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작슈퍼 Oct 11. 2023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는 방법

소개 좀 시켜줘



졸업 후 취직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아는 사람을 통하는 경우, 스스로 구하는 경우. 첫 번째 방법으로 취업하길 바랐다. 그쪽이 훨씬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날 눈여겨보고 있던 누군가가 내게 슬쩍 다가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는 회사에 자리 났는데 생각 있어?"

친한 선배도 교수도 없었으면서. 취직한 선배들과 몰려다니면서 회사 정보를 공유하고 포트폴리오를 서로 봐주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4학년이 되자 한두 명씩 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동기 중에 제일 디자인 잘하는 언니가 네이버에 취직했다. 네이버에 간 언니는 학교에 올 때 사원증을 메고 왔다. 동기들은 눈꼴사나워했다. 

“일부러 메고 온 거 맞지. 우리 보라고?”

앞에서는 축하했지만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그 언니는 1학년때부터 잘 될 줄 알았다. 과제만 했다 하면 무조건 1등이었다. 대놓고 순위를 매기는 수업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우리들 마음속 1등은 그 언니였다.


사실은 언니를 학교 앞 카페에 2시간쯤 잡아두고 질문을 퍼붓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네이버에 갈 수 있어요? 

-포트폴리오 좀 보여줄 수 있어요? 

-면접 때 뭐 물어봐요? 

-사람들은 어때요? 

-월급은 얼마나 준대요? 

-무슨 일 시켜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하나도 안 친했기 때문이다. 나는 완전히 아싸였다. 같이 다니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수업 이외의 시간에 교류하는 사람이 없었다. 


네이버에 갔다면 지인 소개로 들어간 건 아닐 것이다. 우리 학교 선후배와 동기 포함해서 네이버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대기업은 보통 공채로 뽑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네이버에 공채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학점 3.1을 가지고? 3차 4차 면접까지 줄줄이 보면서? 생각만 해도 진이 빠졌다.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교수님과 친한 동기들은 줄줄이 취업했다. 강사로 한 학기 수업을 맡았던 디자인 에이전시 대표가 수업 때 돋보였던 몇 명을 뽑아갔다. 과동아리 활동을 하던 동기들도 하나둘 취직을 했다. 선배의 선배가 소개해주고, 교수가 아는 에이전시를 소개해주고 그야말로 알음알음의 세상이었다. 


알음알음 소개받아서 취직하기. 그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나도 그 세상에 끼고 싶었다. 어떻게 하는지 알 수만 있다면. 4년 내내 아무 생각 없다가 졸업할 때가 되니 나도 인맥이란 걸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내 (유일한)과 친구는 졸업한 선배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과동아리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광고디자인을 연구하는 동아리였는데 연구보다 술 마시는 걸로 유명했다. 동아리 술자리엔 졸업한 고학번 선배들이 수시로 놀러 왔다. 친구는 술자리에 불려 다니는 걸 싫어했는데 4학년이 되자 달라졌다. 선배들이 부르는 족족 달려 나갔다. 그렇다. 모두가 조급했던 것이었다. 어떻게든 알음알음의 세계에 들어가려고 모두들 기를 썼다. 나도 유일한 동아줄인 친구를 덥석 붙잡았다. 친구의 술자리에 따라갔다. 


동아리도 아니면서 참여한 술자리에 내쳐지지 않게 선배들이 하는 말에 과하게 리액션을 하며 흥을 돋웠다.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정보도 얻고 인맥도 넓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취직한 선배들은 사회생활의 고충을 토로했다. 학교에서 하던 과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회사 가면 훨씬 힘들다고 했다. 

“돈 내고 다니는 거랑 돈 받고 다니는 거랑은 천지차이지.” 

그땐 선배가 잘난척한다고 생각했다. 취직해 보니 진짜라는 걸 실감했지만. 


선배 얘길 듣다 보면, 학교 밖에도 끼리끼리 밀고 당겨주는 선후배 커뮤니티가 있는 것 같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학교선배가 화제에 올랐다. 

“그 선배 알아? 회사 차렸잖아.” 

“학교 다닐 때부터 사업 준비했대.”

“그 로고 그 선배가 만든 거야. 김 XX선배 들어봤지?”

“인턴 뽑는다고 소개해 달라던데?” 

“우리 선배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너네도 담에 데리고 갈게.”


이래서 인맥인맥 하는구나. 얼굴도 모르는 고학번 선배가 회사를 차렸고, 학교 밖에서 술자리를 가지고, 정보를 주고받고, 사람도 소개해주는구나.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있구나. 




술자리에 죽치고 앉아서 고개를 연신 끄덕거린 효과가 있었는지 한 디자인 에이전시의 인턴자리를 소개받았다. 직접 전화를 받은 건 아니었다.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내 유일한 과 친구가 선배에게서 괜찮은 동기가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선배의 선배가 하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신입을 구한다고 했다. 인턴 6개월에 정직원으로 채용한다고. 친구는 다른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기에 나를 소개해줬다. 


알려준 이메일로 이력서를 넣었다. 며칠 뒤,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디자인 회사의 주소를 알려주며 면접을 보러 가라고 했다.  

“선배, 감사합니다. 면접 잘 봐서 합격할게요!”

전화를 받으면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래, 우리 선배가 하는 곳이니 잘해줄 거야.” 

드디어 나도 알음알음의 커뮤니티에 들어온 것인가!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본 알음알음의 세계 생각과 많이 달랐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