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르키 May 08. 2023

매일매일 야무지고 사치스러운 생일날처럼

하루하루 생일처럼 보내고 싶다. 

내 생일을 맞아 르미 언니와 학교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임신 37주에 접어들면서, 나는 가급적 멀리 외출하지 않는다. 아침엔 노곤해서 거실에 접이식 매트리스를 펼쳐두고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널브러져 있기만 하면 컨디션이 더 떨어질 것 같았다. 심기일전해 매트리스를 치우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방울토마토와 딸기, 루꼴라를 씻었다. 딸기바나나주스, 성시경 유튜브에서 봤던 브리치즈 파스타를 만들 생각이었다. 간단하게 냄비에 토마토 수프를 끓여 펜네도 넣었다. 구운 식빵도 곁들여야지.


남편은 동생 상견례로 어제 고향에 갔다가 오늘 오기로 했다. 배가 훌쩍 부른 나를 두고, 아침에 남편은 선뜻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나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연애 때부터 결혼하고 나서 까지 9년 동안 함께 생일을 보냈다. 평소에도 남편은 나를 귀한 공주님처럼, 어린 왕자의 유일한 장미처럼 대해준다. 남편이 말했다. "6월에 선물 사줘도 돼? 출산하고 옷 사줄게." 나는 남편의 처진 눈과 토실토실한 볼에 내 볼을 비비면서, '참 신통방통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 볼을 맞대면, 남편을 늘 감싸고 있는 좋은 느낌이 내게도 전해진다.


요 며칠은 누워있어도 숨이 차고 어깨가 결린다. 걸을 때도 양반처럼 느릿하고 뒤뚱뒤뚱한 팔자걸음이 되어간다. 마치 복대에 따뜻하고 폭신하고 무거운 돌을 넣고 언덕배기를 오르는 기분이다. 지난주에 아기는 2.9kg였으니까 오늘은 3kg쯤 됐으려나. 엄마는 "네가 2.6kg에 나왔는데! 이젠 언제든 나올 수 있어."라며 깜짝 놀란다. 임신 기간에 내 몸무게는 12~13kg쯤 늘어났다. 의사는 여기서 4~5kg쯤 더 쪄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찌우면 무릎이 몸무게를 받아 시큰거릴까 봐,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딱 하나씩만 먹기로 했다. 



생일잔치 시오시작

낮 1시 반, 학교 동생이 먼저 벨을 눌렀다. 동생 손에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이럴까 봐 아무것도 안 가져와도 된다고 말했는데, 너 마실 음료나 한 캔 가져오라고 말했는데... 그래도 마음 써줘서 고마웠다. '진짜 생일이구나.' 내가 좋아하는 재밌는 동생이다. "요즘 건강히 지내고 있어?" 물으면 "죽지 못해 살아요..."라며 더 큰 어둠(!)으로 화답해 준다. 늘 잘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블렌더에 딸기와 바나나, 우유를 갈았다. 동생이 배 고플 것 같아 우선 토마토 펜네와 식빵부터 내놓았다. '이걸로 배가 찰까?' 싶어서 식빵 6개를 구워 둘이서 나눠먹었다. (이게 발단이 되어 나중에 다들 음식에 치이고 말았다.)


2시 넘어서 르미언니도 도착했다. 언니가 동생에게 말했다. "너희 집처럼 편하게 있어~" 그 말에 웃음이 났다. 언니가 아기띠와 편지를 선물해 줬다. 얼마 전에 언니는 내게 어떤 육아용품이 필요한지 물었다. '지난달에도 언니한테 튼살크림을 받았는데...' 고마우면서도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었다. 나는 샐러드볼에 파스타 면과 방울토마토, 마늘, 루꼴라, 올리브오일을 넣고 버무렸다. 성시경 파스타, 왜 이렇게 간단하고 맛있지?


후식으로 에어프라이어에 사과 파이를 돌렸다. 음식을 몇 개 만들지 않았는데도 다들 배부르다고 했다. "딸기 바나나 주스를 두 잔이나 마셨어요." "눕고 싶어..." 남편은 저녁 7시쯤에 집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마침 시댁에서 도다리 회와 전복도 보내주셨으니 친구들도 같이 먹자고 했다. 친구들도 6시쯤까지는 있었다. 하지만 열흘 전 이사한 우리 집엔 아직 소파도 식탁도 없다. 등받이 없는 바닥에 방석 깔아놓고 친구들을 내내 앉혀두는 게 미안했다.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는 동생도 있어서, 친구들은 6시쯤에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저녁, 언니가 준 편지를 읽어봤다. 요즘 일본어를 배우는 언니는 수업 시간에 배웠다는 단어 '일기일회(一期一會)'를 써두었다. '일생에 단 한 번인 만남.' 그게 나와의 우정인 것 같다고 쓰여 있었다. 감동적인 말이었다. 법정스님의 책 『일기일회』를 읽은 적이 있었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자주 느꼈던 10대 시절의 나라면, 사랑과 우정으로 둘러싸여 살아가는 지금의 나를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사람 관계에 서툴던 나는, 친구 덕분에 친구로 성장하며 한 걸음씩 배워나간다.



새삼 떠오르는 고마운 마음

10대 때도 내 생일은 보통 날씨가 좋았다. 봄날씨에 한껏 들뜬 교실 애들이 초코파이를 쌓아 생일케이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아빠가 만들어줬던 떡케이크도 떠올랐다. 그해 아빠는 흰 쌀을 쪄서 둥글게 모양을 내고 검은콩으로 내 이름을 콕콕 박아주었다. 그때가 내 인생 최전성기(!)였기 때문에, 학교 애들이 미어터지도록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미처 초대하지 못한 옆반 애들도 놀러 왔던 바람에, 우리 집에 못 들어온 애들도 있었다. 창문 아래 담벼락에서 "생일 축하해~"라고 소리치던 녀석의 얼굴과 이름도 아직 생각난다.


올해 생일날에도 카톡으로 축하와 선물을 보내준 친구들이 있었다. 몇 년 동안은 코로나로 밖에 나가지도 못했고,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다. 사회생활도 '잠시 멈춤' 상태. 그런데도 나를 잊지 않고 축하해 준 사람들이 고맙다. 사실 나는 지난 3년 동안 내 생일을 축하해 준 사람들의 이름을 가끔씩 들여다본다. 상대는 까먹었을지 몰라도 나는 잊지 않는다. 선물을 보면서 "이건 OO이가 줬었지." 되새겨본다.


특히 지난 4월부터 최근 한 달 동안, 내 마음은 고마움과 기쁨으로 꽉 차 있었다. 주변으로부터 임신 축하와 선물을 많이 받았다. 아기 옷도 넘치도록 물려받았다. 참 앙증맞고 예쁜 옷들이었고, 패션쇼 하듯 하나하나 다 입혀보고 싶다. 선물을 쓸어보며 뱃속 아기에게 말도 건네본다. "우리 아가 참 복이 많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아, 엄마가 내게 해주던 말이지. "풀 많은 봄에 태어난 토끼띠 우리 딸 참 복도 많지." 그게 사실이든 무엇이든, 엄마의 소망과 바람이 담긴 말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실감한다. 나도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복 넘치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담아 말하고 있으니까.


저녁에 남편이 도착했다. 시댁에서 챙겨준 도다리회와 전복을 같이 먹었다. 결혼 전에 남편은, 자기랑 결혼하면 회와 과메기를 실컷 먹을 수 있다고 꼬드겼다. 회와 과메기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내겐 그 말이 참 반가웠다.


저녁 늦게 이모에게도 전화가 왔다. 어버이날을 맞아 이모는 할머니댁에 가 있었다. 그 덕에 할머니와도 통화했다. 40대에 첫 손녀인 나를 만나 젊은 할미가 됐던 우리 할머니, 80대에 드디어 증조할미가 된다. 수화기 너머에서 이모가 말했다. "너희 엄마가 나 산후조리 해줬잖아." 그랬구나. 이모가 첫 딸을 낳을 때 나는 중학생이어서 자세히는 몰랐다. 하지만 엄마가 베푼 것들 덕분에 여전히 이모는 고마움을 느끼고 그 고마움이 내게도 돌아온다. 그래서 새삼 엄마에게 고마웠다.


몸은 무겁지만 고마운 하루였다. 초등학교 생일파티처럼 요란스럽거나 떠들썩하지 않아도, 혼자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매일 이렇게 생일처럼 보내고 싶네.

이전 04화 제게도 인생 친구를 보내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