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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트로이메라이

나 자신을 성찰하는

by stellaㅡ별꽃 May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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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 쾅쾅쾅! 우르릉! 번쩍! 우르르르릉! 쾅쾅! 촤아악!'

하늘은 큰북을 내리치다 심벌즈로 분위기를 바꾸는가 싶더니 사정없이 드럼을 두드린다. 순간 번쩍 번개가 시공을 가르고 그 사이로 빗줄기가 바람을 업고 사납게 달려다.  창문 앞에 나뭇잎 하나  '툭' 다.


예가체프 향이 코끝에 스미고 밖의 소음이 무색할 만큼 아름다운 선율에 눈을 감는다. 풀피리 만들어 불던 내 고향 푸른 언덕, 물장구치던 시냇가, 꽃지게에 딸을 태우고 걷는 병약한 아버지, 깔깔거리던 오 남매, 뽕나무 밭이 보이는 사랑채 쪽문, 옆집 희옥이네 감나무,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신작로 나는 유년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마른땅에 빗물이 스미듯 잔잔히 마음을 적셔오는 '어린이 정경' 중 제7곡 트로이메라이.   

연인 클라라에게 가끔 어린아이 같다는 말을 듣고 어린 시절을 상하며 작곡했다는 슈만의 놀랍도록 아름답고 평온한 곡이다.


사람마다 어떤 단어, 어떤 노래, 어떤 선율, 또는 어떤 음식에서 느껴지는 고유한  정서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데  음악으로 치면 수많은 곡 중 유독 마음을 사로잡는  나의 최애청곡  하나가 바로 트로이메라이다. 어느 땐 밤늦도록  팬플릇으로 연주하는 여름 비와 반복해 듣기도 한다.



며칠 전 지인과 점심식사 후 어쩌다 찾은 카페가 있다.  갤러리처럼 정갈한 내부와 친절한 카페 주인, 그리고  그윽한 케냐 향, 벽에 걸린 클림트의 키스, 창밖 매실밭 푸른 풍경이 참 예뻤다. 그땐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보슬비가 예쁘게 내렸다.


그 카페를 다시 찾았다. 지난번 '공감과 소통'이란 주제로 글을 올렸다이틀 만에 내린 적이 있다. 평상시 쓰던 글이 아니니 불편하기도 했고 내가 다룰 주제도 못 되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놀라운 건 몇몇 지인이 자기 이야기를 쓴 거냐며 조심스레 물어왔다는 거다.  


구독자 중 지인도 몇 있는데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 글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난 당황스러웠다. 불현듯 정작 오해하기 딱' 이겠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내려야겠구나 싶었다. 글이란 게 소설이나 동화가 아닌 다음에야 없는 이야기를 지어 낼 수 없으니 과거의 사실이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다수의 사건에 감정을 대입해 쓰게 마련이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면 다른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도 결국은 나 자신을 성찰하는 시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 글을 풀어내기도 전에 누군가 읽고 아팠던 모양이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거나 혹은 주변에 그러한 사람이 있을 때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진다는 당연한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지만  제삼자를 통해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언니! 어쩜 우리 남편이랑 똑같냐.  진짜 글 읽는데 공감도 되면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거 있지. 비슷한 사람들이 진짜 많은가 봐. 근데 언니는 이런 글도 좋은데 그냥 예쁜 글이 어울려. 세파에 찌든 우리들을 마구마구 힐링시켜줘야 한다고"


은 내렸지만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와의 공감과 소통이 이루어진 걸까. 하늘은 더 사나워졌고 카페에서 연필로  열심히 낙서하던(그림인데 내 눈엔 낙서처럼 보였다) 남자는 독백일까.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하늘도 땅도 바다도 땅속도 멀쩡한 데가 없는 참 뭣 같은 시절이야.  안 그래요 사장님?"

 칠 때를 기다려보지만 점 폭우로 변한다. 케냐 한잔을 더 주문한다. 카페인 과다 흡입에 손이 떨릴 무렵 빗줄기는 잦아들었다.


'다들 아프지 말아요.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자신을 안아주세요.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아프게 할 마음이 없고 그럴만한 시간도 내겐 없답니다.'


내 곁엔 반려견 별이  곤히 잠들고 내 귀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의 평온한 선율이 흐른다. 여고시절 교정의 버드나무 아래 벤치에서 친구 선희랑 수다 떨던 시간이 달려온다. 지금은 더 바랄 게 없는 사색의 시간이고 늦은 밤 두서없는 낙서다.

#사진ㅡ별꽃

#나만의공간발견

#카페여행

#마음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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