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남탓러
나는 살면서 힘든 일이 생기거나 벽에 부딪치는 일이 생겨도 남의 탓을 해 본 적이 없다. 모든 걸 나의 부족으로 여기며 내 안에서 이유를 찾으려 했다. 그래야 발전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대학원에 다닐 시절, 교육학을 깊게 공부하면서 알게 됐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너무 오래전이라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무언가 일이 벌어졌을 때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발전할 수 없다고, 문제의 원인을 '나'에서 찾아야 한다고, 어느 학자가 이야기한 이론이 있었다.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외웠었는데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남편은 나와 너무 다르다. 대부분의 원인을 '나'가 아닌 '너'에서 찾는다. 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도 아내 탓, 수리 기간이 지나 차에 이상이 생겨도 아내 탓, 놀다가 자기 잘못으로 아이가 넘어져도 아이 탓, 셀 수 없을 정도의 '남 탓' 기록 보유자다.
아주 작은 예를 들자면, 예로 드는 나조차도 창피한데, 어느 날 남편은 다음 날 일이 있어 6시에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전날이 금요일이라 아이들이랑 친정에 가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기에 친정에 가 있었다. 다음 날, 눈을 뜨니 7시를 좀 넘어 있었다. 나는 남편이 왠지 못 일어났을 것 같은 생각에 전화를 했다. 아무리 해도 받지 않았다.
'여태 자고 있는 게 분명해!'
전화를 하도 안 받기에 문자도 남겨 보고, 시끄럽게 울리는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도 해 봤지만 30여 분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오. 나 늦었어! 왜 안 깨웠어!"
"뭐?"
"와이프가 좀 깨워 주지."
"알람 안 맞췄어?"
"핸드폰 꺼져 있었어."
"핸드폰을 켜 놨어야지."
"와이프가 핸드폰 코드를 빼 놓고 갔잖아. 난 당연히 연결된 줄 알고 충전 선을 꼽았지."
"뭐라는 거야? 그건 본인이 확인했어야지."
"아 진짜 와이프 때문에. 큰일났다. 끊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콘센트 확인도 잘 안 해 놓고 나한테 덮어 씌우다니. 그러나 나는 쉽게 흥분하지 않았다. 솔직히 뭐 그리 화나지도 않았다. 그간의 남탓을 꾸준히 봐 온 내공이 있기에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일이 남편에게서만 끝나면 다행인데 아이들이 있기에 우려되는 면이 있다. 남편의 네탓이오 권법을 아이들이 그대로 이어받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내가 특훈을 하고 있다.
"살다 보면 마음대로 안 될 때도 있고, 너희가 원하는 걸 못 얻을 때도 있어. 그렇다고 남 탓을 하면 될까 안 될까?"
"안 돼요."
"그래. 모든 일의 원인을 밖에서 찾다 보면 늘 불평만 하고 살게 돼."
"아빠처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아빠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라고 할 수가 없는 게 부모로서 부끄러웠다. 남편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줄 수도 없는 게 아이들 앞에서도 남편은 네탓이오 권법을 너무나 많이 사용해왔다. 같이 놀아줄 때 겁을 주지 말라고 해도 잡아먹을 듯 달려가고, 그러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면 "왜 넘어지고 그래?"라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치미를 뗀다. 아이가 "아빠가 오지 말라는데도 달려왔잖아."라고 하면 "네가 넘어진 거지. 내가 밀었어?" 이러고 있다. 그럴 때 내가 중재를 안 하면 아이들이 그런 말투를 배울 것만 같아서 끼어들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말한다.
"와이프가 그러니까 애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거야."
또 다시 남탓 권법을 쓰는 자 앞에서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내 입이 아프다. 언제쯤 깨닫게 될까? '네탓이오'가 아닌 '내탓이오'를 마음속으로 외칠 때 삶이 조금 더 가벼워지고, 밝아진다는 것을. 부디, 아이들만큼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때, 돌부리를 발로 차며 우중충한 하루를 보내지 않길, 힘차게 다시 일어나 운동화 끈을 고쳐 매다가 바닥에 핀 들꽃을 보며 행복해할 줄 아는 넉넉함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바랄 뿐이다.
<문제> 아침에 일어났는데 휴대폰이 꺼져 있어 약속 시간에 늦었다. 이럴 때 당신은?
1. 휴대폰이 꺼진 걸 확인하지 못한 내 탓을 한다.
2. 휴대폰이 꺼진 게 아내가 어제 멀티탭을 끈 탓이라고 생각한다. 3. 약속 상대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4. 앞으로 자기 전 휴대폰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자기로 다짐한다.
<오답> 2
-->멀티탭 확인도 당신의 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