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척척대마왕으로 임명합니다!
남편은 어딘가 새로운 공간에 가면 그렇게 아는 척을 한다. 지적 능력을 뽐내고 싶어서 그런 경우에는 내가 듣고 말면 되는 일이지만 그게 식당 같은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공간이면 말이 달라진다. 겨우 두 번째 간 식당인데 단골손님인 척 굴 때는 내 남편이지만 정말 창피하다.
제주도에 살 때, 회사에서 회식하면서 A라는 음식점을 갔는데 거기가 너무 맛있었다며 다음에 같이 가자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A 음식점에 가자고 했다. 외식은 한 달에 한 번도 많은 거라며 짠돌이 기질을 장착한 남편이 웬일인가 싶었다. 맛있는 걸 먹을 생각에 기분 좋게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곳은 제주 흑돼지 전문점이었다.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진 않는데 원형 식탁이 꽤 많았던, 장사가 꽤 잘 되는 곳이었다. 테이블, 손님이 많은 만큼 서빙하는 분들도 여럿 있었다. 우리 테이블로는 오십 대 정도로 보이는 이모님이 오셨다. 이모님은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뭐 시키젠?"
대충 "뭐 드시겠어요?" 이런 말이었다.
그때부터 남편의 아는 척이 시작됐다. 그것도 어설픈 제주어로.
"우리 제주 살암수다. 관광객 아님수다."
이모님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하며 주문을 재촉했다. 남편은 자신의 반응과 다른 이모님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경우, 다른 음식점 분들은 "아 제주 분이시구나."라고 반응을 했었기에 당연히 그럴 줄 알았던 것 같다.
나는 남편을 톡톡 치며 작게 말했다.
"그냥 평범하게 말해."
남편은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질주 버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주 맛져서 또 왓수다. 음...여기 숙성 돼지고기 오늘도 맛조우꽈?"
근본 없는, 국어책을 읽는 듯한 제주도 사투리 폭격에 옆 테이블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 이건 누가 봐도 제주 사투리가 아니라 연변 사투리에 가까웠다.
나는 남편의 돌발 행동에 당황해 볼이 새빨개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정말이지 숨고 싶었다.
남편은 이런 대답을 원했을 것이다.
"아, 제주도 분이니까 특별히 더 맛있는 부분으로 갖다 드릴게요!"
그런데 이모님은 굉장히 시크한 분이었다.
"뭐헙디?”
짧고, 굵고, 크고, 단호한 어조였다.
그 순간 난 보았다. 이모님의 미간에 세로로 난 주름이 흡사 협곡처럼 깊어지는 걸! 누가 봐도 이 말은 부정적인 말이었다. 대충 직역하자면 "뭐라고요?"였는데 의역하자면 "쓸데 없는 소리 말고 주문이나 해!"정도였으리라. 그 순간 나와 이모님의 마음은 너무나 동일했다.
나는 남편에게 "오빠 말 못 알아들으시잖아. 사투리 좀 그만해."라고 말했고, 식당에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나서야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그날 고기의 맛이 어땠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저 이모님의 "뭐헙디?"라는 공격적인 말투와 표정만 오랫동안 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문제> 음식점에 가서 해도 되는 행동은?
1. 사장님께 음식이 맛있다고 말한다.
2. 가능하면 뷰가 좋은 곳으로 앉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3. 재주문 시에 메뉴판을 다시 요청한다.
4. 한 번 왔으면서 단골 손님인 척 너스레를 떤다.
<오답> 4
-->너스레에서 멈추면 애교! 거기서 더 나가면 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