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ight's Mistery Club
누구나 어릴 적 꿈꾸던 자신의 미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셨나요?
제 친구들은 쉽게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대통령, 장군, 탐험가, 발명가, 선생님, 외교관...
요즘 어린 친구들은 그러더군요.
아이돌 가수...
저는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국민학교, 아! 요즘은 초등학교라고 하죠? 어쨌든 그 시절 저는 무당이 되고 싶었습니다. 왜 그런 꿈을 갖게 되었는지도 말씀드려야 하나요?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릴 적, 제가 살던 동네에 무당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언젠가 그 무당 할머니가 굿 하는 모습을 봤는데, 울긋불긋 화려한 옷을 입고 펄쩍펄쩍 뛰며 장단에 맞춰 한참 춤을 추는 무당 할머니 모습이 무척 신기했었죠.
제사상 앞에서 춤을 추는 무당 할머니 뒤에는 아주 늙은 할아버지 한 분, 그리고 젊은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연신 절을 하더라고요.
정신없이 춤을 추던 무당 할머니가 딱 춤을 멈추고는 달려가서 여자를 끌어안고 엉엉 우는 거예요. 미안하다며 한참을 우는데 목소리가 우렁찬 남자 목소리였어요.
그 젊은 여자는 그 목소리를 듣더니 그냥 바닥에 철퍽 주저앉아서 통곡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젊은 여자를 끌어안고 울던 무당 할머니는 다시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무릎을 꿇고 절을 하셨어요.
“아버지. 먼저 간 아들놈... 잊으십시오. 이젠 편하게 사세요. 그리고... 이 사람 그만 놔주세요. 저도 없는데... 이제 이 사람도 제 살길 찾아 가야죠.”
그 말을 듣던 할아버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내 아들... 그래. 알았다. 넌... 편한 게냐? 거긴 힘들지 않아? 못난 애비 만나서 이렇게...”
무당 할머니는 다시 젊은 여자를 안아 다독여줬어요.
“이 사람아. 못난 남자 만나서 고생 많았네. 서방 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먼저 간 사람을 뭐 하러 이리 찾는가? 나는 이제 다시 못 온다네. 당신 마음 고이 간직하고 가네. 잘 사시게. 이젠 마음 편히 먹고 떠나시게. 서방도 없는 시집살이는 그만 하시고, 당신 바라보는 그 사람 따라 나서게.”
젊은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안 돼요. 못 가요. 제가 어딜 가요. 당신...”
무당 할머니는 큰 소리로 호통을 쳤어요.
“가래두! 임자가 이러고 있으면 나도 편치 못 하네. 당신이 가야 내 마음이 편치.”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이보시게. 신방도 제대로 못 챙기고 떠난 사람일세. 이런 날 그래도 서방 대접해주고, 기둥 없는 시집살이 이만큼 했으면 됐어. 당신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고 사나?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은 사람이...
이제 눈물 그만 흘리고 살아. 당신이 흘리는 그 눈물이 호수가 되고 강물로 넘쳐서 내가 건너갈 수도 없잖아. 당신 눈물이 마르고 웃어줘야 내가 편케 건너가지.
날 서방으로 생각한다면, 서방을 위해서라도 이제 맘 고쳐먹게.“
빙 둘러서서 구경하던 동네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죠.
무당 할머니는 일어서서 젯상 앞으로 가서는 정신없이 음식을 먹더라고요.
수북하게 차려진 상을 다 비우고 일어서서 마당을 한 바퀴 휘 돌아서 다시 할아버지 앞에 섰어요.
“아버지. 저 이제 갑니다. 아들놈 앞세웠다고 원통해하지 마시고 만수무강 하십시오.“
무당 할머니는 할아버지 앞에서 큰 절을 했어요.
그리곤 다시 젊은 여자 앞에 앉아서 마지막 인사를 건네더군요.
“살아서 못 받은 당신 밥상, 지금이라도 원 없이 먹고 가네. 고마우이.
그리고 내 말 꼭 지켜주시게. 당신이 맘 편히 먹고 눈물 그치고 가야만 나도 건너 갈 수 있단 말일세. 아시겠나?
당신이 내 말 들어줄 거라 믿고... 난 이제 가네.
우린, 먼 훗날 당신이 오면 그 때 다시 반갑게 만나세. 내 기다림세.“
젊은 여자는 무당 할머니 손을 꼭 잡고 말했어요.
“네... 알겠어요. 당신 편케 해드려야죠. 나 열심히 살게요. 잘 살게요. 나중에 당신 만나러 가면 그 땐 우리 함께 살아요. 그 땐 지금처럼 허무하게 당신 보내지 않아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안타깝더군요.
경상도 어디쯤인지, 시골 마을에서 어려서부터 한 동네 살던 남녀가 혼례를 올렸대요. 첫날밤을 치른 다음 날 남자가 읍내 다녀오겠다고 나갔다가 행방불명이 됐다는 거예요. 기억하시나 모르겠는데, 부마항쟁이라고 있었죠? 하필 그 부마항쟁에 휩쓸려서 남자가 실종됐다더군요. 한참 지나서 겨우 시신은 수습을 했는데, 그 충격으로 할머니는 오래 앓으시다가 굿하기 얼마 전에 돌아가셨대요. 주위 사람들이 원통하게 죽은 아들 굿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더라고요.
그 날 저는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무당이라고 하면 왠지 별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갖게 되잖아요? 저 역시 그랬고...
그런데 그 날 본 무당은 저렇게 한 집안의 아픔을 씻어주는 그런 일을 한 거예요.
그래서 정말 진지하게 어른이 되면 무당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죠. 그런데 그 꿈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남자는 무당이 될 수 없대요.
무당은 여자만 할 수 있고, 남자는 기껏해야 박수라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할 틈도 없이 내 인생의 첫 번째 장래희망을 포기했죠.
하지만, 그 날 제가 보았던 것들은 저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가 살아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죠. 뭐랄까?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