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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슈퍼 Oct 12. 2023

나의 첫 디자인회사 면접

이렇게 합격이 되다니

그 디자인 회사는 압구정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편집숍과 유명맛집을 지나는 길이 만족스러웠다. 세상에 진짜 나 일하는 도시인 같아! 일찍 도착해서 건물 1층 스타벅스에서 30분쯤 시간을 때우다가 5분 전에 회사건물로 들어갔다.


회사는 아늑한 분위기였고 직원은 5명이 있었다. 책상마다 아이맥이 있고, 포스터가 많이 걸려 있고, 벽 한 면이 책장이었는데 디자인서적과 잡지가 두서없이 꽂혀 있었다. 다들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엄청나게 조용했다.


팀장이라는 남자가 작은 회의실로 안내하고 대표를 데리고 왔다. 둘 다 많이 피곤해 보였다. 막내 직원이 그만둬서 사람을 뽑는 거라고 했다. 그들은 내가 가지고 온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며 질문을 했다.

 

"인턴으로 일했을 때 주로 어떤 일을 했어요?"

"음.. 누끼도 따고요..."

여기까지 말했을 때 팀장이 웃었다.

"풋(진짜 풋 소리가 났음). 저희는 누끼 안 따요. 다 맡겨요."

"아… 진짜요? 좋네요."


내 포트폴리오를 넘기며 대표가 물었다.

“근데 이건 뭔가요..?”

이게 뭐냐니, 포트폴리오잖아?

그땐 발끈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한다. 내 포트폴리오로 말하자면 이틀 만에 급조한 포트폴리오로 웹서핑을 통해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면서도 트렌디해 보이는 레퍼런스를 찾아 비슷하게 만든 다음, 그럴싸한 영문 제목을 붙인 후 뜬구름 잡는 형용사(심플한, 트렌디한, 고급스러운 등등)로 범벅된 설명을 나열한 뭐라 설명하기도 난감한 작업물이었다.


사실 대학교 졸업 전에 포트폴리오를 만들 시간이 있었다. 과제를 활용했어도 되었고. 근데 나는 쓸만한 포트폴리오를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뭘 만들지 정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아직 디자인 의뢰를 받아본 적도 없으니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만들어야 했는데 어려운 건 둘째치고 현타가 왔다. 없는 클라이언트를 만들고, 로고를 만들고, 의미를 지어내서 디자인하려다 보니 잘 안되었다.


물론 이렇게 어려운 일을 잘 해내는 동기들도 많았다. 그들은 지원할 회사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준비했다. 학점도 좋고, 외국어도 잘하고, 포트폴리오도 뚝딱 만들어내는 애들이었다.


반면에 나는 포트폴리오로 쓸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취업은 해야 하니 구인공고가 올라와있는 디자인회사에 지원을 했고 면접을 보러 오라길래 이틀 만에 후다닥 만들어버린 것이다. 대표는 내 포트폴리오에서 디자인적 재능은커녕 이건 도대체 뭔가 하는 의문만 들었던 것 같다.


대답을 하긴 해야 하니 나오는 대로 말했다.

“그건 한국적 여백의 미를 살려 디자인한 건데요, 하얀 여백과 현대적인 타이포그래피가 잘 어우러지도록 디자인하였습니다.”

대표는 티 나게 갸우뚱거렸다. 옆에 있던 팀장은 웃음을 참고 있었다.

“뭔지 잘 모르겠는데..”

대표는 포트폴리오를 덮고 내게 돌려줬다. 다행히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툴도 잘 다룬다고 쓰셨네요?”

“네. 과제할 때 자주 써봐서 잘 다루는 편이에요.”

일러스트레이터를 깔짝대긴 해봤는데 이걸 잘한다고 하는 게 맞나? 일단 붙고 봐야지, 출근하기 전에 포토샵을 비롯한 어도비 툴을 다 마스터하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회사에서 만든 디자인 봤어요?”

“네. 홈페이지에서 봤어요.”

“어땠어요?”

정말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사실 아무 생각 없었다.

“아.. 음. 너무 제가 알고 있던 디자인도 많이 있어서 신기했고요. 음.. 좋았어요.”


그 외에 이런 질문도 했다.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나요?”

네 폴 랜드를 좋아합니다. (대충 이름은 들어봄)

“아, 어떤 점이 좋았나요?”

“아.. 그분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디자인과 마인드가 인상적이었어요.”

“책 이름이 뭐죠?”

“음….. 기억이 잘 안 나요. 빌려서 읽은 거라(목소리가 기어들어가며)


그다음은 연봉 얘기

“희망연봉을 3000으로 적었던데, 신입이 그렇게 받는 곳은 거의 없어요.”

“아…”

“저희 회사는 신입 연봉이 정해져 있어요.”

정해져 있다면서 누가 들을까 봐 대표는 종이에 숫자를 적었다.

“아... 그렇군요.”

3000만 원보다는 훠어얼씬 적었지만 대부분의 디자인 회사 초봉이 그 정도라는 건 알고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네 가능합니다.”

“그럼 월요일에 10시까지 출근해 주시고, 뭐 궁금한 거 있어요?”

...?

나 합격한 거야? 왜?

"아니요! 그럼 다음 주에 뵐게요!"


이렇게 나는 첫 회사에 취직했다. 나를 왜 뽑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연봉에 불만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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