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ZF-R6 2007
알식스
시승을 하던날 처음 타보게 됐다. 안 그래도 등장하지 얼마 안되어 뜨거운 인기를 가지고 있던 07년식과 08년식 야마하 R6을 비교하는 비교 테스트였다. 한 대는 야마하의 시승차인데, 또 한 대는 야마하의 고객을 섭외해 시승차를 받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냥반도 대단한 냥반이다. 신차를 사자마자 테스트 바이크로 빌려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아무튼 그렇게 일정은 시작되었고 이튿날 새벽 태백스피드웨이(그때는 준용서킷이었다)로 떠나기 저너 바이크를 가지갔는데 왠걸, 시트가 높은 것도 모자라 순정 스텝을 백스텝까지 달아놔서 무릎이 완전히 접혀 다리에 피가 안도는 것이었다. 도심에서 한시간 가량을 타고 사무실로 복귀하려니 새로 타본 바이크니만큼 신나고 재미있으면서도 신체적으로는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때 태어나서 처음 서킷을 달리는 것도 모자라 처음 타보는 바이크로 처음 레이싱 슈트를 입고 시승을 하게 된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잠도 못잘만큼 설렜다. 그때가 시승기자 1년차, 스물 다섯이었다.
다음날 새벽 팀원들끼리 불화가 좀 있었으나 아무튼 일정은 일정인지라 꾸역꾸역 트럭에 나누어 타고 바이크는 들어올려 싣고 태백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먼길이었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중간 쯤 갔을 때 영상 촬영 담당(당시 감독)이 깜빡잊고 카메라를 안 가져왔다는 말을 한 것이다. 모두가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없었고 일단 가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니 지체없이 가기는 갔다.
당시 비디오 감독은 태백 시내에 문 열지 않은 웨딩샵을 돌아다니며 혹시 있을지 모를 노는 카메라를 돈주고 빌릴 셈이었다. 2007년 당시에 무슨 비디오 촬영이 있을 수 있냐 물을 수 있지만, 당시 내가 다니던 잡지사는 영상 시승기가 큰 무기였다. 잡지는 그냥 말그대로 어쩔수없이 영업력을 위해 찍어낼 뿐이었고, 사실은 영상 시승기를 찍는 것이 메인이었다. 지금은 남은 영상 소스들도 인터넷에서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는 유튜브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고용량의 영상을 올리고 배포하기도 만만찮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턱대고 운영한 회사인것 같은데 그때 나는 사회초년생이기 때문에 그냥 내 일만 열심히 하기 바빴다.
다행히도 아무튼 캠코더를 빌렸다. 예정시간 보다는 좀 늦게 일정을 시작하게 됐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태백 서킷은 12월 당시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자동차 주행세션도 문을 닫을 정도로 춥고 미끄러웠다. 그런데 우리는 말하자면 비수기에 통 임대를 한 것이라 아무도 없는 휑한 서킷의 썰렁함이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다.
두 바이크를 내려 시동을 걸고 대충 슈트를 입고 꾸역꾸역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다보니 하늘에서 흰 눈이 내렸다. 그래도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에 계속 달렸다. 엄청 추운 데다 눈도 오고 서킷 레이아웃도 머리속에 없기 때문에 적당히 달렸지만, 아무튼 앞 뒤에서 영상을 찍으며 슈팅 카가 쫓아오고 있었고 바이크에도 액션캠(고프로같은 작은 것이 아님)을 매달고 있었기 때문에 무섭다고 대충 달릴 수가 없었다. 아무튼 이걸 하려고 이 인원이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월급받는 월급쟁이고 업무중이었다.
이런 저런 연출 샷을 적당히 찍고 철수하자는 무전이 들렸다. 너무 얼어있어서 무슨 느낌이었는지 시승기를 정확히 써낼 수 있을 지도 의문이었다. 그 정도로 정신없었던 하루였다. 아니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첫 서킷 시승이 별 탈 없이 끝났다.
지금도 알식스를 보면 그때 생각이 슥 나곤 한다. 서킷 시승을 한 뒤 며칠 뒤 양평 유명산 어딘가에서 도로 시승촬영도 하긴 했지만, 처음 서킷을 달린 경험을 함께 해서 그런지 알식스는 진짜 서킷용 바이크라는 느낌이 강하다. 일반 도로에서는 타고싶지 않은 바이크다.
지금 생각해보니 성공한 덕후라는 말이 딱 맞는다. 그땐 마냥 신나고 재미있었는데, 월급이 90만원밖에 안되어도, 좋았다. 1년 후면 10만원 올려준다고 했으니 괜찮았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쓰고 설레지 않는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인지, 아니면 내가 바이크에 대한 열정이 예전같지 않아서인지 모른다.
이따금씩 느끼는건데 이젠 진짜 그냥 직장인 사무직이 된 느낌이다. 상사가 시키는대로 하고 상사가 싫어하는 것 같으면 안 한다. 그 전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많이 싸우기도 했다. 이해가 안가는 것 투성이었다. 지금도 이해 안가는 것은 많지만 그때만큼은 아니다. 폭발하는 화가 없는 대신 불만이 내재되는 느낌이다.
바이크 시승기자라는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게 자부심이 서린 뜻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마케터가 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게 하겠다는 포부어린 말도 직원들 앞에서 했던 난데. 이제는 그런 말할 용기는 없다. 그냥 환상이라는 걸 아니까.
알식스는 내게 그냥 바이크, 그냥 알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뭔가 젊은 시절의 내가 가졌던 설렘, 뿌듯함, 용기, 과감함, 풋풋함의 상징같은 거다. 지금도 알식스가 완전히 같은 모양새로 팔리고 있긴 하지만 그때 그 기분과는 다르다. 딱히 타고 싶지도, 갖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때 느낌 그대로 있으면 한번씩 회상거리로나 적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