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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음뱅이 Jan 03. 2019

원치 않는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불행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2008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망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유용하다. 우선, 하드디스크 용량이 제한되어 있듯 인간의 뇌가 수용하는 공간도 한정적이다. 새롭게 영어 단어를 10개 외우면 이전에 외웠던 단어 중 몇 개는 꼭 잊어버린다. 안 쓰는 기억을 삭제하지 않고 계속 저장만 하다가는 과부하에 걸릴 것이다. 


또 다른 유용함은,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동시에 갖게 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행복했던 기억이야 오래오래 영원히 남겨두고 싶지만 비참했던 기억은 깨끗이 지우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망각을 가리켜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망각이 능사는 아니다. 완전히 잊긴 아쉽고, 매일 꺼내보기엔 마음이 아픈 기억이 있다. 원치 않게 누군가와 헤어졌을 때가 그렇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장남 준페이가 바다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다 죽었다. 영화는 준페이의 15주기에 모인 이들을 비춘다. 어머니 토시코(키키 키린)는 가족사진을 찍을 때 꼭 준페이의 사진 액자를 챙겨와 품에 안으며 “이제 가족이 다 모였네”라 말하고, 동네 병원 원장으로 평생을 일하다 은퇴한 아버지는 가업을 이으려 했던 장남의 부재를 안타까워한다. 형처럼 의사가 되지 못하고 집을 나갔던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는 아버지와 서먹서먹한 대화를 간신히 이어간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은 료타의 아내 유카리(나츠카와 유이)도 한 번 경험한 것이었다. 유카리는 전남편과 사별했다.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아츠시가 료타네 가족들 앞에서 버릇없게 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아츠시는 아직 ‘죽음’이 어떤 건지 실감하지 못한다. 이제 곁에 없는 아버지처럼 그에게 죽음은 ‘더 이상 없는 것’, 그뿐이다. 새아버지 료타를 ‘료짱’이라 부르는 것도 아버지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두 사람이 죽었다. 부모는 자식을, 아내는 남편을, 아들은 아빠를 잃었다. 헤어짐을 견디는 방법은 다양하다. 토시코는 준페이가 구해낸 아이를 매년 집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며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렇게라도 원망할 상대가 있으면 괴로움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서. 

유카리는 가끔씩 아들 아츠시에게서 죽은 전남편을 본다. 그의 말처럼 “죽었다고 사라지는 건 아닌” 듯하다. 아츠시는 아직 아빠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지만, 앞으로 빈자리에 료타의 기억을 조금씩 채워나갈 것이다. 

딸과 대화하던 토시코는 료타와 유카리의 결혼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사별은 죽은 남편과 비교당해서 힘들어. 차라리 이혼이 낫지, 싫어서 헤어진 거니까.” 


이유가 충분해서 이혼을 선택할 때보다 원치 않게 헤어질 경우 더 힘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헤어짐의 순간은 대부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찾아오고, 기억을 차마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을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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