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감기쯤이야!

약 안 먹어도 난 끄떡없어!

by 정유진

남편은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면서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특히나 감기에 걸려서 콜록대면서도 "난 원래 감기약 안 먹어. 알아서 다 나아!"라며 병원에 안 가고 버틴다. 물론 의학적으로,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감기란 시일이 지나면 다 낫게 되어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목에서 쇳소리가 나도 병원에 안 가고 버틴다.


본인 아픈 거만 걱정이 되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내가 옮을 거까지 걱정돼서 병원에 가라고 하는 말인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나는 천식이 있어 감기 한 번 걸리면 보름씩 가는데, 아내의 이런 상황을 알고도 버틴다. 얼마 전에도 감기에 심하게 걸려 놓고 일주일을 안 가고 버티다가 결국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먹고 나서야 싹 나았다. 그럼에도 "어차피 약 안 먹었어도 일주일 지나면 낫는 거였어."라며, 마치 자기 자신을 불사조처럼 여기는 듯한 발언을 한다.


결혼하고, 남편의 이런 점을 발견하게 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아빠도 남편처럼, 병원에 도통 가려고 하지를 않았다. 감기에 걸려도, 무릎이 아파도, 그저 알아서 다 낫는다며 '자연 치유'를 강조했다. 엄마와 내가 속이 터져서 "아빠. 가족들 걱정하는 거 생각해서라도 좀 병원에 가요."라고 할 때마다 "어차피 다 나아. 시간 지나면."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결혼해서 보니 웬걸, 내 남편이 이러고 있다. 본인들 말대로 병원에 안 가고도 낫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을까? 문제는 버티고 버티다 결국은 병원행으로 귀결되니 답답한 노릇이다. 게임처럼 목숨이 두 세 개인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불사조도 아닌데,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지 답답하다.


이런 태도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도 비슷한 버전을 양산해낸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아파트가 갑자기 정전이 돼서 엘리베이터에 타지 말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주말이라 마침 집에 있던 아빠가 갑자기 외투를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아빠. 어디 가? 엘리베이터 타면 안 된다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파트는 남은 전력이 있어서 아무리 정전이 돼도 엘리베이터는 다 움직여."


엄마도 그러지 말라며, 방송 나왔으니 좀 집에 있으라고 말려 봤지만 아빠는 이미 밖으로 나갔다. 나와 엄마는 불안해서 바로 따라 나가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불이 금세 나가고 말았다. 그 어떤 층수도 표시되지 않았다. 아빠는 그 안에 있는 게 분명했다. 내가 "아빠! 거기 있어?"라고 부르자 저 멀리서 에코와 함께 아빠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야! 이거 왜 이래! 어? 왜 안 움직여!"


나와 엄마는 어이가 없을 틈도 없었다. 이러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해 아빠가 큰 부상을 입진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때 방송이 또 나왔다.


"현재 정전으로 엘리베이터 운행이 정지된 상태입니다. 곳곳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노약자 분들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신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면 순차적으로 구조해드리겠습니다."


'어린이'도, '노약자'도 아닌 우리 아빠. 당시 아빠는 겨우 사십 대였다. 엄마는 그 방송을 듣고 조금 창피하긴 했지만 관리실에 전화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남편이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어요! 여기 14층인데 아마 12층 정도에서 멈춘 것 같아요. 얼른 좀 구조해 주세요."


다행히 직원이 급히 와서 아빠 구조 작전을 펼쳤다. 나는 아빠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아빠. 좀 기다려! 도와 주신대!"


그런데 아빠는 또 센 척을 했다.


"뭘 도와 줘. 난 괜찮은데. 다른 사람 먼저 꺼내시라 해."


말과 달리 아빠의 음성은 굉장히 떨리고 있었다.


"거기 몇 층인줄 알아?"

"몰라. 타자마자 멈췄어."


웃긴 상황인데,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나는 안전 과민증이 있는 사람이므로 아빠가 추락할 것만 같이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그리고 직원이 아빠를 드디어, 구조했다. 아빠가 탄 엘리베이터는 11층과 12층 사이에 걸쳐져 있었고, 아빠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 사이에도 엘리베이터가 밑으로 내려갈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빠는 무사히 구조됐고, 엄마와 나는 너무나 감사하다며, 몇 번이고 인사를 했다. 그날, 아빠는 "뭐 이런 걸 가지고."라며 짐짓 평온한 척했지만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다.


지금도 가족들이 명절에 모이면 이 에피소드를 꺼낼 정도로, 아빠의 이날 행동은 우리 가족의 머릿속에 아직도 각인되어 있다. 나는 심히 걱정된다. 우리 아빠와 평행이론을 떠올릴 정도로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는 남편이 언젠가 아빠를 뛰어넘는 행동을 할까 봐.



<문제> 다음 중 정전 안내 방송이 나올 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1.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면 무조건 내려야 한다.

2. 고층에 있다면 계단을 이용해 내려온다.

3. 남은 전력이 있을 거라 생각해 당당히 엘리베이터에 탄다.

4. 외출한 가족들에게 정전을 알려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게 한다.







<오답> 3 --> 안내 방송을 제발 따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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