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제로 남편
2017년, 어느 날. 당시 나는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임신 4개월 정도였던 거로 언뜻 기억이 나는데 입덧이 심한 날에는 밥이 영 당기질 않아 빵이나 과일로 간단히 해결하고는 했다. 그날도 아침부터 어질어질하고 입덧이 심해 그냥 누워만 있고 싶었다.
남편은 일찍 출근해서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영화를 보는 게 취미였던 나는 영화 한 편을 보며 나름대로 혼자만의 시간을 아주 잘 즐기고 있었다. 집순이 기질이 있는 나는 밖에 나가 누군가를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취미 생활을 하는 게 좋았다. 더군다나 그 당시엔 내 고향 인천이 아닌 제주도에 살고 있었기에 만나려고 해도 만날 사람도 딱히 없었다.
그날도 멀미하는 것 같은 기분에 아침 겸 점심을 토스트로 해결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와이프. 점심 먹었어?"
"아직. 입덧이 좀 심해서 그냥 간단히 먹으려고."
"간단히 먹으면 어떡해. 기다려 봐!"
기다리라니, 뭐라고 사온다는 소리인가? 아니면 집으로 뭘 배달시켜 준다는 이야기인가? 그러나 나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다른 일이 벌어지리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남편은 유난히 집밥을 좋아했다. 남들이 들으면 내가 굉장한 한식 대가인 줄 알겠지만 전혀!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 늘 돈돈돈 타령이었다. 커피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내가 밖에서 커피를 사 먹는 걸 보면 늘 구시렁댔다.
"믹스 마시면 되는 걸 뭐하러 삼사천 원씩 돈을 써? 와이프. 커피 원가가 얼마인 줄 알아?"
"오빠는 커피를 싫어하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백날 천날 커피를 밖에서 사 먹는 것도 아니고, 가끔 나왔을 때 사 먹는 건데 뭘 그렇게 말을 해? 그리고 집에서 먹는 커피랑 밖에서 먹는 커피랑은 맛도 달라."
"그래 봤자 커피가 그냥 커피지."
자기가 싫어하면 남도 싫어해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남자. 그게 내 남편이었다.
나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30분도 안 되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이프! 나 왔어!"
남편은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들어왔다. 손에는 역시나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뭐야? 뭐 사온다는 거 아니었어?"
"왜? 뭐 사올 줄 알았어?"
"그럼 왜 점심시간에 집까지 와?"
"와이프 걱정돼서 왔지. 밥 안 먹을까 봐."
"근데 왜 빈손이냐고."
"우리 떡볶이 같이 먹자."
"떡볶이가 어딨는데!"
"와이프가 해야지. 난 와이프가 한 떡볶이가 제일 맛있어. 시장에서 파는 경력 오래된 할머니가 하는 떡볶이보다 와이프 떡볶이가 훨씬 맛있어!"
지금이라면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며 내쫓았겠지만 당시 나는 나름 신혼이었기에 화가 나는 마음을 억누르며 떡볶이를 해서 먹고, 먹였다. 남편은 그렇게 떡볶이에 든 라면을 골라서 자기 배를 엄청 채우고는 기분 좋게 회사로 돌아갔다. 가면서 남긴 말이 더 가관이었다.
"내가 오길 잘했지? 나 아니었으면 와이프 굶었을 거 아냐. 이런 남편 없다."
개선장군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남편의 등짝에 파워 스매싱을 날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날 참은 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후회가 된다.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면 아마 이렇게 말하리라.
"야이 화상아! 떡볶이고 지랄이고 눈치 좀 챙겨라!"
<문제> 아내가 임신 중이다. 출근해서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입덧이 심해 점심을 먹고 싶지 않다고 한다.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1.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사 간다.
2. 아내에게 기분 전환할 겸 나오라고 해서 경치 좋은 곳에서 만나 좋아하는 것을 먹게 한다.
3. 당장 집으로 달려가 아내에게 떡볶이를 해 달라고 졸라서 같이 먹는다. 4. 아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고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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