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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작슈퍼 Oct 11. 2023

알음알음의 세계

싫어

디자인 에이전시는 구인공고가 잘 올라오지 않는다. 대부분 지인을 통해 소개받아 구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에이전시는 적은 인원수로 구성되어 있기에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지인’이라는 보험을 들어놓고 사람을 구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적어도 추천했다가 욕먹을 사람을 소개하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 평판이 상당히 중요한 업계라고 할 수 있다. 그건 회사생활이 일 외의 것으로 피곤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돌아다닐지 모르기 때문이다. 




선배가 소개해준 곳에 면접을 보러 갔다. 회사 대표는 우리 학교 선배라고 했다. 나랑 학번이 10년 넘게 차이가 났다. 대표는 내가 어릴 적 떠올린 디자이너의 모습 그대로였다. 예쁘게 차려입고, 자신감 넘치고, 쿨했다. 그리고 좀 무서웠다. 목소리가 크고 말이 빨랐다. 귀에 문장이 팍팍 꽂혔지만 그때 나는 너무 쫄아 있어서 면접 때 무슨 얘길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표가 신고 있던 샤넬 플랫슈즈만 기억이 난다. 대표는 내게 다음 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그 회사 구성원의 반은 학교 사람이었다. 옆자리 선배는 날 소개해준 선배랑 친했고, 맞은편 선배는 술자리에서 이름이 자주 등장하던 사람이었다. 술자리에서 듣기로는 굉장히 활발하고 발이 넓은 사람이었는데 생각했던 발랄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회사에선 거의 말이 없었고 좀 주눅 들어 있었다. 대표에게 자주 깨져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나가서 줄담배를 피고 왔다. 담배냄새가 몸에 배여서 사람들이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점심시간에 주로 나누는 얘기는 학교사람들의 근황이었다. 내가 모르는 선배들, 다른 회사에 간 인턴들, 교수님과 조교들. 

“걔는 거기 들어갔다며? 버티기 힘들 텐데.”

“이번에 거기 들어간 인턴 엄청 깨지고 있대.”

취업 시즌을 맞이해서 특히 취업한 졸업생들 얘기가 화제에 많이 올랐다. 선배들이 웃으면 나도 같이 웃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어디선가 조리돌림되고 있는 게 아닐까? 선배들도 밖에서 내 얘기를 할까? 이번에 새로 들어온 인턴 걔 있잖아, 하면서.


계속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학교 선배들이 장악하고 있는, 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는 어쩐지 숨이 막혔다. 이 좁디좁은 학연으로 묶인 공동체에서 행동 하나만 잘못했다가는 소문이 쫙 퍼지고 사장당할 것 같은 기분. 한 번은 날 소개해준 학교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잘하고 있지? 다 듣고 있어. 잘해."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소름이 끼쳤다. 뭘 듣고 있단 거야? 


그 회사에서 6개월간 인턴을 하고 그만두었다. 숨이 막히는 것도 그랬지만, 6개월간 매일 9시부터 밤 11시까지 회사에 있다 보니 성격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시도 때도 없이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6개월간의 인턴생활이 끝나고 정직원이 되는 달,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만둔 후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한다. 유일한 과친구가 한참이 지나서야 말해주었다. 내가 회사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는 말은 친구에게 처음 들었다.  

“누가 그래?” “선배들이 그러던데". 

일하는 동안 적응은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학교 선배들이 주축이 되는 알음알음 커뮤니티를 빠져나왔다. 그때쯤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알음알음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스스로 구인공고에 지원해서 이력서를 쓰고 포폴을 정성스레 준비하는 것보다, 선배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술자리에 빠지지 않는 일이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이후로 6개월을 디자인과 상관없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졸업을 하니 학교 사람들과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나는 내가 졸업 후 찾아와서 술 사주는 선배가 될 줄 알았는데. 찾는 사람도 없었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연락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가볍고 자유로워졌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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