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정방문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생각만 해도 향수를 느끼고 아련해지기도 하는 추억의 음식이나 장소, 혹은 향기, 바람결, 음악 등을 만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오래전 한 장애인 가정으로 방문상담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신체적 제약이 큰 중증 신체장애인 가정은 전화 상담이나 가정방문을 통해 지원하기도 했는데, 그날 내가 방문한 곳은 1급 뇌병변 장애인 소년이 할머니와 살고 있는 조손가정이었다. 여러 사정상 한 번도 서비스 연결이 안 된 가정이라 해서 마음먹고 나간 가정방문상담이었다.
함바집이 모여 있는 공사장 근처, 허름한 무허가 주택 한 칸. 서울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무허가 주거였다. 지번이 불분명해 파출소에 들러 관내지도를 보며 문의한 끝에 한참이 걸려 간신히 찾아간 집은 아주 작았다.
엉성한 나무 문을 두드리니 머리에 수건을 쓴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복지기관에서 왔다고 인사드리자 반가워하면서도 어렵게 첫 말씀을 꺼내셨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대접할 게 없어서..."였다.
늘 방안에서만 생활하는 손자(장애가 있는 클라이언트)에게는 내가 첫 외부손님이라며, 할머니는 집이 누추하다는 말씀을 반복하셨다. 마치 내 눈치를 살피시는 듯했다.
방문객이 거의 없었을 듯한,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작은 재래식 부엌과 단칸방이 전부인 집. 전후시대를 그린 소설 속 장면이나 드라마 세트 같은 풍경을 그날 처음 보았기에 낯설기도 했다.
어색함을 깬 것은 소년이었다. 발음이 많이 어눌하지만 성격이 밝고 낯가림이 없어 보이는 소년은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벽을 의지해 간신히 기대앉은 채 불편한 팔로 방바닥을 손뼉 치듯 두드리며 웃음으로 나를 맞았다. 언어장애가 심한 편인 손자의 말을 제법 잘 알아듣는 내 모습에 할머니는 그제야 부엌에서 커피를 가져와 권하셨다.
작은 소반에 놓인 것은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이 빠진 도자기잔과 거기 반쯤 담긴 믹스커피가 전부였다. 소반을 내려놓는 할머니의 때 낀 손톱은 뭉툭했고 손은 거칠었다. 함바집에서 일을 거들며 아픈 손자를 돌보아오신 세월이 두 손에 드러나 있었다.
평소 결벽증이 있는 나였지만 할머니의 손을 보는 순간, 무언가 속에서 치밀었다. 그 믹스커피 한 잔에 얼마나 귀한 마음이 담겨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주저 없이 손을 내밀어 커피를 받아 들었다.
감사인사를 하고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에 긴장을 풀고 편안해지던 할머니의 얼굴과 그 소년의 환한 웃음소리. 그저 누군가 아는 체해주고 관심 보여준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표정이 달라지던 두 사람의 모습. "커피가 맛있네요." 너스레를 떨던 내 목소리.
작은 공간을 채우던 따스한 분위기.
미지근해도 맛있었던 커피의 맛과 더불어 아직도 생생한 기억이다.
그날 그 순간에, 내 좁은 세계관을 둘러싸고 있던 고정관념의 벽이 조금은 더 그분들을 향해 낮아지고, 문이 열렸다.
한 소심한 사회복지사의 시선이 넓어지는 순간을 함께 공유한 조손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그날의 커피믹스 한 잔이 먼저 생각난다. 그 집에서는 가장 귀했을 이 빠진 잔에 담긴 커피믹스는 할머니의 손자사랑을 전하며 그 특별한 순간을 관장하는 다부진 장수 같았으니까.
후일담이지만, 나중에 내가 결혼하고 신혼 초 살았던 아파트가 바로 그 가족이 살던 동네 옆이었다. 몇 년 사이 주변이 전부 대단지 아파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고받을 줄 알던 할머니와 소년은 어디로 옮기셨을까. 어디든 조금은 더 나은 환경으로 옮기셨기를, 그 후로는 가까이 교류하는 이들이 있는 삶이었기를 바랐다. 나는 그새 직장을 옮겼지만 꽤 오랫동안 소식이 궁금했다.
활자중독자. 책과 차(茶)의 지혜를 탐구하는 온현입니다. 글이 지닌 치유와 위로의 힘을 나누고 싶어 브런치를 시작합니다. 주로 일상을 담은 에세이와 시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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