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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봄여기 Sep 11. 2024

문학을 전공한 이유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 아니면 이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읽는다

어렸을 땐 나의 이야기를 먼저 오픈하고 공유하는 것으로 관계를 맺었다.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먼저 상대에게 오픈했을 때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나를 어떻게 이해하고 생각하는지, 보고 판단하고 싶어서였다. 그때는 이해받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했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는 교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다. 내가 오픈한 나의 성장과정들은 때때로 나의 약점이 되어 나를 공격하거나 동정여론의 테마가 되어 불쌍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만들기도 했다. 완벽한 친구, 완벽한 연인, 영혼이 통하는 솔메이트를 평생 찾아다녔지만 사실 그런 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나는 ‘문학’에서 동류의 감정들을 느꼈다. 사람에게선 찾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완벽한 이해’ 혹은 ‘완벽한 공감’ 같은 것이 ‘문학’에 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또 어디쯤 서 있는지를 살피려고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읽는다.
우리는 이해하기 위해, 아니면 이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읽는다.
<독서의 역사> 중


<독서의 역사>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은 글자를 깨우치게 된 7살 이후부터 책뿐만 아니라 광고판, 신문, 잡지 등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읽고 나서부터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생겼다고 말한다. 쓰기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읽기”이며 “쓰지 않고도 사회는 존립”할 수 있지만 “읽지 않는 사회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위의 책, p.15)은 자명한 진리이자 지금까지 독서가 필요한 절대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렇다면 문학은 독서의 영역일까, 쓰기의 영역일까.

문학의 사전적 의미는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독서라는 행위가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바로 ‘문학’이라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이 ‘내가 읽는 이유’가 아닌 ‘문학을 전공한 이유’가 된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이다.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이 언어로 표현된 모든 예술작품이 바로 문학이고 나는 이러한 언어로 만들어진 좋은 문학작품들을 읽으면서 불우하고 외로웠던,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유년 시절부터 경제적 궁핍 때문에 중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했던 청소년기 시절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대학 강의를 들었던 청년기의 삶을 버틸 수 있었고, 점점 더 나은 ‘나’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내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없었다면 가난의 처절함은 나만이 겪는 일이라고 좌절했을 것이고, 강경애의 “인간문제“를 읽지 않았다면 이 세상의 불평등이 ‘계급’에서 온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고, 최인훈의 ‘광장’을 읽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참혹한 역사를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기를 수 없었을테고, 전영택의 '화수분'을 읽지 않았다면 처절한 가난 속에서도 선량함을 바라고 지지하는 사랑의 감정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더 많은 작가들과 더 많은 이야기들을 읽었지만 이 몇 작품들만 나열한 것은 유년 시절 나에게 사회와 계급, 사랑과 우정, 가난과 불평등에 대해서 대표적으로 알려준 인상 깊었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부모는 나를 잘 키우지 못했지만 이 작품들을 나를 열심히 키우고 성장시켰다.


문학은 내게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근육을 기르게 했다. 타인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이 세계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고 더 나아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지금 내게 밥을 먹게 해 주고, 작은 집을 구매할 수 있게 도와주고, 네 마리 고양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경제적 생활이 가능한 ’IT 기획자‘로서의 삶까지 이르게 하였다. 어떻게 ‘언어로 된 예술 작품’이 밥도 먹게 해 주고 집도 사게 해 주었냐고? 바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연재를 시작했다.


내가 문학을 전공한 이유는 ‘잘’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물려받을 재산도, 든든한 부모도 아무것도 없는 내가 돈도 잘 벌고 일도 잘하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선량한 신념과 사랑이 변질되지 않도록 나를 잘 지켜내면서 이 세계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는 살아남았고 어느덧 마흔 중반의 삶을 살아내고 있고 앞으로도 갑작스러운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읽고 쓰면서 IT 기획자로 돈도 많이 벌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IT기획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이 책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가 살기 위해 문학을 전공하고 어떻게 IT기획자로 승승장구하며 지금까지 잘 그것도 꽤? 많이 벌면서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안돼’, ‘나는 받쳐주는 부모가 없어’, ‘나는 의지가 약해’, ‘나는 가진 게 없어’,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어’, ‘나는 아직 뭘 하고 싶고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갈 길을 잃었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뭔가 하고 싶은데 경제적으로 너무 가난해' 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생 이런 질문들과 싸워온 나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약간이라도 이해받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문학이 나를 살렸고, 나를 키워서 IT 기획자로 밥도 벌어먹게 살게 해주고 있으니 당신에게도 문학이 곧 그런 희망 혹은 위로 혹은 이해가 되길 바라면서 매주 수요일 다양한 이야기를 써 내려갈 예정이니 많이들 응원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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