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직후의 기록
벌써 출산한 지 열흘이 지났다. 조리원 입소 첫날부터 산후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힘들었는데, 벌써 조리원에서 3박 4일째라니. 시간이 느리면서도 빠르게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망각의 강을 건너기 전에, 병원에서의 나머지 기록을 남겨본다.
4일 차,
젖몸살의 시작
확실히 일반식을 먹고 나니 훨씬 상태가 좋아졌다. 친정 엄마가 만들어다 주신 찰밥과 반찬들도 같이 먹고, 남편이 사다 주는 과일이랑 그동안 제일 마시고 싶던 디카페인 라테도 한 잔 마셨다.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음료이자 내 최애 간식인 커피를 마시고 나니, 이제야 좀 나 같다. 주렁주렁 달려있던 수액과 진통제를 떼어내고 나니 걷기도 더 쉬워졌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유를 해야 한다고 신생아실에서 연락이 왔다. 마냥 설레기만 하던 첫 수유. "유두가 짧아요. 다음번에는 유두 보호기를 1층 약국에서 사 오세요. 일단 지금은 여기서 사용하는 소독된 걸 드릴게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한 수유. 유두 보호기라는 젖꼭지 모양의 실리콘 덮개가 우리 모녀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 같았다. 배고파서 그 작은 주둥이를 아기새처럼 벌리고 있는 아기에게 서툰 엄마는 땀만 뻘뻘 흘리다가 첫 수유를 마쳤다.
그날 저녁, 출산하고 처음으로 가슴에 젖이 도는 느낌이 들었다. 양 쪽 가슴이 단단하게 차오르다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정말 잠깐 물렸던 그 짧은 순간이, 내 몸에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오다니. 그렇게 젖몸살이라는 출발 신호를 시작으로 수유라는 또 다른 엄마가 되는 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5일 차,
사람에서 여자로
오늘은 처음으로 샴푸와 가슴 마사지를 받는 날. 출산하고 닷새 만이다. 병원 지하에 있던 최신식 다방 같은 분위기의 에스테틱에 들어가서 먼저 얼굴 마사지를 받았다. 관리가 필요 없던 20대에는 피부과와 에스테틱을 참 많이 다녔는데, 삼십 대 들어서는 참 오랜만에 관리를 받는 것 같았다. 결혼하고 나서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꽤 오랜만에 누군가 내 얼굴을 만지는 거였는데, 너무 편안해서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단단하게 아프던 가슴도 마사지로 풀어주니, 금세 또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손꼽아 기다렸던 샴푸 서비스. 미용실 의자에 뒤로 눕는 것도 상처 부위 때문에 힘들었지만, 머리가 감기는 동안만큼은 하늘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말리고, 병실로 올라와서 옷도 갈아입고 나자,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도 빗지 않고, 얼굴 세수도 간신히 했던 내 몰골이 수술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수술하고 나서는 일부러 쳐다보지도 않았던 거울이었는데, 머리를 감고 마사지를 받고 나서부터는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었다. 힘든 상황일수록, 몸가짐을 단정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꽤 안정감이 생긴다. 병원과 조리원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퇴원
드디어 퇴원하는 날 아침이 밝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병원의 배꼽시계에 따라, 7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일주일 만에 수북해진 짐을 정리했다. 집으로 가져가도 될 것과 조리원에 가지고 갈 것을 나누었고, 버릴 것들은 정리했다. 고작 일주일 동안 꽤 많은 짐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친청엄마가 싸다 준 반찬들, 조리원에서 받은 아기 용품들, 남편이 사다준 간식거리들.. 짐이 아니라 주변에서 받은 사랑이었다.
남편은 병원 맞은편에 있는 조리원에 짐을 미리 가져다주러 나가고, 나는 10시쯤 외래 진료실로 내려가 실밥을 뽑고, 상처가 잘 아물었으니, 일주일 뒤에 보자는 반가운 작별 인사를 했다. 퇴원 정산을 하고, 정들었던 간호사 선생님들과도 인사를 했다. "나무 엄마~ 둘째 날 때 또 와요~" 간호부장님의 작별 인사에 씩 웃으며 병원을 나왔다.
잠깐이나마 손녀와 딸을 보고 싶은 친정엄마가 병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옮기는 그 잠깐 몇 분을 보려고 차를 타고 사십여분을 운전해서 오셨다. 아이를 낳고 나면, 제일 먼저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고 하는데, 무뚝뚝하고 이기적인 딸내미는 그냥 아픈 내 몸과 아기 생각이 먼저였다. 뭐가 그렇게 안쓰러운지 매일 같이 문자와 전화로 챙겨주는 엄마, 앞으로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딸의 인생이 본인의 지난 인생과 겹쳐 보이시는 걸까. 걱정 말라고 웃으면서 말했어도 좋았을 텐데, 별 말없이 그렇게 나는 조리원으로 엄마는 집으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