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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율 Jan 12. 2024

10화 : 영국에서의 첫날

31살 대학 신입생의 영국 유학





르네상스 호텔의 최대 장점은 인테리어도, 친절함도 아닌 침구였으니!


새하얗고 바삭바삭한 이불, 몰랑하면서도 탄탄한 마시멜로우 같은 매트리스와 퐁신한 구름 같은 배게! 

잠시라도 누우면 영혼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그 어마어마한 편안함이었다. 

 

하지만 누우면 안돼, 저녁은 물론이고 내일 조식도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료품을 구해와야 한다구.  



( 저렇게 비행기가 보일 만큼 공항에 가까운데.. 호텔 도착까지 5시간 걸렸다니... )

 



 무료로 제공받은 호텔의 인터넷은 너무 느렸고, 핸드폰은 심카드는 물론 로밍도 안되어 있기 때문에 지도는 보고 오지 못했지만, 보통 호텔 근처에는 식당이나 식품판매점이 있으니까! 걷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용감히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을 걸었는데도 아무것도 없는 건 어째서야. 




그러다 겨우 발견한 것은 맥도널드였다. 맥도널드.. 좋아하긴 하지만 영국에서의 첫 식사이니, 좀 더 영국 느낌이 나는 것을 먹고 싶었다. 

( 슬슬 해가 지고 있어 )



그래서 맥도널드를 지나쳐 좀 더 걸어봤지만 역시 식당은 없었다. 거기다가 지도가 없어 길까지 헤매는 바람에, 호텔 앞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출발하고 40분이 지난 후였다. 


너무 피곤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반대쪽으로 10분 정도만 가보고, 거기도 식당이 없으면 맥도널드 가자!  생각하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7월인데도 거센 바람에 뱃속이 차디차지는 것을 느끼며 한 5분 걸었을까, 멀리서 저녁 해가 스포트라이트처럼 한 건물을 비추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더 걸으면 죽을 것 같았는데 살았다!)



주유소! 주유소다!  

그리고 주유소에는 보통 편의점이 딸려 있지! 

멋진 식사도 좋지만 여기서 그냥 장을 보면 돈도 아낄 수 있고 무엇보다 다시 한참 걸어가지 않아도 돼!



신나게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을 골랐다. 



심카드와 톱업 비용(3만 원가량)은 아까웠지만 인터넷이 있어야 지도를 보고 한국과 연락도 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지출이리라. 

무엇보다 지도! 그게 안 되니까 내가 이렇게 고생을 했잖아!  













하지만 톱업은 생각했던 것처럼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더니,  


“Hey (이봐).. ”


등 뒤에서 누군가 잔뜩 쉰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190CM는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다른 한 손은 내게 내밀며 내놓으라는 제스처를 했다. 




순간 매우 쫄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굴리고 있었더니, “너의 톱업카드 말이야”라고 소년이 말을 이었다. “ 그거 그렇게 하면 안 돼. “ 




알고 보니 쫄았던 순간이 미안할 만큼 그는 착한 아이였다. 



( 목소리는 변성기 때문에 그랬던 듯 )

 



아까 가게에서 나와 직원의 대화를 듣고, 왜 저렇게 설명을 하지? 그 심카드는 공중전화로는 톱업이 어려운데? 내가 맞는 방법을 알려줘야겠다, 하고 일부러 도와주려고 다가왔던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신의 핸드폰을 분해하면서까지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나서, “굿럭!”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소년은 석양 속으로 사라졌다.




그 멋진 뒷모습을 보며 덕분에 힘듦으로만 기억될 뻔했던 영국에서의 첫날이, 매우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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