 대신 새로운 소리들이 귀에 들어옵니다. 바다 근처라면 파도소리, 산속이라면 새소리, 도시라면 그곳 특유의 도시 소음까지도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다만 그날의 기분과 날씨, 우연히 만난 사람들의 추천에 따라 발걸음을 옮겨가는 것이죠. 골목길을 걷다가 예쁜 카페를 발견하면 들어가고, 현지인이 추천해 준 식당에서 예상치 못한 맛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런 우연한 만남들이 계획된 일정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기곤 해요.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진을 정리하면서 그때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 순간의 햇빛, 바람의 온도, 그리고 그때 느꼈던 자유로움까지.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가끔 그 기억들을 꺼내어 보며, 마치 잠시 다시 그곳에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어쩌면 여행의 진짜 의미는 새로운 곳을 보는 것보다, 평소와 다른 속도로 시간을 보내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급하지 않게, 여유롭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말이에요.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도 그 느긋함을 조금씩 일상에 가져오려고 노력합니다. 출근길에도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고, 평소 지나치던 카페에 잠깐 들러 커피 한 잔을 음미해 보는 것처럼요.
결국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마음가짐이야말로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책상 서랍 한쪽에는 여행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 하나와 카페 영수증 몇 장이 들어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따스한 오후 햇살과 여유로운 시간이 떠오릅니다. 아마 다음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도 여전히 귀찮다는 생각이 먼저 들겠지만, 그래도 또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또다시 그 기억들로 한동안 살아갈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