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직후의 기록
일요일 아침. 병원 침대 옆에서 불편하게 쪽잠을 자던 남편이 새벽 6시부터 일찍 집에 다녀온다고 나섰다. 오늘도 종일 병실에서 (나를 간호하지 않고) 방통대 수업을 들어야 하는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꼭 나 자고 있는 이때 이렇게 일찍 나가야 돼? 그렇게 집에 빨리 가고 싶어?"라고 묻자, "제발, 내가 하는 거 간섭 좀 하지 마." 날 선 목소리가 돌아온다. 남편은 일찍 새벽에 나가 수업이 시작되는 오전 9시 전에 돌아와서 내 옆에서 수업을 들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난 지금 나가서 수업 끝나는 오후 5시에 오는 줄 알았지.. 아직 부인과 대화할 줄 모르는 초보 남편, 아직 남편을 믿어주지 못하는 초보 부인이다.
일요일 아침이다. 목요일에 수술했으니 오늘로서 4일 차. 이제는 병실에 있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격렬했던 지난 3일간의 병실 기록을..
1일 차
회복실에서 병실로 침대에 실려 이송되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말하기, 생각하기, 눈뜨기와 눈감기뿐이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척추 마취를 했으니까, 배게 없이 그냥 똑바로 만 누워계실 거예요. 배게 사용은 오늘 저녁 8시부터 가능하고, 아프시면 추가로 진통제 놔드릴 테니 말씀하세요." 수액과 무통주사, 페인 버스터까지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에게 간호사가 와서 말했다. 제왕절개 후기를 많이 읽어서 인지, 생각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저, 혹시 물은 내일부터 마실 수 있는 걸까요?" "아, 물도 오늘 저녁부터 조금씩 자주 드셔도 돼요." 수술 당일은 물조차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쁘던지.
누워서도 통화는 가능했다. 조금 지나서는 카톡까지도. 남편이 탯줄을 자르는 동영상과 아이 사진을 출산을 축하해줬던 지인들에게 보내면서 그들의 축복과 격려를 온 마음으로 흡수했다.
혼자서 한참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말없이 옆에 있던 남편이 불쑥 한마디 한다.
"결혼하니까, 이런 게 좋은 거 같아."
"응? 무슨 말이야?"
"아빠가 되는 기분 말이야. 좋다."
자기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툰 남편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좋은 건데, 괜히 어색해진 나는 그냥 한 번 피식 웃었다. 이렇게 달달하고 행복하게 첫날이 지나갔으면 참 좋으련만. 고통은 새벽부터 시작됐다.
"헉...." 자다가 깜짝 놀라 눈이 떠졌다. 뱃속에서부터 강한 펀치가 날아든 것처럼 아랫배가 움찔하더니, 묵직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 '이게 자궁이 수축되는 훗배앓이라는 거겠지.. 진통제 맞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그냥 참아보자.'라고 다시 눈을 감았지만, 한 시간, 30분 간격으로 잦아드는 수축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자연 분만한 임산부들이 겪는 진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겠지. 그 고통을 나는 지금 겪는 거야..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완전히 지쳐있을 때쯤 간호사가 들어왔다. 새벽 4시 반. "좀 잤어요?" "아니요.. 저 한 시 반부터 계속 자궁수축이 와서..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아이고, 다음부터는 참지 말고 간호사실로 연락해요. 진통제 놔주러 올게요." 그렇게 고통의 첫날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2일 차
전 날 새벽의 여파로 오전 내내 침대에서 진통제에 취해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오후부터 나오는 미음을 먹으면서, 조금씩 사람다운 움직임이 가능해졌다. 미음만 먹어서 어떡하냐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에 "내 인생에 가장 맛있는 미음이야"라며 씩씩하게 먹으니, 정말 괜찮아졌다.
제왕절개 수술은 피부, 복막*, 자궁을 순차적으로 절개한 후에, 자궁에 있는 아이를 꺼내고, 자궁을 몸 밖으로 드러내어 꿰맨 후, 다시 자궁, 복막, 피부를 차례로 봉합하는 시술이다. 아이의 크기나 엄마의 상태에 따라 수술부위가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며, 보통 제왕절개 수술 후에는 장기들이 유착될 가능성이 많아 몸을 자주 움직여 줘야 한다.
제왕절개 수술 직후에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는 침대에 누워 무릎을 세워 좌우로 번갈아 가며 움직여 주는 것 정도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무릎을 세운 상태로 엉덩이와 허리까지 완전히 좌우로 움직여 줄 수 있으면 완벽하다. 나는 아직 엉덩이와 허리까지 완전히 좌우로 움직일라치면 뱃속의 장기들이 요동을 치는 느낌이다.
이런 큰 수술을 했는데, 소변줄을 꼽고, 장운동도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밥을 먹으면 안 된다. 간장을 조금 뿌린 아무 맛도 없는 미음을.. 맛있다고 느끼다니.. 인간의 몸은 참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동물이다.
* 복막은 복강을 둘러싸고 있는 장막을 뜻한다. 복막은 복부에 있는 장기를 거의 둘러싸고 있으며, 내장을 서로 연결하고 지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3일 차
새벽 3시 반. 어제보단 2시간 정도 더 잤다. 또다시 자궁수축이 일어나는 느낌에 깼는데, 이번엔 어제보다 확실히 통증의 강도가 약해졌다. 어제 중간에 깼다는 내 말을 들을 간호사가 1시 반에 와서 진통제를 넣어주고 간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제저녁부터 양 쪽 귀 아래쪽이 불룩하게 부어올랐다. 갑상선염. 출산 직후 임산부들에게 종종 나타나기도 하는 염증인데, 과거에 갑상선염을 한 번 앓았던 적이 있던 나인지라 오히려 나보다 간호사와 남편이 더 놀랐다. 임파선염이나 볼거리 같이 귀 아래쪽부터 부어오르는 건데,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호르몬의 변화로 생겨난다고 한다. 그 흉한 몰골로 어제 혼자 신생아실 앞에서 울고 있었으니.. 간호사가 유독 자주 내 방에 와서 얼굴을 확인하고 가는 게 느껴져 고마웠다.
오전 6시 반. 소변줄을 제거하는 날이다. 오늘의 최대 미션은 소변줄을 제거하고 4시간 안에 소변보기. 소변을 보고 간호사실에 전화해서 알려달라고 한다. 신생아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다. 누워만 있다가, 좌우로 움직이고, 일어서고, 앉고, 걷고. 이제는 소변을 보는 것까지.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우는 기분이다.
오늘부터는 정상적인 식사가 나온다. 오후부터 정상식을 하고, 복대로 상처부위를 감싸고 복도를 걷는 연습을 한다. 모유 수유를 시작하기 전에, 온종일 나에게 달려있는 이 수액과 진통제들을 떼어내려면, 부지런히 걷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아가를 위해 건강하게 회복해야겠다는 목표가 세워지니,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들이 자동적으로 만들어진다. 수많은 계획들이 좌절되는 이유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가 우선시 되지 않아서였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