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칼럼
한 해에도 여러 번,
어쩌면 못 보고 지나칠 법도 하건만 그러지를 못하고 꼭꼭 마주치는 글이 있다.
어릴 적 부르던 그 노래 '작년에 왔던 각설이'마냥 매년 잊을 만하면 눈에 채이는 글이다.
그 글이란 바로,
빨리 읽기를 권하며, 빨리 읽는 비법을 가르쳐주는 글이다.
과거, 나 역시 빨리 읽고 싶어 안달하던 시절이 있었기에 왜 이 글이 잊히지 않고 회자되며, '유용한 정보'로 통용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빨리 읽는 방법은 어떤 요구에 의한 '필요'로써 존재한다. 세상이 빨리 읽기를 필요로 하는 한 이 글이 생명을 잃고 잊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책을 빨리 읽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균형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세상에는 빨리 읽기를 전하고 또 권하는 글이 천천히 읽기를 권하고 전하는 글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것 같다. 나 하나가 글 한 편 보탠다고 무엇이 크게 달라질까 싶으나 그럼에도 먼지가 쌓여 산이 되고,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몇 줄 보태 보려고 한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 빨리 읽는 방법'을 이야기한 글에서는 '여덟 가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책을 빨리 읽는 방법이 어디 여덟 가지만 있겠는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나 그보다 많을 수는 있어도 적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얼마나 공평하던가? 책을 빨리 읽는 방법이 100가지라면 책을 천천히 읽는 방법 역시 100가지가 있을 것이며, 책을 빨리 읽는 방법이 10,000가지 라면 책을 천천히 읽는 방법 역시 10,000가지 일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빨리 읽는 방법과 반대로 하면 되는 거다. 어느 쪽이 정답이다라는 법칙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그만인 거다.
책을 빨리 읽는 방법이 궁금한 이가 있을 터이니 그 여덟 가지 방법을 간단히 적어 보고, 천천히 읽는 방법으로 건너 가기로 하자.
1.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읽지 않는다.
2.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읽지 않는다.
3. 불필요한 눈 움직임을 줄인다.
4. 책을 읽기 전 어떤 내용인지 살펴본다.
5. 각 단락의 처음과 마지막 문장만 읽는다.
6.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경우 건너뛴다.
7. 조금씩 매일 읽는다.
8. 즐거운 마음으로 집중해서 책을 읽는다.
- 출처 :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13742
7번과 8번은 빠르게 읽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바람직한 마음가짐 혹은 자세라고 볼 수 있겠다. 책은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꾸준히 읽는 게 좋다.
여덟 가지의 빨리 읽는 방법을 들었으니 여덟 가지의 '느리게 읽는 방법'을 적어야 균형이 맞을 것 같지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반드시 '동일해야'만 '같은' 것은 아니기에 여기서는 세 가지만 적기로 한다.
이렇게만 적어두면 "이게 무슨 소리냐?" 할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아 조금씩 설명을 덧붙이기로 한다.
사람들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소리 내어 읽듯이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읽는다고 한다. 나 역시 대부분의 책을 그렇게 읽는다. 물론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읽지 않는 책이나 글도 있다(모든 것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둔다). 그러나 그런 글들은 대부분 '해치워야 하는 책'이나 글이다.
다르게 적으면 '단순 필요'에 의해 읽게 되는 글이라는 거다. 일에 비유하자면 '자아실현'보다는 '생계유지'측면과 닮아 있는 읽기가 그런 읽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책을 읽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아주 많은 수가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게 그 증거라면 증거가 아닐까.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읽으라고 적은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책이 '처음 읽는 책'일 것이고, '두 번 읽지 않을 책'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만 읽고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 있을까? 이제 갓 ㄱㄴ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아이를 위한 그림책에도 단 하나의 의미만이 담겨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어린아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이 무엇이던가? 끊임없이 놀랄만한 사실을 '발굴'해 낸다는 것 아닐까? 어른의 시선에는 지극히 당연하고, 뻔한 것이 아이에게는 매 순간 놀라움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단순히 아이들이 모르는 것이 많아서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하나에서 여러 가지를 발견하는 능력이 아직 퇴화하지 않은 것이다. 사소함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재능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천재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대부분 '보통 사람'인 우리들은 슬쩍 지나듯 보는 것만으로는 그 의미를 바로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적어도 한 번 읽을 때 두 번 읽는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한 번은 눈으로 읽고, 한 번은 머릿속으로 읽는 셈이 되는 거다. 억지라고 생각하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내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 이미 오래전에 증명되었다.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읽는 속도는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속도와 거의 같다고 한다.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고 볼 수도 없지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속도는 반복과 연습을 통해 어느 정도 빨라질 수 있기에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 역시 어느 정도까지는 빨라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눈으로만 읽어도 뇌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인간의 한계가 어딘지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서두르는 만큼 무엇인가를 빠트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책을 읽을 때는 머릿속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자. 두 번 읽는 것처럼,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내용의 이해가 수월해질 것이다.
사실 거의 모든 책은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기 전에 사전 정보를 필요로 한다. 누군가의 서평을 읽거나, 책의 내용을 훑어보거나, 저자의 이력과 작품의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심지어는 해설자들이 어떻게 써뒀는지를 먼저 읽고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의 경우에는 오래전부터 해설을 읽지 않기로 결심했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물론 언제까지나, 무슨 일이 있어도 해설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책을 읽고, 나름의 감상을 적기 전까지는 유예하는 거다. 이 과정을 고집하는 이유는 정말 단순하다.
"내 생각으로 이 책을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해설자 혹은 다른 독자들과 의견이 다르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하나의 즐거움이 된다. 처음부터 알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이해시켜가며 읽는 것보다 내용에 대한 이해도 올라간다. 한 번 읽어보고 난 후에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 해석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 가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 책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는 거다. 100명의 독자가 있다면 100가지 해석이 있어야 하는 것이 독서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책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것이 잘못된 시도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란 너무 막연하고 힘들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본다. 모르는 것,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자세한 배경 정보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있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더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알고 나서 읽는 것의 효과 역시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다고 해서 나쁘다거나 잘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옛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만 읽고 그 단락의 의미를 파악한다거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완전히 이해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일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가 보통 '안다'고 생각하고 믿는 것은 대부분 '안다는 착각'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고집'이나 '억지'일 거라고 본다. 사람의 인지에는 한계가 있다.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을 받은 소크라테스조차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만을 아는 정도였다. 물론 겸손한 마음에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삶을 보면 정말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이미 알고 있기에 건너뛴다? 만약 이런 과정을 반복한다면 그 사람은 수백 권, 수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자신의 이해의 불완전함이나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고 지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읽어나간 많은 책에서 자신의 생각에 맞는 견해들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정말 위험한 이유는 자기 독단에 빠져들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이다. 자기가 접한 책들이 모두 자신과 같은 생각, 판단,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생각해보자. 그 많은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자신의 견해가 틀렸거나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있을까?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와 비슷한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대처할 수 있다고 믿기에 가볍게 넘겨버리는 것이다. 한 문장을 살짝 비틀어 의미가 달리 해석되게 만들었다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두고 '헛똑똑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책을 읽는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목표가 있기 마련이다. 수천 권 혹은 수만 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평생 거듭 읽을 단 한 권의 책을 찾기 위해 읽어나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권수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에 맞는 책을 찾아 책장을 헤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어려운 것은 피하고 지금 입맛에 맞는 책들만 읽으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 가운데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불가능하다. 저마다의 목적이 다르고, 목표 역시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빨리 읽는 것이 필요한 순간 역시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나 경우는 그렇게 필연적인 것도,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보편적이라기보다 특수한 경우에 그럴 '필요'가 생긴다는 이야기다.
책을 '읽어 치우기 위해' 읽는 사람들이 있다. 부끄럽게도 한 때의 나 역시 그랬다.
장르에 따라 다르지만 인문서조차 한 시간에 100페이지 이상씩 '해치웠다'. 그러나 그렇게 읽으며 얻은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읽는 게 좋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거의 유일한 수확이었다. 물론 그런 과정을 거치며 책을 읽는 방법이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모두가 거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빨리, 많이 읽으면 신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번 읽을수록 좋아지는 책을 만나는 기쁨은 소모적인 즐거움보다 더 오래갈 뿐 아니라, 깊이 남는다.
비유하자면 빨리 읽기는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 향수는 그 순간의 향기는 진한 것 같지만 곧 사라져 버린다.
천천히 읽기는 향나무와 닮았다. 안에서부터 그 향이 우러나기에 오래갈 뿐 아니라 그 깊고 은은한 향이 다른 물건이나 사람의 몸에 머무르는 것이다.
책을 읽는 과정은 자기완성과도 맞닿아 있다. 억지로 서둘러 자기를 틀에 넣으려고 해도 좀처럼 잘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천천히 안과 밖이 조화를 이루어 완성해 간다면 더 크고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만족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