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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이야기 #2

Saturday Night's Mistery Club

by NoZam

"여보세요?"

"네, 기사님. 여기 사무실인데요."

"네, 무슨 일이신데요?"

"지금 녹번역이시죠?"

"네. 조금 전에 손님 내려드리고 오더 잡으려고요."

"아... 잘 되었네. 좀 멀긴 하지만 청평 들어가는 손님 좀 받으세요."

"청평이요? 길은 잘 모르지만 가보죠."

"네, 지금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 손님이 계세요. 그분 좀 컨텍하시죠."

"아니 이 시간에 한 시간씩이나 기다려요? 가실 곳이 멀어서 그런가?"

"일단 오더 넣을 테니까 통화해보시겠어요? 이 손님 건은 저희가 오더 비 공제하지 않을게요. 빨리 좀 해 주세요."

"이거 까다로운 오더죠? 오더 비 안 뗀다는 건 좀 이상한데..."

"사실은요. 이 분이 장애인이세요. 그래서 차가 일반 차량과 다르거든요. 그리고 손님 성격이 좀 예민하셔서..."

"아! 알겠습니다. 그런 거라면 뭐 큰 문제 되지 않겠네요. 지금 어디 계신데요?"

"녹번역 삼거리 초등학교 앞 도로에 비상등 켜놓고 기다리신댔어요. 검은색 그렌저, 5985번입니다."

"가깝네요. 전화하지 않고 바로 가도 되죠?"

"네. 그러세요. 저희가 전화해 놓을게요. 오더 종료하시면 사무실로 전화 주세요."

녹번역 초등학교 앞 도로를 훑어보니 검은 차량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달려가서 보니 조수석에 여자가 앉아 있더라고요.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습니다.

"손님, 안녕하세요?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이 동네가 오더가 그다지 많지 않다 보니 대리기사가 별로 없나 봐요."


운전석에 앉으면서 보니 앞의 장치들이 제법 복잡해 보이더군요.

"음,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래의 오토바이 핸들처럼 생긴 건 제가 운전할 때 쓰는 거니까 손 대지 마시고요. 그냥 위에 일반 핸들 잡고 운전하시면 돼요. 보통 차 운전하는 것 하고 똑같습니다. 발 근처에 장치들이 있어서 조금 걸리적거리긴 하겠지만 많이 불편하지는 않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청평 쪽은 제가 지리를 잘 모르는데..."

"앞에 네비에 찍어뒀습니다. 그거 보고 가시면 됩니다."


그 손님은 하반신 마비 환자였습니다.

그래도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아서인지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계시더라고요.

마치 자기 차가 아닌 남의 차를 얻어 타고 잔뜩 긴장한 사람처럼 말이죠.

"오래 기다리셨죠?"

"괜찮습니다. 제 차가 쉽게 운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와서 차를 보곤 죄송하다고 하면서 그냥 가시는 기사분도 있고 그렇더군요."

"네, 저도 대리운전을 좀 하다 보니 많은 손님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가끔은 오른쪽에 운전석 달린 차도 운전하게 되는데 그럴 때는 정망 긴장되더라고요."

"네, 그런데 제가 좀 피곤해서 그러니 그냥 조용히 가 주세요."

그 말 한마디를 하곤 손님은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죠.


"저기 앞에 2층 주택 보이시죠? 그 앞에 세워주세요."

대문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네, 이제 가셔도 됩니다. 여기 운전비요."

그녀는 지갑에서 10만 원을 꺼내 주었습니다.

"어? 이렇게 많이 주실 필요 없습니다. 원래 5만 원입니다. 게다가 기사가 없어서 오래 기다리기까지 하셨는데..."

전 다시 5만 원을 건네려고 했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받으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내리려고 하면서 보니 그녀는 내릴 생각도 않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두고 가기가 미안하더군요.

"저, 손님. 그냥 이렇게 두고 가면 안 될 텐데요. 차를 어디다 주차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냥 가셔도 됩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주차하고 모셔다 드려도 됩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더군요.

"네? 아뇨. 괜찮습니다."

"손님, 오래 기다리셔야 할 것 같은데... 제 말씀대로 하시죠? 여기서 이러고 계시면 힘드실 텐데..."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 위에 리모컨을 누르시면 대문이 열립니다. “

자동으로 대문이 열리더군요.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 한쪽에 주차공간이 있었습니다.


차를 대고 내려서 조수석 문을 열고 등을 댔습니다.

"손님, 업히시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습니다."

그 녀는 힘겹게 몸을 돌려서 제 등에 업혔죠. 생각보다 꽤 묵직한 느낌에 내심 놀랐습니다.

업으면서 보니 다리에는 철제 보조기구를 달고 있었습니다.

리모컨 키로 차 문을 잠그고 현관문으로 다가갔습니다.

지문인식으로 열리게 되어있는 자물쇠였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보니 바로 앞에 전동 휠체어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녀가 휠체어에 앉을 수 있도록 몸을 돌려 엉거주춤하게 몸을 낮추었죠.


"고맙습니다."

그녀는 처음으로 미소를 보이더군요. 목소리도 차 안에서와는 다르게 부드러웠고요.

"저... 힘들게 데려다 주셨는데, 들어오셔서 음료수 한 잔 하고 가세요."

사실, 12시가 다 된 시간에 몸이 불편한 여자 혼자 있는 집에 들어간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습니다.

"괜찮습니다. 다른 오더도 잡아야 하고... 그냥 가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잠깐 들어오세요. 그냥 가시면 제가 죄송하잖아요."


그녀는 실내 불을 모두 켰습니다. 환하게 밝힌 집 내부를 들여다 보니 제법 넓어 보이더군요.

주방으로 들어가서 주스를 한 잔 따라서 들고 나오던 그녀는 아직 현관 앞에 서 있는 저를 보시더니 놀라면서 다시 권했습니다.

"아직 그러고 서 계세요? 그럴 시간에 들어오셔서 주욱 드시고 가면 될 텐데..."

신을 벗고 엉거주춤하게 거실 소파에 앉았습니다.


주스잔을 받아 들고 보니 피부가 하얗고 쌍꺼풀이 없는 눈이 약간 매서워 보이긴 했지만 미인형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염색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검은 잉크를 발라놓은 것처럼 까맣고 윤이 나는 머리칼이 어깨까지 내려오더군요.

이십 대? 삼십 대?

나이를 가늠할 수 없더군요. 무척 어려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꽤나 성숙하다는 느낌도 들고...

"힘드셨죠? 제가 몸에 보조기구를 달고 있어서 보기보다 무거워요."

그녀는 싱긋 웃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아, 네... 처음 업히실 때 조금 놀라기는 했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집을 나섰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자주 뵐지도 모르겠네요. 안녕히 가세요."

현관문을 나서는 제게 그녀는 거실 소파 옆에서 그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네? 그게 무슨..."

돌아서며 말을 꺼내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쾅' 소리를 내며 세게 닫혔습니다.

현관문은 보통 급하게 닫히지 않도록 장치가 되어 있는데 마치 세게 문을 닫은 것처럼 그렇게 닫혔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마당을 가로질러 나갔습니다.

집을 나서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문마저 그렇게 세게 닫혔습니다.

장애인이 사는 집이라 자동으로 문이 닫히게 설계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시계를 들여다보니 벌써 새벽 한 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을 나서고 대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히는 그 순간 갑자기 집에서 모든 불이 일시에 꺼진 겁니다.

깜짝 놀라서 돌아다보니 그 집은 마치 아무도 없는, 오래도록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그런 집처럼 보였습니다.

불도 다 꺼져서... 뭐랄까? 빈집 같아 보였습니다.


섬찟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분명 깜깜해서 보이지 않을 텐데 말이죠. 왠지 베란다 창에 커튼이 펼쳐져 있고 그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에이, 괜히 오싹하네."


터덜터덜 걸어나오며 사무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K입니다. 청평 손님 오더 끝냈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방금 그 손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요."

"손님이요? 왜요?"

가끔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여자 손님 중에는 대리기사가 자신을 성추행, 또는 성폭행했다며 사무실로 연락을 하거나, 아예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이루어졌는지, 두 사람이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는지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 대부분이니까 대리기사가 그대로 뒤집어 쓸 때가 많죠.

더구나 성추행의 경우에는 흔적도 없고, 전적으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여성의 말에 의지하게 되니까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그 녀의 집에도 들어갔었고, 음료수를 마신 잔도 있는 상황이라 혹시 그분이 나쁜 맘을 먹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대로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긴장을 했습니다.


"아, 다른 건 아니고..., 앞으로 자기가 대리기사 부르면 K기사님을 보내달라고 하시던데요?"

"네? 그럼 저를 고정 기사로 쓰고 싶다는 말씀인 거예요?"

"네, 그렇게 되면 K기사님도 좋잖아요? 대리비도 넉넉하게 받으실 테니 말이죠."

"물론 그렇기는 한데..."

"그럼 그 손님 앞으로 K기사님 고정으로 올릴게요. 아 참, 그리고 지금 청평이시죠?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청평 오더 하나 들어왔는데 들어간 기사님들도 별로 없고 해서 K기사님 기다리고 있었어요. 단말기로 오더 넣을 테니까 확인해보세요."

전화를 끊고 문자로 들어온 오더를 확인했습니다.

위치를 보니 그 녀의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에서 조금 더 나가면 있는 사거리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어쨌든 그렇게 두 번 더 운행을 하고 끝냈습니다. 생각보다 수입도 좋았고, 한 건은 오더 비도 안 빠지는데다가 두배를 받았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돌아 나오는 것도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손님을 만났으니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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