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회사에 다닐 당시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투자자 및 주관사로 사업 추진한 적이 있어서 직접 경험해보았기에 펜타에 대한 애정이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업의 수익구조와 여러 중요한 내용들도 꽤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 펜타포트의 주관사를 입찰을 통해 선정하였고, 그 결과 펜타와 국 내 락 페스티벌을 최초로 만들었던 예스컴이 탈락했다는 기사를 접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3년-개인적으로 라인업이 가장 좋았었던 해였고, 이때 회사에서 펜타에 직접투자를 했었음
1999년 7월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이라는 이름 개최되었습니다.
‘딥 퍼플’,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프로디지’ ,‘드림 시어터’ 등 세계적 밴드들을 참여시켜 국내 최초 유료 야외 록 축제로 만든 회사가 예스컴입니다. 초호화 라인업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감전 등 안전문제로 첫날 행사를 접었으며, 당시 발길을 돌린 관람객은 2만 6,000명 정도로 추산되었습니다. 99년도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숫자입니다. 그 당시 예스컴의 윤창중 대표님은 당시 돈으로 13억 원의 손해를 보았고, 이듬해 제2회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로 재기를 노렸으나 티켓 판매가 저조해 결국 열리지 못하면서 명맥이 끊겼습니다. 그러다 6년 뒤 2006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활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출생의 과정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쨌든 예스컴이라는 공연기획사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펜타포트는 인천에 자리 잡고 인천시의 전폭적인 지지로 민관 협업의 모델로 유지해오고 있었으나, 관의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불구하고, 펜타포트의 설립자라는 이유로 수의계약으로 13년간 이어온 부분이 도마 위에 올라 결국 공모를 통한 주관사 선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입찰의 결과 예스컴이 탈락하면서 길었던
펜타의 한 세대가 마감한 것
으로 보입니다.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주관사로 바뀐 펜타의 또 다른 시작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사실 그 보다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저자(좌)와 함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아버지 윤창중 대표(우)
펜타포트를 친자식처럼 생각했던 예스컴 윤창중 대표의
"50년 이상 이어지는 페스티벌을 만들겠다"
는 포부는 이제 인천시로 공이 넘어갔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기획해 탄생시켰으나, 개인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많이 버거웠고, 지자체와의 협업은 윤 대표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인천시가 오랫동안 이어가는 페스티벌로 만들기 위해서 더 적극적으로 외부 전문가들을 뽑고, 육성해서 직접 키를 잡고 가야 할 것입니다. 외부 행사 용역의 공고를 통해 협찬 유치를 조건에 걸고 하는 식의 방법으로는 펜타포트의 마지막 말로가 너무 뻔하게 예상됩니다. 인천시가 그간의 노력과 투자로 잘 만들어놓은 이 콘텐츠는 단순한 지자체의 행사 용역 사업과는 다른 콘텐츠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락 음악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단어들이 공무원, 관에서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간 대부분의 마니아들은 좋았던 싫었던 예스컴이라는 공연 콘텐츠 회사가 있기 때문에 그래도 관 행사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었는데, 이젠 입찰을 통해 주관/운영 회사를 선정해(2019년 주관사 경기일보) 진행을 하니 주최, 주관사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를 더더욱 쇄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했던 정치인들의 무대 인사말과 같은 것들은 앞으로 더 과감히 없애고, 문화콘텐츠 기업 CJ E&M이 주최하는 지산 락 페스티벌보다 더 형식을 파괴하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안 그래도 감소하는 락 페스티벌 인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다른 행사 용역 사업이 아닌 소비자와 기업에게 콘텐츠에 대한 평가를 받아 그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어야 하는 가장 선봉에 있는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펜타포트의 지향점이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처럼 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