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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묘 Jan 21. 2021

금 간 창틈으로 너를 보았다

정인이와 기형도의 <엄마 걱정>, 그리고 유년의 윗목

요즘 아내의 미간이 펴질 줄 모릅니다. 화난 듯, 수심에 잠긴 듯, 애통한 듯 미간은 잔뜩 주름진 채 움찔움찔합니다. 아마 대한민국의 엄마 대부분이 아내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어쩌면 엄마뿐만이 아니겠지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보던 아내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못 본 척 딴짓을 합니다. 안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노라면 가끔은 옆방에서 꺽꺽대며 숨 막히게 우는 아내의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숨죽입니다.


아내와 달리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무슨 자신이냐고요? 아내를 괴롭게 하는 그 사건의 진상을 저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면, 제 마음은 뒤죽박죽 섞인 감정으로 소용돌이칠 것입니다. 엉망진창 헝클어진 감정을 의연하게 감당할 자신 따위는 없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래서 더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외면하는 것이 최선인 마냥 피해버렸지요.     


셋째를 보면 정인이 생각이 많이 납니다. 정인이가 태어난 날이 셋째랑 불과 4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더군요. 저희 셋째도 돌 지나고서 눈치가 빨라져 자기를 혼내면 분위기를 알아채어 과장되게 울먹거리고, 장난치는 것도 좋아해서 아장아장 걸어와 아빠에게 무턱대고 다이빙하고, 모든 것이 신기할 때이니 이것저것을 만지면서 사고도 많이 쳤지요.(그릇 깨고, 자기가 싼 똥 만지고…….)      


정인이도 행동거지가 저희 셋째와 비슷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수를 감싸주는 애정 어린 손길이 정인이에게는 없었겠지요. 학대를 받으며 그 아이의 모든 말과 행동은 강제로 교정당했겠지요. 입양 전 정인이의 해맑은 미소는 이제 실물로는 볼 수 없게 되었고, 사진 속에서나마 애잔하게 웃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정인이의 마음은 얼마나 추웠을까요? 냉대 속에서도 따스한 엄마의 시선과 손길을 얼마나 본능적으로 갈망했을까요? 




문득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란 시가 떠올랐습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는 단골로 실려 있는 작품입니다. 기형도는 28살의 나이로 소주병을 들고 요절했는데요, 특히 그의 힘겨웠던 유년 시절을 알게 되면 이른 죽음에 마음이 더욱 아픕니다. 그가 10살일 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6년 뒤에는 두 살 터울의 둘째 누이도 명을 달리했습니다. 어머니가 많은 자식들(3남 4녀)을 먹여 살리기 위해 애쓰다 보니 기형도를 포함한 남매들은 엄마의 손길보다 자기들끼리 의지하며 일상을 보냈으리라 짐작됩니다. 가족 구성원의 죽음, 부모로부터의 애정 결핍, 가난 등 기형도가 소년 시절을 긍정적으로 보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요?   

  

<엄마 걱정>은 시인의 이러한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입니다. <엄마 걱정> 속의 시적 화자인 ‘나’는 아침 일찍 장에 나가 저녁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은 엄마를 걱정합니다. 그런데 사실 엄마보다는 ‘나’가 더 걱정스럽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런 일상이 계속되었을 텐데, 과연 어린 ‘나’의 정서가 건강할 수 있을지 염려됩니다. 엄마 없이 홀로 집 안에 남겨진 ‘나’나 엄마가 있어도 외로이 방치된 정인이나 둘 다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만 드리워져 있을 뿐입니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는 ‘나’를 비롯한 많은 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니 열무를 삼십 단(약 50~60kg)이나 이고 아침 일찍 시장에 갑니다. 많은 열무를 좌판에 늘어놓고 종일 자리를 지키느라 엄마는 고단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해가 서쪽으로 점차 기울수록 엄마의 얼굴은 초췌해져만 갑니다.     


밖에 나가 있는 엄마를 걱정하며 ‘나’는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분명 다른 형제도 집에 있었을 터인데, 엄마가 없으니 마치 혼자만 있는 것처럼 외롭습니다. 누군가가 찾아주지 않아 차갑게 식어버린 ‘찬밥’처럼 ‘나’는 오늘도 홀로인 듯 방 안에 머무릅니다.     


‘나’는 엄마의 부재를 잊기 위해 숙제를 합니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집중은 되지 않아 노트에 그저 끄적거립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자니 자꾸 나쁜 생각, 무서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다른 일에 열중해야 이 외롭고 무서운 느낌을 조금은 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연필을 쥔 손이 느릿느릿 움직입니다.  


엄마의 관심과 손길을 받을 수 없는 집은 ‘나’에게 편안하지 않습니다. 귀가하는 엄마의 발소리를 고대하지만 발소리는커녕 스산한 바람 소리,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만이 전부입니다. 그 소리들이 ‘나’의 상상력을 부채질합니다. 먼 곳에서 엄마가 돌아오다 혹시라도 험한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빈방에 혼자 엎드려 있는 ‘나’를 무엇인가가 해코지할 것 같아 무섭기도 합니다. 해는 이미 저물어 밖은 캄캄하니 ‘나’는 더욱 두렵습니다. 불안감과 공포심으로 뒤범벅이 된 ‘나’는 마침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터트립니다. 엄마가 보고 싶습니다. 


훌쩍 커버린 ‘나’가 이러한 기억 속 장면을 금 간 창틈으로 바라봅니다. 이제는 압니다. 왜 그때 엄마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자신이 그런 감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는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기에,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자위해 봅니다. 그러나 유년 시절을 다시 떠올리면 ‘나’는 이상하게도 먹먹해집니다. 마음 한구석이 저립니다. 괜스레 뜨거운 눈물이 납니다. 왜 이러지, 하며 눈물을 훔쳐보지만, 훔친 것보다도 많은 눈물이 흘러나옵니다. 가슴으로는 아직 괜찮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혼자 숙제하며 빈방에서 훌쩍거린 ‘나’를 가만히 제 마음에 담아 봅니다. 입양 이후 ‘미국식 수면 교육’, ‘몽고반점’, ‘아토피성 피부염’, ‘구내염’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 속에 점차 시들어 버린 정인이를 마음으로 안아 봅니다. 착잡하면서 찌릿합니다. 한숨만 나옵니다. 두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가슴에 사무칩니다. 다행히 ‘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행간에서 엄마와 함께 어른이 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정인이는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인이의 일 이후 예전보다 아동 학대를 고발하는 뉴스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가 부모를 포함한 누군가의 학대로 생을 마치고 있더군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갓난아이가 창밖으로 던져졌습니다. 출생 신고도 안 된 8살 먹은 여자아이가 호흡이 멈춘 채 발견되었습니다. 3살 먹은 여자아이가 둔기로 수차례 머리를 맞았습니다. 그 아이들도 정인이처럼 미래의 가능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학대받고 있는 아이들이 있겠지요.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주변인들의 세심한 관찰과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도적 장치도 보완해야 하지만 마냥 시스템이 완비될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금 간 창틈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온돌이 깔린 방에 아궁이에서 가까워서 바닥이 따뜻한 곳은 아랫목, 아궁이에서 멀어서 바닥이 찬 곳은 윗목이라고 합니다. <엄마 걱정>의 ‘나’에게 유년 시절은 엄마의 따스한 손길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윗목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정인이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정인이가 이제는 아랫목에서 따뜻하게 쉬기를 기원합니다. 참으로 따스해서 정인이가 유년의 윗목이야 죄다 잊어버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차마 정인이의 사진을 싣지는 못하겠더군요. 

아래는 아동 학대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읽어보시고 함께 아동 학대 예방을 위해 동참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 11월 19일은 아동 학대 예방의 날입니다.         

2.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          

https://youtu.be/bJn-k1ebySw 


3. 아동학대 의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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