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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의 이야기 #3

Saturday Night's Mistery Club

by NoZam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전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어릴 적에는 시골에서 장이 서곤 했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장날은 꽤나 구경거리가 많았습니다.

무당이 되겠다는 꿈을 포기한 뒤, 학교 공부도 그럭저럭,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죠.

동네에 장이 서는 날이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장 구경을 갔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척 많이 모여서 북적거리는 게 눈에 띄어서 비집고 들어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마술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본 첫 번째 마술은... 컵에서 물이 사라지는 거였습니다. 빈 컵에 물을 붓습니다. 그리고 주문을 걸죠. 수리수리 마수리... 그러면 이렇게! 물이 사라집니다.

아주 쉽고 간단한 이 마술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그 날 저는 마술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던 시절은 당연히 아니었고, TV조차도 흑백으로 보던 시절에 시골에서 혼자 마술 공부를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외항선을 타시던 삼촌께서 제가 마술을 좋아하는 걸 아시고 마술 책을 갖다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책은 제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매직 베이직... 아주 쉬운 초급 수준도 안 되는 마술 해설서인데, 영어로 되어 있어서 설명을 읽지는 못하지만 사진이 많아서 그럭저럭 따라 할 만했습니다.

이 책에 있는 오십 가지 정도의 마술을 모두 익히고 멋지게 펼쳐 보일 정도까지 연습을 하는 데 대략 삼 년이 걸렸습니다. 중학교 졸업식 날, 반 친구들 앞에서 그 마술을 모두 보여주었습니다. 그게 제 인생 첫 번째 마술 공연이었네요.


사실 마술은 그다지 배부른 직업은 아닙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참 배고픈 직업입니다. 화려한 공연을 펼치지만, 공연비 떼어먹는 놈 때문에 골탕을 먹기도 하고 공연 중에 비밀을 밝히겠다며 무대로 뛰어드는 관객 때문에 망치기도 합니다. 가끔 사기꾼 소릴 듣거나 심지어 얻어맞은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군 생활은 꽤 편하게 했네요. 훈련소에서도 쉬는 시간에 동기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다가 교관 눈에 띄었고, 그 뒤로 부대에서도 행사만 있다 하면 마술 공연을 했습니다. 심지어 부대 간부들이 마술 관련 자료를 구해다 주기도 하고...,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저는 마술 실력을 많이 늘렸습니다. 필요한 장비도 다 만들어서 쓸 수 있었으니까요. 사람을 공중에 띄우거나 신체를 절단하는 마술도 그때 제대로 익히고 연습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군 생활은 제 마술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마술사로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는 꽤 유명한 마술사들 중에 저에게 마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게 저는 마술 공연과 함께 교육도 함께 했었습니다.

방송도 많이 출연했었습니다. 고정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출연한 프로그램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제작진의 실수로 사고가 생겼습니다. 연예인들이 퀴즈를 풀거나 게임을 해서 지는 쪽에서 벌칙을 수행하는 마술이었는데, 촬영 중에 벌칙을 수행하는 연예인이 다친 겁니다. 제가 준비한 도구를 제작진이 다른 걸로 바꾸어 놓는 바람에 사고가 난 거죠. 원래는 슈가 보틀이라고 해서 설탕을 재료로 만든 맥주병 모양의 소도구가 필요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이 실수로 이 슈가 보틀을 깨버리고는 아무 말 없이 진짜 맥주병으로 바꾸어 놓은 거였어요. 결국 머리를 크게 다친 연예인은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맥주병으로 바꿔치기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말았어요. 결국 위험한 도구를 이용하는 바람에 다쳤다는 이유로 제가 책임을 져야 했죠.


사고를 낸 마술사... 참 괴로운 수식어입니다.

이 수식어를 떼어내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무대에 설 수 없는 마술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마술교육이었습니다. 마술학원에서 강사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정말 믿을 수 없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오래 전이군요. 벌써 십 년은 된 것 같은데...

국내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에서 상설 마술 공연장을 만들어서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공연장을 만드는 데 전문적인 마술 공연장이니만큼 마술사가 직접 필요한 부분을 감독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무대뿐만 아니라 공연장 건물 전체를 마술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은 정말 말 그대로 벌렁대며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제대로 된 마술공연이 가능하겠구나. 그걸 내가 만드는구나! 이런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죠.


공사를 시작하고 나니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건물을 짓거나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마술 때문에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부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가 해결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군대 있을 때 저를 도와 장치를 만들던 동기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이 친구가 마침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와 함께 필요한 장치나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개장까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 문제였죠. 밤을 새우며 일을 했어도 도저히 일정을 맞추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공사를 하던 사람들에게 구조를 설명하고 도면을 넘겨주며 그대로만 작업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제가 일일이 감독을 하지 못하다 보니 문제가 생겨도 모르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 겁니다.


개장 전 날, 마지막으로 전체 시설 점검을 하고 무대에서 공연 시연을 하고 있었는데...

무대 위에 있던 사람이 사라지는 마술을 시연하는 중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실 이 마술은 무대 바닥에 아래로 열리는 문을 만들어서 사람이 무대 아래로 내려가 숨는 거거든요. 무대 아래에는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매트리스를 깔아 두죠.

그리고 그 공간은 관람석 맨 뒤로 연결된 통로가 있습니다. 무대에서 사라진 사람은 재빨리 그 통로를 지나 무대 뒤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 통로 중간쯤에 하수구로 연결되는 맨홀이 있었는데, 공사장 인부들이 그걸 그냥 얇은 합판으로 덮어 두었던 거죠. 통로는 빛이 새어나가면 안 되니까 조명이 별로 밝지 않았고...

같이 작업을 했던 친구가 무대에서 사라지는 역할을 대신해서 시연을 하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기다려도 이 친구가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들어가 보니, 맨홀을 덮어두었던 그 합판이 옆에 기대어 서 있는 겁니다.

공사하던 누군가가 맨홀 공사를 하고 합판을 덮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거죠.

제 친구는 그걸 모르고 뛰어가다가 그 맨홀에 빠졌던 겁니다.

맨홀 아래는 하수 처리장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며칠이나 지나서 제 친구는 하수 처리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결국 마술 공연장은 폐쇄되었죠.


친구를 죽게 만든 저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마술사 K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 공연을 하던 마술사 K는 그 날 그렇게 사라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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