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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율 Jan 09. 2024

9화 : 수면부족은 장거리 비행에
최적의 상태

31살 대학 신입생의 영국 유학기











이미 여름 학기가 시작 되어 다른 학생들은 이미 수업을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에, IELT 시험 합격 후 기쁨을 느낄 여유도 없이 바로 출국 준비에 매진했다.


그래서 일주일 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비행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 극한의 피곤한 상태가 도움이 되었는데, 눈만 감으면 피곤함에 깊이 잠드니까 평소라면 자세가 불편해 엉덩이와 허리가 아파서 내내 끙끙 거렸을 장거리 비행을 너무 꿀맛 같이 느끼게 해주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잠이 솔솔 오는 비행기 소리 asmr를 들으며 12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있다니! 

거기다 배고플 때가 되면 밥 챙겨주시고, 간식도 준비 해주시니,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어?



두번째 사진은 자다 깨서 찍어서 초점이... 





그렇게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보니 너무나도 쾌적하던 12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드디어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먹고 계속 자서 퉁퉁 부음)



이제 남은 일정은 호텔 송영 버스를 타면 도착하는 10분거리의 호텔에 도착하여 쉬는 것 뿐. 


그러나..


이상해.


아무리 걸어도 입국 심사장이 나오지 않아! 




표지판에는 분명 이 길이 맞다고 하는데, 일반적인 입국 심사장으로 가는 뻥 뚫리고 텅 빈 커다란 복도 같은 느낌의 길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 일반인이 들어가도 되는 것 맞아? 싶을 정도로 좁은 복도가 한참 이어지며, 30분은 걸었는데도 표지판은 아직도 더 가라며 나를 이끌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렸다 나온 바람에 같이 내린 사람들도 거의 사라졌고(보통 출국 후 우르르 걷는 사람들 따라가면 어떻게든 도착하는데), 남은 건 나처럼 긴가민가하며 흔들리는 눈빛으로 걸어가는 몇 안되는 사람들 뿐.  우리는 서로에게  큰 도움이 안되었다. 


용기를 내어 한 여성에게 "이 길이 입국 심사장 가는 길 맞나요?" 라고 물었지만 "아돈노...(몰라요..)" 라는 힘없는 대답만 들려왔다.  







결국 입국 심사장을 발견한 것은 그 후 30분 후로, 안되겠다 싶어 온 길을 돌아 갔다가 직원을 발견해 그 길이 맞다는 답을 듣고 다시 돌아가 또 한참 걸어간 후였다. 


알고보니 입국 심사장과 완전히 반대쪽 출국 게이트에 걸렸던 모양. 

입국 심사장에 도착하니 이미 나처럼 긴 모험 끝에 도착한 사람들이 길게 심사대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입국 심사 대기하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표정.jpg)





오랜 기다림 끝에 입국 심사까지 마치고 위탁 수하물을 찾았다.


이제 남은 것은 공항 버스터미널에서 호텔가는 송영버스를 타고 10분 가는 것 뿐이니, 곧 쉴 수 있겠군!






그리고 한 시간 뒤.



(입국심사장 나가서 마중 게이트에서도 길을 잃은 사람. jpg)



그래, 내가 오기 전에 히스로 공항이 정말 복잡하다는 말은 들었어! 하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너무 피곤해서 기억이 날아가 정확히 어떻게 헤맸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훌륭하게 히스로 공항 내부에서 한시간 헤매기를 해내었고, 호텔로 가는 버스 정류장도 결국 찾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호텔 예약을 도와주는 창구 같은 곳을 발견하여 바로 도움을 청했는데, 


"이 호텔 무료 셔틀 버스가 있다는데 대체 정거장이 어디인가요?" 


"이 호텔은 무료 셔틀 버스가 없어요. 유료로 무슨 무슨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 밖에 없을거에요"


라는 절망적인 답만 들었다.


전용 송영버스가 있어, 짐도 편하게 싣고 갈 수 있을 줄 알고 예약한 것인데 이유를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 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는 모양. 아직 영국 시내 버스를 타는 방법도 모르고, 탄다고 해도 이 짐들을 모두 끌고 시내버스를 타기도 힘들어서 결국 직원의 도움을 받아, 미니 캡을 호출했다. (그림에는 3개로 그렸지만 사실 매야하는 가방 3개, 크고 작은 캐리어 2개, 손가방1개, 기타 등등을 카트에 싣고 있었다)

큰 지출이라 속이 쓰리지만, 5분 후면 온다고 했으니 드디어 숙소에서 쉴 수 있다는 것을 마음의 위로로 삼았다. 



그리고, 



5분 후에 온다더니 5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캡을 기다리는 공항 체류 4시간째인 사람.jpg




50분 후 도착한 미니 캡. 




그 와중에 10분 거리라던 호텔은 30분이 걸렸다.




그렇게 지독한 고생을 4시간 20분한 후에 공항에서 탈출하여 도착한 호텔은, 








존재하지 않았다. 





제발 그만해 이러다간 나  죽어










여기저기 쌓여있는 공사 자재들과 흰 천막에 쌓인 건물에 당황하면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자 입구 같은 곳이 보였다. 






하지만 내부는 불이 꺼져 있어, 아무리 봐도 영업 하는곳 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

이 상황이 무섭긴 했지만 택시 추가 요금이 더 무서웠기 때문에 일단 미니 캡을 어서 보냈다.  





불은 꺼져있어도 문은 열려있으니 여차하면 안에서 하룻밤 새면 되지 않겠어! 몰라! 난 이제 더이상 못 서있겠다구! 

용기 내서 안으로 들어갔더니, 밖에서 느낀 영업 안해요~ 느낌 그대로, 내부는 가구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소파도, 사람도, 아무것도 없는 불꺼진 텅빈 호텔 로비에서 멍하니 얼마나 서 있었을까, 한쪽 복도 쪽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자세히 보니  어둠 속에 문 하나가 어슴프레 보였고, 희미한 빛이 틈새로 나오고 있었다. 




조회수가 오를 만한 상황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빛이 나오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쏟아지는 빛 너머로, 





많은 사람들이 보였고, 한 남자가 빛을 후광처럼 두르고 다가왔다. 





나를 향해 양 손을 들고 다가온 그는,

 




신은 아니고 그냥 안내하려고 다가오는 호텔 직원 분이셨고, 그 곳은 임시 리셉션이었다. 


알고보니 때 마침 호텔 보수 공사중이었다고.  공사 자재도, 불꺼지고 텅빈 로비도 그냥 하필이면 그 날 가구 옮기는 날이었던 것 뿐이었다... 어쩐지 4성 호텔인데 싸게 나왔더라.. (그래서 송영 버스도 없어진 듯)


그 후에는 공사 중인 부분 외에는 별 문제가 없었기에 순조롭게 체크인을 마치고 드디어 숙소에 입성할 수 있었다. 


공사로 불편을 끼쳐서 미안하다며 무료로 와이파이를 제공해주었다(당시에는 유료였음)







지금은 리노베이션을 해서 내부도 바뀌어 이 객실은 없어진것 같지만 멋있는 방이었기에 공유해봅니다. :-)


전체적으로 매우 낡긴 했는데 벽장에 숨겨진 티 테이블이나 미니바 같은 디테일이 좋았던 객실이었어요.

(히스로 공항 근처의 르네상스 호텔의 2014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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