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말고 조금만 더의 노력으로.
전 글에서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 좋은 기획자가 되기 위한 근본적인 자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노력’이란 말은 지극히 상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라 다소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 살아가는 것도 노력이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도 노력이요, 생계를 위해 활동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노력이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양한 노력 속에 놓여있고, 다양한 노력을 하며 살고 있다. 우리가 하는 소소한 행위부터 생존이나 목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행위까지 노력의 범주에 넣어 본다면 노력은 크게 두 가지로 정의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존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혹은 최선을 다해서 하는 자아실현 노력이다.
전자인 이 세계에서 자신이 존재하기 위한 노력은 모든 생계 활동 및 자아영위 활동을 포함한다.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고 아침 혹은 저녁 식사를 챙겨 먹고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하고 퇴근해서 집에서 또 다른 활동을 하는 모든 것들 또한 생계를 위한 노력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노력의 범주로 보지 않고 생존을 위한 당연한 활동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생존을 위한 이런 근본적인 활동조차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노력 또한 마이크로 단위의 노력으로 보고 생존 노력 범주로 정의하기로 했다. 반면 자아실현 노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노력의 형태는 아니지만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활동해야 하는 노력으로 각자의 의지와 능력을 동반한다. 살면서 모두가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있는 그대로 큰 변화 없이 살기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아실현 노력은 우리가 직업을 가지고 그 직업을 통해 무언가를 실현하거나 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어떤 특정한 목표를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노력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노력‘과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을 혼동한다. 작년에 가르쳤던 두 명의 기획자에게서 나는 자신들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한 명은 내 기대치가 높아서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하였고, 다른 한 명은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비교해서 상처받았다고 했다. 나 또한 그들의 말을 듣고 약간 상처받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생각하다 ‘노력’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부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노력‘은 지극히 상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나도 노력했다”라는 감정적 호소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노력의 기준치라는 것이 저마다 다르고 노력의 강도도 다르기 때문에 나는 노력의 결과물인 ‘수치’로 상대의 노력을 판단하는 편이다. 기획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던 예전의 내가 업무 시간 외 다른 시간을 사용해 업무에 필요한 스킬을 발전시켰던 것처럼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발전시키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얼마나 투자하느냐, 내가 거기에 얼마나 집중하느냐가 그 사람의 노력에 대한 결과를 좌우한다. 여기에 상대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노력의 결과물에 대한 퀄리티 즉 질적인 수준은 어떤 사람이 판단해도 좋아야 한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해야 한다.
나의 기대치만큼 노력할 수 없다고 했던 그 기획자는(이하 K로 명명) 생존을 위한 노력은 정말 성실히 수행했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했고, 간혹 1-2분 지각은 했어도 매일 같이 왕복 4시간에 걸친 긴긴 장거리를 지하철 혹은 자동차 안에서 보내는 것에 크게 스트레스받아하지 않았다. 그가 스트레스받았던 것은 업무에 대한 낮은 이해도와 사람들과의 관계였는데 그와 같이 투입된 리더 또한 내가 뽑은 사람이어서 나는 그 리더를 통해 K에 대한 업무스킬부족, 업무이해도 낮음, 관계부적응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적은 불만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말을 모두 믿을 순 없었지만 업무이해도가 현저히 낮은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밤마다 그가 프로젝트에 민폐를 끼치지 못하도록 기획서를 작성해 주고 손봐주고 뒤에서 서포트했다. 그 리더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나에게 더 강력한 불만을 토로하지 못했지만 프로젝트 기간 동안 K는 팀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나는 K를 프로젝트에 투입시키기 위해 5개월을 준비시켰다. 그에게 여러 차례 노력의 방법과 업무에 필요한 정보들을 공유했고 기획자로서 K가 갖춰야 태도에 대해서도 귀에 피가 나도록 잔소리했던 것 같다. 그는 게으른 스타일이었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성향이 강했으며, 머리는 좋았는데 주의력 결핍이 심해서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놓이게 되면 그것을 알기 위해 더 노력하기보다는 회피해 버리는 성향에 가까웠다. 그렇다 보니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현저히 떨어졌는데 1:1 집중 과외식으로 알려주면 잘 알았지만 스스로 뭔가를 알아내서 제안하고 발전시켜서 만들어야 하는 창의적인 활동은 어려워했다. 승부욕도 없어서 자신이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체념하고 포기하는 스타일이고 명확한 가이드로 시키는 일이나 반복되는 업무는 안정적으로 잘 해냈다. 일반 디자인 툴이나 UI툴에 대한 관심은 많아서 다양한 툴을 다룰 줄 안다는 큰 장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아실현 노력에 대한 시간 투자 및 의지력 부족으로 발전하고 성공하는 대신 돈을 적게 받아도 큰 스트레스 없는 업무를 하고 싶다고 해서 그는 결국 기획자가 되지 못했다. 삶을 영위해야 하는 최소한의 활동(출퇴근, 거주를 위한 생계비 벌기)을 위한 생존 노력은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지만 여가 시간에 UIUX를 공부한다거나 요즘 트렌드를 찾아본다거나 UI설계에 필요한 분석을 한다거나 하는 식의 공부를 하기 위한 자아실현 노력은 버겁다는 것이다. 내가 K에게 기대했던 것은 자아실현 노력이었으므로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 못 따라오겠다고 한 K의의 말은 그의 입장에서는 사실 인 셈이고 나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된다. 자아실현 노력 없이 어떻게 기획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생존 노력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K와는 달리 Y는 생존을 위해 했던 노력들을 나에게 자아실현의 노력이라고 주장한 케이스다. 프리랜서 기획자의 경우 프로젝트가 바뀔 때마다 사무실 장소도 변경되어서 집과 먼 곳이 될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이 멀어도 그 일이 필요하고 경력에 도움이 된다면 출퇴근 시간이 왕복 3시간 4시간이 걸려도 출근을 결정한다. 출퇴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업무의 스킬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존 노력의 범주인데 이 조차도 힘겹고 버거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당혹스러워진다. 보험권 프로젝트 진행 시 당시 UI 팀에는 파주에서 오는 사람, 분당에서 오는 사람, 일산에서 오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는데 Y는 프로젝트 룸과 그다지 멀지 않은 지하철로 20분 거리에 집이 있었다. 우리 중에 집이 제일 가까웠는데 Y가 집이 먼 사람들보다 일찍 와 있었던 순간은 손에 꼽는다. 대부분 9시에 맞춰왔는데 그녀의 업무 성과가 좋았다면 사실 9시에 맞춰오든 몇 분씩 지각을 하든 상관이 없다. 내가 못마땅했던 부분은 기획서 마감도 지키지 못하고 지시한 업무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데 일찍 와서 업무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퇴근 시간 이후 남아서 낮에 못한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Y와 이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Y는 꽤 억울해하면서 ‘아침마다 늦지 않으려고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을 타고 매일 출근하는 것도 노력‘ 이라고 나에게 어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산이나 파주, 분당에서 매일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Y는 그것을 비교당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Y는 생존을 위한 노력도 버거워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그녀의 입장에선 매일 문제없이 출퇴근하는 것이 Y최선의 노력이었겠지만 그 보다 더 멀리, 더 오래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나의 기준에서 그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생존 노력의 수준일 뿐이었다. 그런 Y에게 자아실현 노력을 기대했으니 Y는 여러모로 힘들고 지쳤을 것이다. Y 또한 K와 마찬가지로 기획자는 되지 못했다. 둘은 자아실현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같은 이유로 기획자가 되기 어려웠지만 Y는 생존 노력조차도 겨우 했다는 점에서 K와 차이가 있다.
O는 작년 가을부터 나에게 기획을 배우기 시작한 친구인데 Y나 K에 비해서 늦게 시작해 오랫동안 준비시키고 가르치지 못한 상황에서 프로젝트에 투입시킨 적이 있다. 한 달 정도 속성으로 기획의 핵심만 알려주고 보호해 줄 팀원도 없이 혼자 프로젝트에 보냈는데 일산에서 여의도까지 매일 1시간 30분 거리를 출퇴근하며 두 달여간 다녔다. Y나 K처럼 일대일로 마크해서 가르쳐 준 적도 없고 내가 팀장으로 보호해주지도 못한 상황에서 O는 처음 해보는 업무를 혼자서 진행해야 했다. 나는 틈틈이 O가 검토를 요청할 때마다 그녀의 기획서를 봐주곤 했는데 문서를 볼 때마다 O가 어느 정도 시간을 들였고, 얼마나 야근을 했을지 문서상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면 멋쩍게 웃으며 ‘며칠 야근했어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출퇴근하는 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힘든데, 누구나 하는 것 아니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O를 보면 나도 모르게 Y와 비교했던 것도 사실이다.
같은 나이대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획 경력이 부족한 O는 내가 준 문서들도 꼼꼼히 읽고 분석해서 자기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여 기획서를 만들곤 했는데 이는 기획자가 되기 위한 필수 능력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능력이다. 문서를 볼 때마다 O가 어디서 이 설계를 가져왔는지 어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었다. 기발하고 통통 튀는 아이디어를 갑작스럽게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스스로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좋은 기획서를 교과서 삼아 비슷하게 만들어보고 거기에 몇 개의 아이디어를 얹어 디밸롭 해보는 연습은 뛰어난 기획자가 되기 위한 발판이 되어줄 좋은 훈련법이다. O는 Y처럼 감성적이고 통통 튀는 아이디어가 있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꾸준한 자아실현 노력과 기본적인 생존 노력으로 단시간 내 기획서 작성 스킬이 향상된 친구다. K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회피하고 압박을 느껴 포기하는 편이라면 O는 똑같은 두려움과 압박 속에서도 회피하지 않고 좀 더 나은 기획서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집중하고 집중해서 자신이 원하는 퀄리티가 나올 때까지 기획서를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모든 노력은 기획서에 오롯이 드러난다.
O는 지금까지도 기획자로서 열심히 일하며 배우고 있다. K와 Y는 기획자가 되지 못했지만 O는 생존 노력을 기본으로 숙련된 기획자로서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자아실현 노력을 지금까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생존 노력은 우리가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노력으로 필수적인 것이지만 자아실현의 노력은 자신이 목표하고 욕망하는 것이 있다면 필수 선택의 영역이 될 수 있다. 모두가 자아실현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목적성을 가지고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그 목표에 대한 절실함으로 치열한 자아실현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김예지 선수가 JTBC 뉴스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25미터 사격을 제대로 배우고 나니 점수가 잘 나왔고 조금만 더 하면 세계 선수권 대회를 나갈 수 있다 생각했고 조금만 더 하면 올림픽도 나갈 수 있겠구나 생각해서 계속해서 조금만 더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노력했다는 것이다. Y도 K도 기획자로서 완전히 자질이 없던 친구들은 아니었다. Y는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를 지닌 친구로 기획자에게 역시나 중요한 창의성이 잠재해 있었고, 심성도 착해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반면 K는 창의성은 부족했지만 시키는 일 하나는 완벽하게 처리해 내는 능력과 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요즘처럼 다양한 UI툴을 사용하는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기획자는 되지 못했지만 오히려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O는 기획자가 되었다. O에게는 있지만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 한 끗 차이로 확연하게 달라지는 그 ‘조금만 더’ 에 대한 노력.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해 사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조금만 더, 숨이 가쁘게 차오르는 그 순간에 조금 더 달리면 달려지는 것처럼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조금만 더’ 나아가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추구했던, 그 목표에 도달했는지 안 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