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곱씹고 삼켜서 소화해야 하는 이유

by 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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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칼로레아 vs 수능시험

바칼로레아(Baccalauréat), 프랑스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봐야 하는 시험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수능시험과 같은 성격의 시험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나폴레옹 때 만들어져 무려 200년 넘게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는 시험인 바칼로레아는 필수 과목인 철학 시험을 시작으로 선택에 따라 9~12과목의 시험을 대략 1주일에 걸쳐 치게 된다. 전 과목이 주관식으로 구술 및 기술시험으로 치러진다. 우리나라 수능이 상대평가인데 반해 바칼로레아는 절대평가다. 총 20점 중 10점 이상이면 합격이며 프랑스 내 모든 국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바칼로레아 시험 중에 가장 유명하고 주목받는 것은 단연 철학 과목이다. 총 세 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4시간 동안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게 된다.


철학 문제로는 주로 그 시대의 이슈를 다룬다. 예를 들면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가?’라는 문제가 나왔다. 프랑스 정치인들의 온갖 비리와 탈세로 시끄러웠던 2013년에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도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나왔다. 바칼로레아가 끝나고 그 문제가 공개되면 프랑스 사람들은 카페 같은 곳에 모여 그 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유명인사나 정치인들은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수능을 준비한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이 문제를 풀라고 던져주면 아마 앞이 깜깜할지도 모르겠다. 정해진 정답을 찾는 수능시험과는 다르게 바칼로레아는 자신의 생각을 쓰는 시험이고 우리나라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는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대안으로 바칼로레아가 종종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교육시스템을 바꾸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학생들이 바칼로레아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학생 때부터 책을 많이 읽고 그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럽게 문화에 녹아 있다. 독서율 통계상으로 보면 우리나라와 크게 비슷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서점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고 중소 서점들이 적은 우리나라와 달리 곳곳에 크고 작은 서점들이 많으며 항상 사람들로 북적인다. 학교나 회사에서도 쉬는 시간이면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지하철을 타면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책을 본다. 또한 서로 작가와 책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2014년에는 일명 ‘아마존 법’ 이라는 것을 제정하여 대형 인터넷 서점의 할인 및 무료배송을 제한하여 독립서점의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아이들도 자라면서 자연스레 책과 가까워진다. 크리스마스나 기념일에도 책을 선물로 자주 주고받는다고 하는 프랑스인들의 책 사랑은 남다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가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면 자리에 앉아 자주 책을 꺼내어 본다. 그러다 한 번쯤 주위를 둘러보면 도무지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발 디딜 틈 없는 꽉 찬 지하철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의 시간에도 책을 읽는 사람이 오직 혼자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모두들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다. 그러다가 가끔 책을 읽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 책 표지를 힐끔 거리기도 한다. 한 번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 사람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다름에서 생각의 차이가 나온다. 항상 책을 가까이하며 그 내용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는 사람과, 스마트폰에 빠져 가벼운 영상과 이미지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깊은 생각과 사고를 할지는 너무나 뻔하다.


비판적 책 읽기란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의 유일한 독서습관은, 질문을 하며 책을 읽는 것이에요. 특히 철학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철학자의 주장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저자에게 질문을 합니다. 이러한 저의 독서 습관은 강의 스타일에도 연결되는데, 저는 항상 학생들에게 정치철학 관련 도서를 볼 때 능동적으로 읽으라고 권해요. 단순히 철학자의 주장을 기억하기 위해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2천 년 전의 철학자일지라도 그가 우리 곁에 살아 있다고 가정을 하고 질문을 하며 읽으라고 하죠. 책은 작가와의 대화로 초대하는 일종의 초대장이에요.”


질문을 한다는 것은 비판적 책 읽기를 말한다. 비판적 책 읽기를 통해서 질문이 생긴다. 질문은 곧 생각을 하는 힘과 연결된다. 책의 내용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주장과 생각에 ‘왜’라는 물음을 가지는 능동적 독서를 해야 한다. ‘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책을 읽게 되면 저자의 주장에 의문을 가졌다가 저자에게 설득되기도 하고, 혹은 저자가 틀렸다는 자신의 생각이 굳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그 책을 끝내고 나면 생각의 확장이 일어나고 생각의 힘이 길러진다. 생각의 힘은 곧 자신의 신념과 철학으로 자라난다.


독서 선진국에서는 서로 이야기를 하며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독서클럽이 대단히 보편화되어 있다. 미국에는 약 75만 개의 독서클럽이 있으며 세계 최고의 독서율을 자랑하는 스웨덴은 인구의 약 3분의 1 정도가 하나 이상의 독서 클럽에 가입되어 있다고 한다.


독서클럽에 참석해 보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 하지만 누군가는 그 책에 감동을 받고 누군가는 그 책을 욕한다. 모두 훌륭하다고 말한 책도 그 속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과 느낀 것이 많이 다르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이야기하면 그 책을 여러 번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렇게 자신과 다른 생각을 마주했을 때 머릿속에 자연스레 질문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 자신은 왜 이렇게 느꼈는지 와 같은 생각들을 하나하나 하게 된다.


독서모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의 힘을 키우는 비판적 독서를 할 수 있다. 바로 책을 읽고 나서 그것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써 보는 것이다. 바로 독서평이다. 학생 시절부터 독후감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독서평을 쓰는 것을 굉장히 어렵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가슴을 울리거나 격하게 공감 가는 문장, 혹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글귀가 있으면 표시를 해 놓는다. 책 모퉁이를 접어도 좋고, 포스트잇을 풑이거나 아무 종이나 찢어 껴 놓아도 좋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표시를 해 높은 부분을 다시 읽어본다. 그중에는 책을 다 읽고 나니 의문이 해소된 것들도 있을 것이고 읽을 때와는 다르게 아무 감흥이 없어진 글귀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여전히 나의 가슴을 울리거나 생각을 거듭하게 하는 문장들이 추려졌다면 그것을 다른 노트에 그대로 옮겨 적자. 다 옮겨 적고 나면 책에 대한 전체적인 나의 생각을 써보자. 짧아도 괜찮다. 책이 좀 어려웠다거나 아니면 생각보다 술술 잘 읽혔다와 같은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적어도 좋다. 책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렇게 정리한 책이 한 권, 두권 늘어나게 되면 그것이 독후감 노트가 된다. 차곡차곡 늘어나는 독후감 노트는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들어와 정리된다. 머릿속에 정리된 노트들이 다른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할 때 생각의 깊이와 그 힘을 더해 줄 것이다.


질문을 하며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적어 보는 것은 책 속의 이야기와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존재를 거쳐 한번 곱씹고 삼키는 과정이다. 한번 씹고 삼켰을 때 비로소 생각의 힘은 자라난다. 생각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지금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파악하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까지 모두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 생각의 힘을 키우는 것, 바로 비판적 책 읽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책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비판적 책 읽기를 할 때다. 저자와 대화하는 비판적 책 읽기를 통해 한 계단 더 올라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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