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3일 차, 수술실과 회복실의 생생한 기록
수술하고 처음으로 내 다리로 걸어서, 신생아실에 있는 아가를 보고 왔다. 한 오분쯤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얼굴은 팅팅 부어서 신생아실 앞에서 혼자 서럽게 울고 있는 나를 보더니 한 간호사가 놀라서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 "산모님, 어디 몸이 안 좋으세요?" 나는 그냥 서럽게 울면서 고개를 저었는데, 간호사가 다시 나와 아기를 번갈아 보더니, "아가를 보니 울컥하셨나 봐요... 울면 배 통증이 더 아파요, 아가도 엄마가 느끼는 게 다 느껴지고요. 자, 어서 방에 들어가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병실에서 화상으로 방통대 수업을 듣던 남편이 눈이 똥그래져서 날 쳐다본다. 임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울던, 저 강한 여자가 왜 저렇게 서럽게 울고 있는지 모르겠단 눈으로.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간호사가 놓아주는 진통제를 맞고, 남편의 걱정스러운 눈빛은 뒤로하고 퍼지는 약기운을 느끼면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4시. 어제보단 2시 간 더 깊게 잠들었다 깨니, 몸이 한결 가뿐하다. 한바탕 울고 났더니 머리도 개운해졌다. 왜 울었을까... 남편이 찍어 다 준 사진과 동영상 속의 아가를 보다가 직접 눈 앞에서 곤하게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모성애를 느낀 걸까. 그냥 저 작고 소중한 생명이 내 뱃속에서 나왔단 사실에, 마냥 감사했다. 젊지도 건강하지도 않은 엄마 때문에 뱃속에서 고통스럽지는 않았는지, 10개월 간 내가 아기를 위해 해 준 게 뭐가 있었는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 나와 남편이 겹쳐 보이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 아가구나.. 우리 아가..
조금이라도 지루한 걸 견디지 못하는 나를 잘 알기에, 출산 가방에 넷플릭스를 탑재한 아이패드와 책 2권, 일기장과 가계부까지 챙겨 온 나지만. 출산하고 나서는 출산 축하 카톡과 전화 외엔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보고 싶던 예능 방송까지 나오는 병실 티브이 소리에도 짜증이 났다. 수술 직후부터 매우 민감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출산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겠다는 결심은 쑥 들어갔다. 출산 후 3일 차. 이제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걸 보니 이쯤부터는 괜찮아지는 건지, 아니면 태풍의 눈에 들어온 건지. 어쨌든 이 고요한 순간을 틈타서 출산 과정을 되짚어 보려 한다.
수술실
제왕절개 산모는 수술 2시간 전에 입원한다. (보통은 하루 전에 입원하는데,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금식을 하고 당일에 입원하는 것으로 절차가 변경된 곳이 있다고 한다.) 입원하여 수술가운으로 갈아입고, 먼저 아이의 심장박동과 태동 등을 20분간 체크했다. 그리고 두 가지 종류의 항생제 테스트를 하고 수액을 꼽았다. (왁싱을 하고 오지 않은 산모들은 이때, 제모를 한다)
출산 한 시간 전부터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병원에 함께 들어오진 못하지만 병원 밖에서 응원하고 있겠다는 엄마와, 병원 맞은편 카페에서 기도하고 계시겠다는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다른 가족과 친구들의 메시지에 응답하며 시간을 보냈다.
12시쯤 우리를 부르는 소리에 수술실 앞에 섰는데, 노련한 간호부장님이 웃으며 설명해 주셨다. "아빠는 아까 그 병실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서로 얼굴 보고 앉아주세요" 오랜만에 안기는 남편의 품 안에서 살짝 울컥했지만, 웃으면서 수술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넓은 수술실에는 조용하게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고, 공기는 약간 서늘했다. 수술대에 누우면서 추위를 잘 견디는 나를 두고"우리 자긴 북방 민족이었을 거야"라며 종종 놀려대는 남편의 농담이 떠올라 혼자 피식거렸다. '천정이 좀 더럽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에 수술해 주실 안 원장님이 웃으며 들어오셨다. "좀 춥죠? 여기 에어컨 좀 꺼주세요. '난 괜찮은데.. ' 속으로 생각하며 그냥 씩 따라 웃었다.
아직 수술대에 적응도 못했는데 하반신 마취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자 옆으로 누워서 최대한 다리를 웅크려주세요. 머리도 숙여서 최대한 무릎에 붙여주세요. 척추 주사라 조금이라도 움직이시면 마취액이 다른 곳에 흘러들어 가 위험합니다." 왜 의사들은 항상 이렇게 차가운 말을 잘할까. 이런 멘트도 "자 이제 척추주사란 걸 놓을 건데,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시고, 내가 냉동새우가 된다! 생각하시면 돼요. 차가운 기운이 아래쪽으로 퍼질 건데, 이때 움직이면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해요." 정도면 좋겠다. 맨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커진 배 때문에 어정쩡한 상태로 누워 있는 것이 서러워질 찰나에 다른 간호사가 와서 슬며시 발을 잡아 위로 밀어줬다. 훨씬 수월한 자세로 마취액이 서서히 다리로 퍼져감을 느꼈다. 얼음 인간이 되는 느낌이랄까. 순식간에 마취가 돼버리니, 감탄하기 전에 바로 바른 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눕고 나서 내 다리를 간호사가 꼬집는 듯했다. 만지는 동작은 보이는데 느낌은 없다. 신기하다. 순간 메슥거리며 어지러워졌다. 간호사에게 마스크를 벗어도 되냐고,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안 원장님이 옆으로 와서 "마취약을 맞으면 순간 메슥거리는 게 정상이에요."라며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나를 안정시켰다. 아래쪽에선 "이제 소변줄을 꽂을 건데, 마취가 안 되었으면 불편할 수 도 있어요" 불편함을 느끼기도 전에, 소변줄이 끼워지고, 마스크 대신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아가 보고 재워드릴까요?라고 묻는 마취과 선생님의 말에 말없이 고객을 끄덕였다." 약간 몽롱한 상태로 "자 지금 어때요? 느낌이 오나요?라고 묻는 안 원장님의 말에 고개를 젓고 나자 아래쪽이 조금 흔들렸다. 아랫배가 출렁거리는 느낌이 들더니 "아기 나왔어요" 란 소리와 함께 이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짧은 순간이 아주 천천히 지나갔다. "아기 양수 씻기고 엄마 보여드릴게요." 저 멀리서 초록색 천에 둘러싸인 아기가 처음으로 내 옆에서 운다. 나도 말없이 계속 눈물이 흘렀다. "아빠가 탯줄을 잘랐나요?" 이 순간에 남편이 보고 싶었는데, 남편은 나중에 탯줄을 다른 곳에 자를 거라 한다. 계속 우는 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기계 같던 마취과 선생님도 웃으며 아가가 일본 만화에 나오는 어떤 캐릭터를 닮았다며 웃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 자 이제 재워드릴 거예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회복실
깨어나니 걱정스러운 남편의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 시간 정도 수술하고 한 시간 정도 회복실에서 누워있었던 것 같다. 마취 기운이 덜 풀렸는지 약간은 알딸딸한 상태로 남편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나 괜찮다고 사진 찍어서 어서 보내드려~ " 걱정스러워하는 남편에게 웃음 지어 보이면서 말을 건넸다. 내 사진을 받고 하나둘씩 전화가 걸려온다. "이 정도면 한번 더 할 수 있겠는데?" 남편에게 너스레를 떨어가며 가족들과 전부 통화를 했다. "이제 엄마는 간단하게 체크하고, 5층 병실로 갈거니, 남편부터 올라가 계실게요~" 간호사가 들어오며, 남편을 올려 보냈다. 분명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마무리하실게요."라고 했는데, 내가 출혈이 계속되자 수술한 부위를 연신 눌러대며 피를 빼더니, 내 신음소리와 콸콸 쏟아지는 피에 당황한 간호사가 원장님을 부르러 나갔다. 괴한에게 기습적으로 칼로 배를 찔리면 이런 기분일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와 상황이라 더 괴로웠다. 안 원장님이 들어오시더니 "예전에 자궁근종 수술 봉합했던 부위에 핏줄이 많이 생겨서, 그 부위에 출혈이 좀 있었고, 지금 나오는 피를 제거해야 해요."라며, 매우 간단한 한 마디를 남기시곤 급하게 사라지셨다. 사실 지금까지도 이때의 기억이 제일 끔찍하다. 출산 후기와 지인들의 후일담을 통해 마음의 준비를 해놨는데, 이건 말 그대로 나에게 돌발상황이었다. 아까 그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이 피를 다 빼고 가야 병실로 올라갈 수 있으세요"라고 하며, 연신 수술 부위를 눌러댔다. '아니 출혈이 계속되는데 피를 왜 다 빼내야 하지?' 이해가 안 되는 말에도 수술 부위를 계속 눌러대는 간호사의 손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침대 난간을 죽어라 쥐어 잡고 소리 질렀다.. 꺄악..... 악......... 출산의 고통은 반드시 한 번은 겪게 되는 것이구나... 제왕절개도 그런 거구나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