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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영 글쓰는한량 Jul 22. 2018

매일 그리고 씁니다.  

글 쓰는 한량의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나 봐요?'

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나 보다.  


진짜 그림에  '그' 자도 몰랐고, 한때 '미술'이라는 과목이 지구 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전공자분이나 좋아하는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ㅠㅠㅠ)


그랬던 내가 지금 매일 하루에 한 장씩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장'이라는 표현이 부끄러울 정도로 엽서 크기의 작은 수첩에 사물이나 풍경을 끄적대고 아이가 쓰다 남은 색연필, 집안 곳곳에 돌아다니는 수채화 물감,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사인펜으로 색을 칠하는, 그야말로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이다. (그림 잘 그리는 초등학생들 미안!!)


게다가 급한 성격 탓에 공들여 섬세하게 그리기보다 대충 슥슥슥슥, 마치 고양이가 세수를 하듯, 그렇게 그린다.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리는 짧게는 10분, 길게는 2~30분의 시간이 나에게는 아주 의미가 큰 무엇이 되어 버렸다.  

불과 100일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다니,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던 일이다.  


학창 시절, 다른 과목이 애써 올려놓은 점수를 '미술'이 왕장창 까먹을 때마다 내 신체의 모든 세포들은 날 선 그것이 되어 온몸의 통증으로 전해져 왔고, 그림에 대한 분노, 미술과목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술! 너 도대체 뭐니?


글을 매일 쓰다 보니 나를 표현하는 다양한 수단에 대해? 궁금증과 갈증, 호기심 등등이 생겼다. 그중 내 글을 조금 더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작은 그림 하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학창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시도는커녕 펜을 드는 것조차 싫었다. 

'그래! 그냥 내 캐릭터 하나 그려보자!'
'뭐 어때 나만 알고, 나만 갖고 있으면 되지!'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랬던 것이 점점 눈에 보이는 작은 물건, 읽었던 책, 인상 깊었던 드라마의 장면 등 내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하나씩 '그림'이라는, 평생 절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표현 수단'으로 남기게 되었다.


기록은 힘이 세다.


작은 '그림'을 그리고 나면 항상 몇 줄의  글을 남겼다. 그림을 그리면서 들었던 생각, 일종의 단상을 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림보다는 글이 훨씬 편했던 나이기에 애써 공을 들인 이 시간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싶었다. 마치 어린 시절 그림일기를 쓰듯 그렇게 글과 그림을 매일 기록했다.


한  50 여일이 지나자 학창 시절 분노에 치를 떨었던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평생 재미없고 꼴 보기 싫었던 '과목'이 신나는, 그것이 되는, 이상하고도 신기한 순간이었다.


매일 무언가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많다. 매일 감사 일기 쓰기, 다이어트 식단 쓰기, 만보를 걷고 기록하기, 읽은 책을 필사하기. 한가지 종목이기에 어쩌면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쓸 때도 많다. 하지만 그 기록이 쌓이고 쌓여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마어마한 힘이 된다. 못하던 것도 아주 조금은 잘하게 되고, 안 하던 것도 하게 된다.


기록은 이런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림을 매일 그리고 쓰는 이유는 뭘까? 매일 기록하다보니 어제보다 진짜진짜진짜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보게 된다. 그냥 그림만 그렸다면 어쩌면 알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함께 기록을 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횡재다. 난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그 시간을 기록하고, 글로 기억을 마음에 새긴 게 아닐까 싶다. 그랬더니 정말 조금씩이지만 선이 보이고, 색이 드러났다. 평생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무언가 한 가지를 정해 일정한 시기 동안 기록해보자'


하루 마신 물의 양도 좋고, 다이어트를 하는 분이라면 식단도 좋다. 새벽 기상을 하고 계신 분이라면 시간인증숏도 좋다. 그저 아무거나 딱 한 달 적어보자. 기록이 어느 정도 습관이 되면 그날 그날의 생각과 느낌, 하면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그날의 단상을 몇 자 남겨보자. 그럼 다음 기록할 때 부족한 면이나 더 나아가야 할 무엇이 또렷하게 보이기도 하고, 나만의 흩어졌던 생각들도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의 성장은 기록이다. 매일 꾸준히 단 하나의 무엇을 기록하다보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싫었던 것이  즐겁고 재미있는 '놀이'정도는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여러분의 성장하는 기록을 응원하는 글 쓰는 한량이었습니다.


p.s. 아주 비천한 수준의 그림입니다. 그저 기록의 힘이 얼마나 즐거운 것이지 보여드리기 위해 부끄럽지만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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