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함으로 또 다시 채워지는 일상
아이들이 돌아왔다.
지난 2월 말,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일 년을 마치고 봄방학을 맞아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고모댁에 갔다. 둘째와 동갑내기인 사촌 여자아이가 있고, 이제 중학생이 되는 누나가 있어 늘 사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아이들과 나는 동시에 각각 다른 방식으로 방탕한 자유를 얻었다.
우리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집에서처럼 소리치고 훈계하는 이상한 여자가 없는 곳에서, 유치원엘 가지 않아도 되고 하루 종일 누나와 동생과 어울리고 뒹구는 일상은 아이들에게 천국이었다. 일주일 동안 엄마 아빠를 찾는다거나 잠을 설친다거나 입맛이 없어하는 조금의 낌새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겐, 뜻하지 않게 주어진 퇴근 시간 이후의 자유
아이들 때문에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하고 싶었지만,
정작 아이들이 없는 텅 빈 공간은 나로 하여금 아무 의욕이 없게 만들었다.
혼자서 먹는 밥이 맛있을 리 없고,
그리 넓지 않은 우리 집이 왜 이렇게 허전하고 썰렁하던지
매일 늦는 남편 덕에 혼자서 견디는 밤은,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무서웠다.
늘 모자란 잠이라도 실컷 자보나 싶었는데,
혼자서 잠을 청하려니 젠장
오히려 정신만 바짝 들고 일주일 내내 불을 켜고 선잠을 잤다.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숨소리와 분주한 움직임이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활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이들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 때문에 비로소 내가
사람답게 웃고, 떠들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던 일주일이다.
일주일 뒤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은 키가 좀 더 자란듯했고
맨날 걱정 없이 뛰어놀아 얼굴이 정말로 환해졌다.
엄마 아빠를 반가워하며 매달린 건 잠깐,
금세 뒤돌아 또 어울려 뛰놀기 바쁘다.
특히 큰 아이는 나를 닮아
습관적으로 얼굴에 인상을 쓰는 버릇이 있는데 오늘
오랜만에 보니 얼굴에 여유와 미소가 넘쳐난다.
잘 때 늘 몸을 움츠리고, 자면서도 자주 깨고,
그래서 아직도 밤에 기저귀를 차고 잘만큼 예민했었는데,
집에 돌아온 첫날은 정말 반듯하게 누워
너무너무 편한 자세로 천장을 보고 입을 꼭 다물고 자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6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있는 건 없지만
분명 아이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변화는 긍정적인 듯하다.
우리의 일주일은
그럭저럭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돌아왔다.
더불어 나의 일상도 제자리를 찾았다.
꿈같던 일주일은 희미해지고,
이젠, 매일 현실 같은 꿈을 꿀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