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울음뱅이 Jan 05. 2019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속이는 불행

라스트 홈, 라민 바흐러니, 2014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15년도 더 된 영화 대사지만 요즘도 여기저기서 인용된다. 오래 남는 명대사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자기 얘기처럼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은 자신이 인간과 괴물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도리를 지키며 살고 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특별히 나쁘게 살지는 않았다고 자신한다. 그럼 정말 아무도 괴물이 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다짐하는 것이다.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고. 

괴물 되기는 쉽다. 딱 한 마디의 핑계만 있으면 된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살다 보면 불가항력도 있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인지 아닌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안다. 그럼에도 순간의 안락함을 위해 자기 자신을 속이고 괴물이 된다. 물론 양심의 가책은 느낀다. 그마저도 처음만 힘들 뿐. 다음엔 조금 덜, 그다음에도 조금 덜 느끼다가 끝내 뻔뻔해진다. 자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입는 피해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영화 <라스트 홈>의 내쉬(앤드류 가필드)도 괴물이 되기 직전이다. 그는 주택담보대출 이자 연체로 어머니, 11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던 집에서 쫓겨나 모텔을 전전한다. 집에 쳐들어와 그를 쫓아낸 건 부동산 브로커 릭 카버(마이클 섀넌)다. 릭에게 온갖 쌍욕을 퍼부었던 내쉬지만 일자리를 주겠다는 릭의 말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다. 

내쉬는 릭이 그랬던 것처럼 연체금이 밀린 사람들을 집에서 쫓아내며 평소 쥐어본 적 없을 정도의 돈을 벌고, 빼앗긴 집을 되찾을 꿈에 부푼다. 문서를 조작해 불법적으로 입주자를 내쫓고 거액을 가로채는 릭은 이미 괴물이다. 그의 핑계는 나라가 처음 세워지던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패배자들을 구해주지 않아. 미국은 승자들을 위해 세워진 나라니까. 100명 중 한 명만 방주에 타는 거야. 나머지 99명은 가라앉는 거지. 난 가라앉지 않을 거야.” 


내쉬에게도 할 말이 있다.


“내가 번 돈으로 산 집이에요. 우리 가족 밤이슬 피하게 하고 입에 뭐라도 넣어주려고.”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가족들 굶기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뻔한 핑계를 공유하며 둘은 더 많은 집을 사들이고 더 많은 사람을 쫓아낸다.

<라스트 홈>은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모델로 한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홈리스가 됐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내쉬처럼 다른 사람을 길바닥으로 끌어내진 않았다. 강제 퇴거 통지를 받은 그린(팀 귀니)은 인터넷과 도서관에서 자료를 모으고, 무료 변호사를 구한다. 가족과 집을 지키기 위해 내쉬와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그의 노력을 좌절시킨 건 릭과 내쉬가 조작한 문서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해서 모두가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는다. 그 차이가 사람과 괴물 중 어느 쪽을 향해 걸어갈 것인지를 가르는 기준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