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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시골 편지 11화

쪽배 타고 떠나는 여름

by stellaㅡ별꽃

벌레의 울음소리에 밤은 침묵을 깬다. 못다 한 말들을 목젖 아래까지 꾹꾹 눌러 담아 두었다 뒤늦게 소나기로 쏟아내는 여름의 저항은 거세다. 계절의 초입을 이미 알아 채 버린 풀벌레는 기세에 눌리지 않고 새벽 밑까지 울어댔다.


쇼스타코비치 왈츠 2번이 새벽을 부채질하고 추적이는 빗소리에 뜨거운 커피 한잔을 내려 창가에 선다. 벌컥 들이킨 한 모금에 목젖은 쪼그라들고 위장은 경계태세를 취한다.


새벽밥을 지어두고 '부릉' 시동을 켠다. 런닝셔츠 경비아저씨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이 새벽에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짚 앞 은행나뭇잎은 바람을 핑계 삼아 '투두두둑' 빗물을 털어 차 앞 유리창에 뿌린다.

시절은 두 얼굴로 나뉘어 각기 른 색을 칠하고 몸과 마음을 지척에 두고 지내던 지인들은 온텍트 세상으로 사라졌다. 떠나야 할 것들은 집요하게 주변을 맴돌고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은 맥없이 떠나간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 두 물이 합쳐져 흐르는 두물머리는, 사계절을 익히기에도, 맥없이 앉아 멍 때리기에도 그만이다. 특히나 비 내리는 날 강가를 주변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노라면 세상사 부질없음에 녹적지근 했던 마음도 풀어지는 까닭이다.

사람 키높이만큼 솟아오른 꽃대 사이에 핀 연꽃은 퍼붓는 비에도 고결함을 잃지 않는다. 왼쪽 다리를 곧추세운 두루미가 운무 속으로 훨훨 날아르고 우산을 받쳐 쓴 남녀 한쌍이 호젓한 산책을 즐긴다.


떠날 때와 멈출 때를 모르는 아둔한 인생이나 서성이는 계절은 닮았다. 억지로 등을 떠밀어서라도 보내고 싶은 간과 붙잡히지 않는 시간의 현재에 묶여 있다.


내린 비에 더욱 선명하게 제 색을 드러낸 쪽배는 나루터를 지킨다. 하나, 둘 떠날 채비를 하며 나루터로 다가오는 여름, 그중 매미는 숭고한 죽음을 택할 것이고, 고추잠자리는 수천 수만 번의 날갯짓으로 다른 계절을 유혹하느라 여념이 없을 테다.

프리랜서로 일하던 큰아들이 작업실을 얻어 완전히 독립해서 나가고, 막내아들 역시 프리랜서로 립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껏 지내온 시간을 나누어 대입해보면,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펜데믹 이후 지금까지 아이들과 함께 했던 행복 농축 시절 같다.


주말엔 특별히 외출할 일 없으면 매끼 다른 음식을 준비는데, 그 시간이 말 설렜다. 넷플릭스 영화를 같이 고, 동물의 숲에서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게임을 같이 즐기며 편한 시절이지만 우리 방식대로 행복을 나누었다.


때가 되어 품을 떠나는 자식도, 섭리 따라 바뀌는 절기도 가고 옴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운무 속에서도 제갈길을 아는 쪽배는 여름과 함께 우리들의 시절도 함께 싣고 떠날 것이다. 잔물결을 타고 놀던 새 한 마리가 두 다리에 불끈 힘을 주며 날아오른다. 출렁이는 물결 따라 이미 계절은 저만치서 동그라미를 그다. 건강, 여유, 웃음, 행복이 가득 찬 보따리를 서둘러 채워 쪽배에 함께 실려 보낸다.

초계 과일 냉면(초계국수를 응용해 만들어 봄)

#사진ㅡ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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