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의 남자아이들과 스페인! 열일곱 번째, 확실한 여행 추억 남기기!
여행에 남는 것은 사진뿐이다?
이병률 작가님의 ‘끌림’이라는 책을 읽어 보셨나요? 거의 평생에 걸쳐 세상을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여행책에 사진보다 글이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다 보면 어느 때 보다도 생생하게 여행지의 상황이 떠오릅니다. 누구나 여행을 하고 오면 무언가 남기기를 원합니다. 가장 쉬운 수단은 사진입니다. ‘남는 건 사진이야’라는 말처럼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여행 후에 사진을 다시 보는 일은 드뭅니다. 다시 바쁜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다시 학교와 학원에 가야 합니다. 또 사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여행에 대한 추억은 빠르게 사라집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사진으로 여행을 기록하는 것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상하이에서 하루 종일 힘든 여행을 했습니다. 친구와 길을 잘못 들려서 돌아가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 헤매기도 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으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 날 숙소에 가기 전 친구와 맥주 한 잔 합니다. 인민광장에 앉아 그날 있었던 일들을 서로 낄낄 거리며 이야기합니다.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다른 것보다 서로 그 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먼저 생각납니다. 어딜 가서 무엇을 보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리하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오래 남은 기억은 분명 마음속 자양분이 되고 정신적 풍요로움을 줍니다.
종종 아이들이 부모님과 여행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리의 과정이 빠져 있습니다. 그 날 숙소에 늦게 들어와서 다음 날 일정을 이야기하고 잠듭니다. 어떤 분은 아이가 숙소에 오자마자 “스마트폰 게임해도 돼요?”라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그럴 때 힘이 빠진다고 합니다. 이때는 어른이 먼저 여행을 정리하는 법을 보여줘야 합니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다시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페인에서도 아이들에게 숙소에서의 시간이야 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내일 일정을 이야기하고 씻기고 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아이들은 여행을 하나의 일정으로만 볼 것입니다. 무엇을 할지 고민했습니다. 이때 어릴 적 경험이 생각났습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는 NIE(Newspaper In Education) 시간이 있었습니다. 신문지를 가져와 마음에 드는 이미지, 텍스트를 오립니다. 오린 조각들을 스케치북에 붙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적습니다.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때 다양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활용해 재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이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신문이나 잡이에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내 손으로 자르고 편집할 때 새로운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시사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무엇보다 창조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여행의 조각을 모아봅시다.
보딩패스, 위탁화물 스티커, 지하철 티켓, 자잘한 영수증 등 많은 쓰레기가 생깁니다. 또 여행지에서는 이런 쓰레기조차도 예쁘고 왠지 간직하고 싶습니다. 사진도 중요한 기록 수단입니다. 하지만 티켓 한 장에서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그때의 생생함이 살아나기도 합니다. 피카소 미술관 티켓만 봐도 그때 티켓팅을 하기 위해 오랜 시간 줄을 서고 안내원과 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사진만큼이나 소중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스크랩북 만들기를 검색하면 다양한 예시들이 나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는 가위, 풀, 테이프입니다. 그 외에 다양한 형태로 잘라주는 펀치나 가위도 있습니다. 테이프는 자르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물레방아 방식의 테이프를 준비하면 더 좋습니다. 만약 여유가 된다면 포토 프린터를 준비해도 좋습니다.
먹었던 과자 봉지, 간식을 감싼 종이, 지하철 티켓, 보딩패스 등 많은 쓰레기들이 있습니다. 모두 소중한 여행의 조각들입니다. 특별히 냄새가 나거나 음식물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뭐든지 모아 보시기 바랍니다. 여행 때 슬링백에 무조건 모았습니다. 계산을 하고 난 후 영수증도 바로 가방에 넣습니다. 레스토랑에서 멋진 일러스트가 있는 티슈를 발견해도 넣습니다. 어떤 아이는 추로스가 너무 맛있어서 추로스를 감쌌던 종이도 모았습니다.
가장 중요합니다.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 어른이 먼저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동안 가방에 모았던 티켓들을 테이블에 쏟아냅니다. 그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테이프로 하나씩 붙이기 시작합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아이들이 어느새 모여듭니다. 하나 둘 테이블에 앉아 만들기 시작합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먹는 약봉지도 붙였습니다. 어떤 아이는 추로스 설탕과 크림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포장지를 붙였습니다. 선생님이 모은 티켓도 하나씩 가져가 붙입니다. 이러면서 서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선생님도 붙이고 자른 이유를 말합니다. 마치 상하이에서 인민광장에 앉아서 이야기하던 때와 비슷합니다. 그때는 친구와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아이들과 맥주 대신 스크랩북을 서로 보여줍니다. 대상만 다를 뿐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스크랩북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교육적 효과를 경험했습니다. 먼저 아이들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만약 대화로만 했다면 졸려하거나 스마트폰을 더 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손으로 직접 만지면서 그 날의 여행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여행담이 나왔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글씨나 그림을 그리기 귀찮아하던 아이들도 좋아했습니다. 과자 봉지의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어 그것만 오려서 붙였습니다. 좋아하는 건물 사진을 붙이고 옆에 다시 그렸습니다. 그냥 그리라고 했다면 안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어른이 먼저 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즐겁게 여행을 정리하는 법을 보여줄 때 아이들은 스마트폰, 게임기를 내려놓고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