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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되면 집으로 온 식구들이 모입니다. 명절 전날 아침부터 전을 부치고 음식을 하고 좁은 데서 부대끼며 잠을 자고 일어나 다 못 뜬 눈을 비비며 절을 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이 반갑기도 한 한편, 저는 고생하는 엄마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새벽부터 부엌에서 칼질하는 소리, 기름 튀는 소리, 설거지하는 물소리. 엄마는 명절 사흘 전부터 이미 전쟁을 시작합니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냉장고 안을 정리하고. 함께 전을 부치고 돕는다고 도와도, 친척들이 도착하기 전날 밤에는 거실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거실에 모인 식구들은 그동안의 안부를 나눕니다. 훈훈한 웃음소리가 퍼집니다. 저도 그 자리에 앉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자꾸만 부엌 쪽으로 고개가 돌아갑니다.
부엌에는 이 집의 유일한 며느리인 엄마만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밥을 내고, 설거지를 하고, 과일을 깎고, 후식을 준비합니다. 거실의 웃음소리가 부엌까지 들릴 때마다, 저는 뭔가 잘못된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부엌으로 들어온 저를 엄마가 손짓으로 내보냅니다. 그마저도 “뭐 더 필요한 거 없어? “라고 묻습니다. 명절이 끝나고 나면 엄마는 며칠은 꼼짝 못 하고 누워 지내십니다. 허리가 아프다고, 무릎이 시리다고 조용히 파스를 붙이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전통도 좋고 정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의 희생 위에 차려진 밥상은 씁쓸합니다. 절에 모셔두었던 차례를 다시 집으로 들여오며 고생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한 번은 ‘아빠네 엄마 차례 지내느라 우리 엄마가 왜 이렇게 고생해야 하냐’며 불효막심한 말을 뱉었던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시간을 먼저 생각하며 묵묵히 준비하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명절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편이 무겁습니다. 다 함께 웃는 자리 뒤편에는 늘 엄마의 수고가 쌓여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전통을 이어가는 일보다, 그 전통 속에서 누군가가 다치지 않게 지켜주는 일이 더 소중하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엄마의 그 고된 손길이 아니라, 편안한 미소로 차려지는 밥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