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별은 여자입니까?
남편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남자는~"이다. 예를 들어, "남자는 다쳐도 안 울어!", "남자는 그 정도는 참는 거야.", "남자는 그렇게 안 해!" 등등이다. 주로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아이들도 지긋지긋해서 귀를 막아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외동아들로 혼자 자란 남편은 그 티가 팍팍 난다. 주변에 누나나 여동생이라도 있었으면 남편의 그런 행동을 지적해줬을 텐데 그런 사람이 없었으니 "남자가~"로 시작하는 말을 해도 누구에게도 제지를 받지 않았을 거다. 어머님이 그런 걸 따끔히 지적하고 바로잡아줬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않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해 온 그 말 습관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울 때 부모가 가장 해서는 안 되는 행동 중 하나가 성 역할을 고정해서 설명하는 거라고,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남자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래야 돼." 등등 규정지어서 말하지 말라는 거다. 그런데 남편은 그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육아의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나는 여섯 살, 여덟 살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남자아이다 보니 엄마와 노는 걸 좋아하면서도 가끔은 몸으로 노는 걸 원할 때가 있다. 베개 싸움을 해도 레슬링을 방불케하기에 나는 그럴 때마다 "그만! 그러다 다친다. 조심히 놀아."라고 말하니, 그럴 때만 아빠를 찾는다.
"아빠! 놀이터 가요."
남편은 좋다고 가자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은 쿵쿵 뛰기 시작한다. 내가 같이 나가는 날은 마음이 놓이지만 내가 집안일을 해야 하거나 몸이 피곤해 같이 못 나갈 경우, 아이들은 남편과 함께 나가 '상처'와 함께 돌아오기 때문이다.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가 아무 일 없이 들어오는 경우는 열 번 중에 두세 번 꼴이다. 나머지 일고여덟 번은 아이들이 다쳐서 들어온다. 손이 까져서 들어오거나 무릎에 피가 나서 들어오거나, 코피가 나서 들어오거나, 심할 경우엔 머리를 부딪쳐서 들어오기도.
어느 날이었다. 남편은 저녁을 먹고 갈증이 난다며 맥주를 사러 간다고 했다. 혼자 가기 심심했는지 "얘들아. 아빠랑 편의점 갈래?"라고 외쳤고, 마침 젤리를 먹고 싶었던 아이들은 둘 다 따라가겠다고 했다. 아파트 단지 내 편의점에 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10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했다.
"왜 안 와?"
"금방 가. 끊어."
자초지종을 설명도 않고 그냥 끊어버렸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난 뒤에야 들어왔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둘째가 누가 떠민 것처럼 급히 들어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엄마! 나 넘어져서 손 다 까졌어."
손에는 크게 긁힌 상처와 함께 피까지 나고 있었다.
"뭐야? 어디서 그랬어? 언제 그런 거야?"
"나가다가 그랬어. 집 바로 앞에서."
그러자 첫째가 설명을 거들었다.
"얘가 넘어져서 손 다쳐서 울었는데 아빠가 '남자는 안 아파!' 이러고 그냥 일어나라고 했어."
남편은 내가 뭐라고 할 걸 알고 맥주를 정리하는 척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뭐야. 애가 다쳤으면 들어와서 밴드를 붙여주든가, 그도 아니면 밴드를 사서 붙여줬어야지!"
"그 정돈 다친 것도 아니야. 뭘 그런 걸 가지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작은아이는 "뭘 다친 게 아니야! 나 아프다고 울었잖아!"라고 울먹이며 말했고, 큰아이도 "맞아. 아빠가 그리고 편의점 간다고 했으면서 저 멀리 마트까지 데리고 갔잖아!"라고 항변했다. 나는 작은아이의 손을 소독한 후 밴드를 붙여주며 "다음부터는 멀리 가면 따라가지 마."라고 말했다.
"앞으로 멀리 갈 거면 애들 데리고 가지 마. 왜 집앞 편의점 놔두고 거기까지 가? 이 추운 날."
"맥주가 너무 비싸잖아, 편의점은. 마트에서 얼마나 싸게 산 줄 알아?"
싸 봤자 몇 백 원 차이인 걸, 뭘 그렇게 추운 날 궁상을 떨고 아이들을 힘들게 한 건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몸을 던졌다.
"와이프. 나 허리가 너무 아파. 아아아악!"
그러자 두 아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아빠. 남자는 안 아프다며."
"근데 아빠는 왜 아파? 우리가 아프다고 하면 맨날 '남자는 안 아파!'라고 했으면서. 치. 웃겨."
그리고 또 며칠 뒤, 장시간 운전을 하고 돌아온 남편은 목과 어깨가 결리다며 온갖 비명을 다 질렀다.
그 모습을 본 둘째는 핸드폰을 가지고 와 녹화를 했다.
"내가 찍었다! 남자는 안 아프다며 왜 소리를 지르지?"
"인마. 아빠가 아픈데 넌 웃으면서 찍고 싶어?"
"아빠도 그랬잖아."
그래. 나는 남편을 보며 배운다.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하고.
<문제> 다음 중 자녀에게 해도 되는 행동은?
1. 넘어졌을 때 "괜찮아?"하고 걱정하며 묻는다.
2. 아들에게 "남자는 아파도 울지 않아!"라고 말한다.
3. 딸에게 "여자도, 남자도 다치면 다 울 수 있어."라고 말해 준다. 4. 밖으로 나가다가 아이가 넘어져서 다치면 일단 집으로 들어와 밴드를 붙여준다.
<오답> 2
-->'남편' 당신도 남자입니다. 평생 안 울 자신 있다면 그렇게 하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