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ight's Mistery Club
- 엑소더스
날짜는 자꾸 지나가고 방법은 찾을 수 없어서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저도 애초에 계획했던 귀국 날짜를 두 번이나 연기했습니다. 그 바람에 대사관에 찾아가기도 했고요.
두 번째 연기한 출국날짜가 다가오면서 저는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이번에는 절대 연기할 수 없다고 대사관에서 강하게 이야기를 했거든요.
출국을 했다가 다시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연기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만일 이번에도 연기하겠다고 하면 그냥 강제 출국시켜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모나 엄마를 탈출시키겠다는 계획은 진전이 없고...
확인을 해보니 출국까지는 딱 3주가 남았더군요.
대사관에서 돌아오는 내내 울적하고 답답했죠.
움막 앞에 루이 엄마가 서있는 모습이 멀리서 눈에 띄었습니다.
부지런히 발을 놀려서 도착하니 루이 엄마가 절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더라고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언니, 아무래도 모나 엄마가 죽을 것 같아요. 도저히 불쌍해서 못 보겠어요."
전 움막 안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모나 엄마가 정신을 잃은 것 같아 보이는데 주위가 피투성이더라고요. 아마 피를 토한 모양이에요.
이대로는 탈출은커녕 사람이 죽겠다 싶어서 관리인에게 뛰어갔어요.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까 모나 엄마를 병원에 입원시켜달라고 했죠. 관리인은 절대 안된다며 완강하게 버텼어요.
전 관리인을 협박했어요.
"당신, 만일에 이대로 모나 엄마가 죽으면 난 내 친구에게 다 알릴 거야. 당신이 모나 엄마를 어떻게 했는지 모두 알릴 거야. 그러면 당신도 편하게 관리인 노릇을 하고 살지는 못할 거야."
그 말에 관리인이 당황하는 눈치를 보이더군요.
비록 모나 엄마가 천민이기는 해도 관리인 때문에 죽게 된 사실이 알려지면 좋을 건 없죠. 제 친구가 그 말을 농장 주인에게 알리게 되면 주인 입장에서는 적어도 일손 하나를 죽게 한 관리인을 그냥 두지는 않을 테니 말이죠.
저는 다시 좋은 말로 설득했어요.
"당신이 여기서 일하면서 받는 월급이 얼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 섭섭하지 않게 주겠다. 사실 나는 이번에 인도 오지에 학교시설과 공공시설 짓는 봉사의 일환으로 방문했다가 봉사 끝나고 나만 따로 남은 거다. 한국에서는 봉사도 사업의 하나로 여기기 때문에 이번에 들어올 때 제법 많은 돈을 가져왔다. 물론 대부분의 돈은 다 써서 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들 입장에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닐 거다. 어차피 난 여기서 나가면 한국으로 돌아가니까 비행기 값하고 약간의 비상금만 있으면 된다. 남는 돈에서 모나 엄마 치료비 빼고는 다 줄 테니 모나 엄마 병원에 입원하게 해달라." 대강 이런 내용이었죠.
관리인으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겁니다. 제법 많은 돈을 받고 모나 엄마를 병원으로 내보내느냐, 아니면 농장주인에게 혼이 나고, 최악의 경우에는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느냐의 문제이니 말이죠.
그 자리에서 관리인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날 준 돈이 관리인 수입으로는 대강 반년 정도 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모나 엄마는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응급실을 거쳐서 외과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 담당의사가 너무 심각한 상태라 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모나 엄마가 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니, 나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도망을 칠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 이렇게 살아서 돌아가면... 난 아마 전보다 더 힘들어질 거예요. 모나 아빠도 절 싫어할 거고, 관리인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텐데..."
전 모나 엄마한테 그랬어요. 절대로 농장으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무슨 수를 쓰던 한국으로 데려가겠다고 말이에요.
그렇게 모나 엄마를 달래고 난 후, 담당의사가 절 불렀어요. 환자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담당의사는 절 보더니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습니다. 인도 원주민, 그것도 차밭에서 일하는 하층민 여성을 입원시킨 보호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의아한 모양입니다. 이것저것 묻더군요. 대강 설명을 했더니 오히려 저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인도를 이해하고, 도움을 주어서 고맙다고... 자신이 도울 일이 있으면 알려달랍니다. 가능한 한 돕겠다고 말이죠.
한참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모나 엄마를 한국으로 데리고 올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처음엔 저로써도 '과연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저도 더 이상 인도에 머물 방법이 없는 상황이고, 모나 엄마 입장에서도 인도를 탈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망설일 수는 없었죠.
날짜를 꼽아보니 출국까지는 앞으로 열흘 조금 넘게 남았더군요. 저는 일단 제 출국 수속을 밟았습니다. 꼼꼼하게 체크했죠.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그런 다음 모나 엄마의 퇴원수속을 밟았습니다. 담당의사에게는 출국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과 모나 엄마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모나 엄마를 탈출시킬 방법을 의논했습니다. 담당의사는 처음엔 무척 놀라는 눈치를 보이더니 모나 엄마와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잠시 흐른 후에 의사는 저와 모나 엄마를 돕겠다고 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더군요.
저는 농장에 들러서 루이 엄마와 작별인사를 하고 모나 엄마의 집에 들렀습니다. 그토록 없는 살림임에도 모나 엄마에게는 꼭 필요한 소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죽은 모나가 평소에 목에 걸고 다니던 목걸이였어요. 알록달록한 색상으로 화려하게 만든 목걸이... 그것 하나만큼은 꼭 가져가야 한다고 했었거든요. 그게 모나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줄 유일한 유품이라면서...
마지막으로 관리인을 만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리인이 모나 엄마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만일에 관리인이 의심을 해서 병원에 찾아간다던가 할 경우에는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전 관리인에게 모나 엄마의 사망통지서를 건넸습니다. 물론 사망통지서는 의사의 도움으로 받아둔 것이었죠.
관리인은 모나 엄마의 사망통지서를 무덤덤하게 바라보더군요. 뭐랄까... 모나 엄마가 살아 돌아오는 것보다는 사망통지서를 받는 편이 관리인 입장에서도 더 마음 편했을 것 같더군요.
다시 병원에 갔습니다. 담당의사의 도움으로 모든 준비는 끝나 있었습니다. 담당의사는 절 보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마 모든 것이 다 잘 되었다는 뜻일 겁니다.
담당의사는 일부러 하루 휴가를 내었다며 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담당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을 했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한국 땅을 밟는 순간... 눈물이 흐르더군요. 마치 제가 목숨 걸고 탈출을 한 것처럼 그렇게 말이죠.
그렇게 모나 엄마는 인도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죽기 전에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는 그 신분계급의 굴레도 벗어던지게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