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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Jun 21. 2020

모범생 첫째의 똥고집 어리광

이제 어리광 더 부려도 괜찮아. 근데 커버 사진은 둘째.

첫째는 어린이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모범생이다.(그렇다고 한다.) 교육 활동에도 적극적이고 잘 못하는 친구들은 옆에서 가르쳐주느라 열심, 선생님들의 말에도 잘 따르는 우수 원아란다. 점심시간에는 밥, 반찬, 국 모두 골고루 혼자 잘 떠서 먹고 양치질도 야무지게 해서 손이 많이 안 간다고 한다. 친구들과의 놀이 시간에도 분위기를 주도하니 다른 친구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인싸란다. 원아 수첩에 적힌 담임 선생님의 메모나 간혹 아내에게서 전해 들은 원장 선생님의 관찰에 따르면 그렇다. 이상하다. 내 딸이 아닌 것 같다. 얜 누구지?  


집에서는 아빠 보고 다 해달란다. 밥을 조금 먹을라치면 옆에서, “아빠, 먹여줘!” 양치질하러 같이 세면실에 들어가 치약 바른 칫솔을 건네면, “아빠가 치카해줘!” 소변보고 나면 목청껏 소리 지른다, “아빠, 쉬 다 했어!”(휴지로 닦아달라는 얘기) 혼자 조금 놀다가 5분도 안되어 나에게 쪼르르 와서는, “아빠, 놀아줘!”


어린이집에서는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 집에서는 혼자서는 안 하는 아이. 내 아이지만 참 어떻게 대해야 할지 헷갈린다. 아무래도 어린이집에서 보여주는 능동적인 습관이 좋아 보인다. 그래서 자꾸 해달라는 랑이에게 혼자서 해보라고 타이르지만, 역시 집에서는 요지부동, 초지일관이다.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핀잔 섞인 쓴소리를 하면 삐져서 방에 들어가 훌쩍거릴 뿐 원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게라. 결국 밥도 떠먹여 주고 양치질도 해주고 소변도 닦아준다. 랑이는 언제 삐졌냐는 듯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나에게 매달린다. 이렇게 어리광을 받아주는 게 괜찮을까? 어린이집에서 잘 훈련된 능동적 습관을 내가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심 걱정스럽다.




어리광을 받아주면 역시 안 되는 걸까? 윗세대의 어른들이 우리에게 자주 하시는 훈육 팁이 하나 떠오른다. 응석을 자꾸 받아주면 버릇 나빠지니 응석을 받아주면 안 된다고. 일견 맞는 말인 것 같다. 어른들 말씀대로 어렸을 때부터 독립성을 길러주면 좋지 않겠는가? 부모 손도 덜 가니 피곤도 덜 하고, 아이들도 자기 주도적인 사고방식과 습관을 어렸을 때부터 익히게 되니 자기 인생 독립적으로 꾸려가는 데 큰 보탬이 되리라. 하지만 그것은 뭘 모르는 초보 아빠의 착각이었다. 하란대로 했을 뿐인데, 어리광을 안 받아주니 첫째나 둘째나 고집도 세지고 말도 갈수록 안 들어서 오히려 낭패였다.


<미운 네 살 듣기 육아법>에 따르면 어리광은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고 의지하고 싶어 하는 신호이다. 그렇기에 이 어리광을 잘 받아주면서 선을 넘지 않게끔 훈육하면 오히려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신의 감정이 수용된 덕분에 안정감을 느끼고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그러니 어리광을 받아주면 버릇 나빠진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아이를 밀어내는 대신, 어리광을 잘 받아줌으로써 아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하도록 하는 게 포인트이다.


일리 있는 얘기다. 거절 훈련이나 독립 훈련도 훈련의 목적과 배경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기에나 효과가 있는 것이다. 어리광 피우던 아이들은 그저 감정이 거절된 것에 상처 받을 테고,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아마도 그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결국 아이의 마음은 작은 생채기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무수한 상처투성이가 될 터이니, 병들어버린 마음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니 관점을 바꿔야 한다. 어리광을 마냥 욕 나오는 똥고집이 아니라 아이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로 봐야 할 것이다. 어리광을 많이 부릴수록 그만큼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다는 증거니, 그 기대에 부응해주면 줄수록 아이는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행복한 감정 속에서 자랄 수 있다. 어리광을 부리는 순간이야말로 부모의 사랑을 아이의 영혼에 각인시킬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이다. 그리고 그 각인은 평생 동안 빛을 발하면서 아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어리광 부려도, 그 어리광 좀 부모가 받아줘도 괜찮지 않을까? 언젠가는 어리광 부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도 못 볼 때가 올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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