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테무산 신발

봤지? 내 경제 관념!

by 정유진

짠돌이 남편은 옷이 너무 없다. 결혼하고 드레스룸을 정리하는데 내 옷의 절반도 안 되었다. 코트고 점퍼고 20년된 것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티셔츠는 말할 것도 없다. 사계절 티셔츠를 다 합쳐도 20개가 안 된다. 새로 사라고 해도 사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그런 생활에 만족하지도 않는다. 아침에 옷을 찾아 입을 때마다 "아 왜 이렇게 입을 게 없어?"라고 혼자 구시렁구시렁거린다.


"그러게 옷 좀 사라고."라고 말하면

"와이프. 아껴야 잘 사는 거야. 경제 관념을 장착하고 살아야 돼."

"아니, 친구들이랑 술 마실 돈으로 옷을 샀으면 한 트럭은 샀겠네!"

"아니라니까. 나 요즘 술도 잘 안 마시는데 무슨 소리야. 그리고 옷이 뭐가 중요해? 내가 브랜드인데!"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말을 도돌이표처럼 한다. 그럼 입을 게 없다고 툴툴거리지나 말아야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결혼하고, 처음 맞는 겨울에 남편은 낡은 점퍼를 입고 출근을 했다. 그 모습이 보기 짠해서 내 돈으로 코트 두 벌을 사 줬다.

"와이프.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니야?"라고 하면서도 남편은 아주 흡족해했다. 그때 알았다. 자기 돈으로는 사기 싫지만 남이 사 주면 입는다는 걸.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며 내 시선은 남편이 아닌 아이들에게로 향했고, 남편이 뭘 입든, 뭘 신든 시야 밖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발이 낡았다며 몇 달을 구시렁대기에 "제발 좀 사 신으라고."라고 말했고, 남편은 너무 비싸다며, 신발 가격 책정이 잘못됐다며 너무 비싸게 판다며, 경제가 어려운데 비싼 걸 어떻게 신느냐는 둥 도돌이표가 시작됐다. 나는 "알아서 해."라고 답했고, 며칠 뒤 택배 하나가 집앞에 도착했다. 그 유명한 '테무'에서 도착한 것이었다.


퇴근한 남편은 신이 난 표정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택배 상자를 열었다.

"와이프! 내가 이걸 얼마 주고 산 줄 알아?"

"아, 신발을 왜 테무에서 사! 신어보고 사야지. 그래 놓고 안 맞으면 어쩌려고!"

"다 맞아. 뭘 안 맞는다 그래!"


남편은 어느새 신발을 신고 거실 복도를 활보하고 있었다. 외관은 그럴싸했지만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너무나 믿었기에.

"이게 얼마인 줄 아냐고."

"몰라. 한 2만 원 줬겠지!"

"땡! 틀렸어. 만 팔천 원! 어때? 와이프가 사라는 건 다 십만 원이 넘었는데 이 가격에 엄청 잘 샀지!"

남편은 굉장히 들떠 있었다. 자신이 마치 가성비 갑 물건을 산 것처럼!

"얘들아. 아빠 멋있지? 아빠 어때?"

장난감 가지고 노느라 정신이 없는 아이들 앞에 신발까지 들이밀며 계속해서 대답을 요구했다.

"하나도 안 멋있는데."라는 아이들의 대답에 남편은 "아직 어려서 뭘 잘 몰라. 아빠 나이 되면 다 알게 될 거다 이 녀석들아."라며 혼자 신이 나서 웃었다.


"그거, 내가 보기엔 며칠 신지도 못 하게 될 거야."

남편은 내 말에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아 왜 그렇게 생각해? 싸다고 다 안 좋은 게 아니라니까. 와이프는 몰라도 너~무 몰라!"


다음 날.

남편은 테무산 신발과 함께 출근했다.

점심 무렵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니, 아주 다 죽어가는 목소리였다.

"와이프~~~~!!!"

"뭐야? 어디 다쳤어? 왜 그래!"

"와이프 나 너무 아파."

"뭐야! 지금 어딘데 그래? 서울로 회의 간다며. 어디야 지금!"

"와이프 나 피 나고 장난 아냐. 와이프 나 너무 아파."

"아 진짜 무슨 일이냐고! 말을 하라고!"

"나 신발..."

"뭐?"

"신발 때문에 발이 너무 아파. 발 다 까지고, 내가 원래 신발 뒷부분 절대 구겨 신지 않는 사람인데 나 도저히 못 참겠어서 접었어."

6927a83cc58ca.png?imgSeq=72827

"아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신발은 신어보고 사야 한다고 했잖아!"

"와이프. 난 진짜 너무 아파. 아오."

'너무 아프다'는 말만 반복하던 남편.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패잔병을 연상케했다. 어제 너무너무 잘 샀다던, 테무산 신발은 뒤축이 구겨진 채,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남편은 그보다 더 너덜너덜해져서 집에 오자마자 뻗어버렸다.


그 후, 그 신발은 우리 집에서 영영 볼 수 없었다.

나 몰래 버린 게 분명했다.




<문제> 다음 중 신발을 구매할 때 해도 되는 행동은?

1. 신발은 신어보지 않아도 싸면 무조건 구매한다.

2. 신발은 무조건 신어보고 구매한다.

3. 신발은 조금 비싸더라도 편안한 거로 구매한다.

4. 오래된 신발은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





<오답> 1

->'싼 게 비지떡'이란 옛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다!

keyword
금, 토 연재
이전 02화척척척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