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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이야기 #5

Saturday Night's Mistery Club

by NoZam

그 날 이후 그녀, 채은숙 씨에게서 전혀 연락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마지막 만난 날 함께 관계를 가졌다는 것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망설이다가 결국 핸드폰에 저장된 그녀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눌렀습니다.

몇 번 신호음이 들리더니 그녀가 전화를 받더군요.

"은숙 씨? 저 기억하시죠? K입니다."

"네, 잘 지내시죠?"

"그럼요. 그 날 이후로 계속 연락이 없으셔서 궁금해서 걸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날 있었던 일도 마음에 걸리고 해서요."

"아... 네, 그러실 필요는 없었는데..., 제가 요즘 몸이 안 좋아서 외출을 하지 않거든요."

"그러시군요. 혹시 저 때문에 힘들거나 하신 건 아닌지 걱정이 돼서요."

"그럼 오늘 저녁에 이리로 와주시겠어요?"


그 녀의 집...

현관으로 들어서니 그 녀는 소파에 앉아서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팠다고 하더니 얼굴이 까칠해 보이는 것 같더군요.

"잘 지냈어요?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그녀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잘 지냈다는 거겠죠?


그 녀와 함께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짧게 관계를 갖고 난 후, 그 녀는 드라이브를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동네 드라이브라도 하고 전에 갔던 청평호수, 물가에 갔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제 차에 그 녀를 태우고 근처를 드라이브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돌다가 다시 집 근처로 돌아와서 전에 갔던, 그녀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그 장소로 갔습니다.


마치 어딘가를 찾는 것처럼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 녀가 손가락을 들어 앞쪽을 가리켰습니다.

"저쪽... 주차장이 있네요."

그녀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선착장 옆에 차 몇 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이 있었습니다.

천천히 차를 몰아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호수를 바라볼 수 있게 주차를 했죠.


묵묵히 앞을 바라보던 그녀가 문득 자신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억양이 마치 책을 읽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고를 당해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날, 녹번역 삼거리를 지날 때 마주친 남학생이 있었어요. 그 남학생 때문에 이렇게 된 거죠."

그 녀는 눈을 감았고,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남학생이 절 부르더군요. 길을 묻는다며...

고개를 돌리는데 그 남학생의 손에서 반짝거리며 빛나는 작은 주머니칼이 눈에 들어왔어요.

남학생은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서 칼을 쥔 손을 제 어깨에 둘렀습니다.

그리곤 '소리치면 죽는다'라며 절 끌고 갔습니다.


긴 층계가 있었고 그 위로 야트막한 산이 있었죠.

남학생은 그렇게 절 끌고 층계를 올라갔어요.

전 가진 것 다 줄 테니 풀어달라고 했지만 그 남학생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절 끌고 갔어요.

밝은 대낮에 길거리 한 복판에서 이렇게 봉변을 당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는데...

층계를 오르며 남학생은 손에 든 칼로 제 옷 앞섶을 베어냈습니다.

속옷까지 말이죠. 결국 그 남학생 앞에서 전 가슴까지 드러나게 되어 버렸고, 그 남학생이 원하는 게 무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죠."


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지? 뭘까?

그 녀는 눈을 감은채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층계는 산을 향해 아무렇게나 만든 것이어서 높이도 일정하지 않았고 울퉁불퉁했습니다.

너무도 무서웠던 저는 울면서 끌려가느라 제대로 걷지도 못했습니다.

층계를 오르면서 발을 몇 번 삐끗해서 발목도 시큰거렸어요.

얼핏 옆 모습을 보니 남학생은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아마 그 남학생도 이런 짓을 자주 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그냥 보내주세요. 저, 절대 신고 같은 건 하지 않을게요. 지금 발목을 접질렸는지 너무 아파요. 제발, 제발 그냥 보내주세요.'

남학생은 그런 저에게 조용히 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칼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반대 손으로 제 가슴을 마구 만졌어요.

전 몸을 비틀었지만 남학생은 제 어깨에 두른 팔에 더욱 힘을 주기만 했어요.


층계를 거의 다 오르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더군요.

그 나무는 무척 오래 되었는지 굵은 뿌리가 땅 위로 솟아 있기도 했고...

남학생은 그 나무를 돌아가려고 했었습니다.

그 남학생에게 끌려서 가는데 갑자기 발이 나무 뿌리에 걸렸어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데 순간 가슴이 서늘하더군요."


그 녀는 제 손을 잡아 자신의 왼쪽 가슴 위로 가져갔습니다.

"이 상처, 만져지죠? 이게 그때 칼에 찔린 상처예요."

그녀의 가슴에는 꽤 깊게 찔렸을 것 같은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있었습니다.


아... 칼...

칼...?

어?

칼?

전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가슴을 찔리고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던 저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어요.

그렇게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보니 병원이었어요.

그 높은 층계를 굴러 떨어졌다는 거예요. 그 와중에 척추를 다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거죠."

그 녀는 씁쓸하게 웃으며 절 쳐다 보았습니다.


"기억... 나세요? 그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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