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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Jan 14. 2022

인도에서 700원으로 배운 것

인도 여행에서 속고 속기를 반복하다 700원 더 붙은 영수증에 그만...

3년 전 여름 코로나가 없던 시절.

여름휴가를 내고 혼자 다녀왔던 인도에선 더위만이 문제가 아니라 뚜껑 열릴 일들이 한가득이었다. 수염 긴 할아버지들이 왜 때 낀 반바지를 입고 나무 아래 누워있는지, 늑대만큼 커다란 개들이 왜 혀를 내밀고 축 늘어져 누워있는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액정 깨진 내 아이폰은 뉴델리 기온이 39도라고 가리키고 있었다. 출구 없는 39도짜리 찜질방에 들어왔다는 얘기다.


“남자 친구 있어요?” ”우리 결혼해요.” 인도 뉴델리의 거리에선, 고국에선 경험해보지 못한 남성들의 애정공세가 쏟아졌다. 그들의 라운드넥 티셔츠의 열린 윗단추 위로는 굵은 털들이 삐져나와 있었고, 내가 정말로 예쁜 걸까 잠시 생각도 해봤지만, 어쨌든 손거울 속의 내 얼굴에도 땟국물이 흐르고 있었다. 딱히 대답할 말도 없어 앞만 보고 터덜터덜 걸으니, 그 남자는 내 뒤의 금발 여성 배낭여행자에게 결혼하자며 구애하기 시작했다.


흥정에 소질이 없어 시장에서 귤값도 못 깎는 내겐 릭샤(인력거) 타는 흥정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튜브엔  인도든 아프리카에서든 “에이~ 제가 시세 다 알거든요? 바가지 씌우지 말고 깎아줘요.”라고 흥정하는, 민소매 바깥으로 검게 그을린 어깨가 드러난 씩씩한 사람들만 나온다. 나처럼 '이걸 깎아서 뭐하겠어... 이거 깎는다고 큰 부자 되겠니' 하는 사람들은 바가지 쓰기 십상이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점을 굳이 찾자면, 밍밍한 애들이건 야무딱진 애들이건 여기선 누구든 한 번은 속고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는 릭샤를 잡으려고 지글지글 끓는 6차선 도로를 바라보며 우물쭈물 서 있었다. 그때 어떤 생면부지의 사람 좋게 생긴 인도 남자가 다가와 내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고맙게도 릭샤를 싸게 흥정해줬다. 가이드북에서 본 것 보다도 싼 값이었다.


릭샤꾼은 나를 쇼핑센터로 데려갔다. 그들이 자랑하는 찻잎과 인도 전통복을 다 살 때까지 문 앞에서 나를 찬찬히 기다렸다. 지친 나는 이제 돌아가자고 말했다. 왔던 곳으로 돌아가니, 아까 내게 릭샤를 잡아줬던 사람 좋게 생긴 남자가 보였다. 그 옆에는 이 릭샤를 타려고 대기하는 (나 같은) 여자 관광객이었다. 아, 또 속았다.

집에 돌아가는 날. 나는 공항 수화물 보관소에 짐을 맡기고 마지막으로 거리를 돌아보기로 했다. 보관소의 남자 직원은 더없이 사람 좋은 미소로 마음 편히 안전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굿럭!” 직원의 친절하고 느긋한 말에 기분이 좋아져 나는 “땡큐!” 하고는 길을 나섰다. 이게 인도의 느긋함이지. 모두가 여유롭고, 모두가 화 한 번 내질 않는다. 속아도 웃고, 속여도 웃고. 짜이차에 벌레가 둥둥 떠있어도 "쏘리" 하고는 다시 따라주는 여유로운 사람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여기선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에어컨이 설치된 식당에 들어가 TV에서 나오는 인도 뮤직비디오를 보며 탄두리 치킨을 먹고 짜이차도 마셨다. 그 옆 스타벅스 앞에는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스벅 안은 미치도록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시원했다. 사람 잡는 인도의 더위를 달래며 축 늘어진 강아지처럼 소파에 몸을 반쯤 파묻었다. 이게 인도지. 재밌다. 좋아.

그렇게 더위를 식히고 다시 공항 수화물 보관소에 돌아왔다. 짐을 찾으려고 카운터에 가자, 아까 그 상냥한 직원이 여행은 즐거웠냐고 물었다. "즐거웠죠!" 나는 영수증을 확인했다. 우리 돈으로 700원 정도가 더 부과되어 있었다. 영수증에는 내가 짐을 보관한 시간보다 몇 분 정도 길게 잡혀 있었다. ’나 또 속은 거야?’ 화가 났다. 인도는 마지막까지 나를 속여먹는구나. 내 가방에는 애초에 갈 생각도 없었던 쇼핑센터에서 사온, 살 계획도 없었던 스카프와 짜이차 몇 봉과 냉장고에 붙이는 타지마할 모양의 마그네틱이 몇 개 들어있었다. 3단 콤보로 속아 넘어갔다는 생각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거 뭐예요? 왜 시간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직원은 영수증을 보더니 미안하다며 다시 700원 정도를 돌려줬다. 싸늘해진 내 얼굴에 그는 머쓱해하고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는 내게 화를 내진 않았지만, “굿럭”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울에 돌아오는 비행기 . 문득 700 때문에 내가 그렇게 싸늘한 얼굴로 쏘아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 (물론 더워서, 여기저기서 속아서, 바가지 씌여서... 실크스카프는 2만원쯤은    분명해서. 여러 이유가 있긴 하지만.) 짐도  돌려받았고, 안전하게 다녀왔는데 말이다. 짜이차와 버터차도 실컷 먹었다. 이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줄곧 좋은 느낌들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서울에선 달랐다. 남에게 한 톨을 내어주면 열 톨을 털릴 것이며, 자리를 비우면 뒷통수를 맞을 것이며, 그러니까 손톱만큼도 속아선 안 된다고, 호구 잡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줄곧 습관처럼 분노가 쌓여 있었던 것 같다. 700원에 화난 얼굴을 했던 게 부끄러웠다.


마지막 장면이 '굿럭'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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